백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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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씨름 선수 출신 트로트 가수. 별명은 백장사.
2. 선수 경력[편집]
1993년 순천상업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모래판에 돌풍을 일으켰던 청구 씨름단에 스카웃돼[4] 민속씨름 무대에 데뷔했다. 데뷔한 지 5개월 만인 1993년 7월 5일에 치러진 제28대 천하장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강호동이 가지고 있던 기록을 1년 넘게 앞당기며 최연소 천하장사[5]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당시에는 1990년대 ~ 2000년대 씨름판 황태자로 불리웠던 이태현과 절친이자 라이벌이기도 하였다. 한때 제 2의 이만기로 불리기도 하였다. 천하장사 3회, 백두장사 7회를 하였으며, 2005년 순천시청 팀에서 잠시 뛰다가 은퇴하였다. 백두급에서 활약했지만 금강급의 기술을 구사할 줄 아는 기술씨름의 대가였다.
3. 가수 경력[편집]
트로트 가수로 전향해서 2006년 1집 앨범 '나니까'로 데뷔하여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또한 6시 내고향에서 화요일 코너 [홍보장사 만만세]의 자연인 편 리포터로도 활동한 적이 있었다. 아침마당의 도전!꿈의 무대 참가와 화요초대석 해당 코너에 출연하는 등, 그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4. 기타[편집]
- 1994년 이태현과 결승에서 서로 맞붙은 적이 있었다. 문제는 당시 5판 3선승제로 치러지던 결승전에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 선수가 2:2의 상황이 되자 다섯 번째 판 이후로 서로 섣불리 기술을 못걸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 30분 넘게 이어지자[6] 연맹에서는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서 경기시간이 계속 길어질경우 두 선수의 몸무게를 측정하여 더 가벼운 쪽에 우승을 준다는 계체승이라는 황당한 규칙을 신설하였다는 거고, 당시 백승일을 의식하며 의도적으로 몸무게를 좀 더 가볍게 유지하던 이태현이 결국 계체승을 거두었고, 이후 한동안 이태현에게는 저울장사라는 오명이 따라붙었다. 제2의 이만기라 불리던 백승일은 이 사건 이후 씨름에 의욕을 잃고 하락세를 타면서 프로씨름이 인기가 점차 시들해져 갔다고 한다.
- 듬직해보이는 외모완 딴판으로 목소리가 완전히 깬다. 실제 목소리톤은 아주 높고 가는편. 목소리만 들으면 몸무게 60kg도 안되는 사람이 말하는걸로 보일 정도.
- 순천에서 나고 자라 전남 사투리 억양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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