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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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감독


파일:개성고고병운.jpg

이름
고병운
高炳運 | Go Byung-Woon
출생
1973년 9월 28일 (50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직업
축구선수(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포항 스틸러스(1996~2003)
상무 축구단(1999~2000 / 군 복무)
의정부 험멜(2004~2005)
대전 시티즌(2005~2006)
천안 FC(2007)
감독
서남대학교(2008 / 코치)
낙동중학교(2008~2018)
개성고등학교(2016~2018)
선문대학교(2019 / 코치)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유소년 시절
2.2. 프로 생활
3. 지도자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이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유소년 시절[편집]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 시절에는 스위퍼와 스트라이커를 모두 소화하며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활약하였다. 광운대학교 진학 후, 수비수로 보직을 자리잡으며 더욱 성장한 고병운 선수는 1995년 애틀란타 올림픽대표 아시아 최종 예선에도 발탁되어 활약하였으나, 아쉽게도 올림픽 본선 최종 엔트리에는 소속되지 못하였었다.


2.2. 프로 생활[편집]


광운대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 드래프트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였다. 플랫 3의 센터백으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포항에서 항상 주전 자리를 유지하며 안익수, 홍명보, 싸빅, 이영상 등 포항의 내로라하는 수비수들과 함께 오랜 시간 활약하였다. 그러나 2003년 시즌 종료 후 동계훈련 도중 십자인대 파열을 당하면서 의료진들로부터 선수생활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권고를 받고 포항을 떠나게 되었다.

선수생활 은퇴를 생각하기도 하였으나, 굳은 각오로 단독 재활을 결심. K2리그험멜 축구단에서 1년 반 정도 머물면서 길고 긴 재활의 시간을 보내기에 이른다. 이후 몸상태가 어느 정도 올라오자 대전 시티즌에서 2005년 4월부터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며, 그 결과 2005년 5월 대전 시티즌에 입단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대전 시티즌에서 1년 반 동안,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면서 프로통산 200경기 돌파 기록을 세웠고 2006 시즌에는 34세의 나이에도 전시즌 대부분의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다른 선수들의 모범이 되었다. 2006 시즌 종료 후 대전을 떠났고 2007년 여름 K3리그천안 FC에 입단하여 한 시즌을 보낸 뒤 은퇴하였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서남대학교 코치를 거쳐 2008년 부산 아이파크의 유소년 팀 코치로 부임하여 2016년 부산의 U-18팀인 개성고등학교 감독으로 부임 첫 해에 K리그 U18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어 내었다. 이후 2019년 선수시절 동료인 안익수 감독이 있는 선문대학교에 코치로 부임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선수 시절, 90분 내내 지치지 않는 체력과 투지로 똘똘 뭉친 근성으로 압축하여 표현이 가능하다. 가장 체력 부담이 심한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면서도 지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질 않았고, 34세의 나이까지 여전히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할만큼 자기관리도 철저한 선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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