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문신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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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행적
3. 무공
4. 기타



1. 개요[편집]


'신투'라 불려도 귀문신투는 결코 다른 자가 소유한 재물을 훔친 적은 없었다. 다만 상대가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는 물건을 집어가는 일에는 전혀 주저한 적이 없을 뿐이었다. 그로 인해 남들이 귀문을 넘나드는 신투라고 하지 않던가?

- 『지존록』에서 풍현이 실전적인 무적대금나(無敵大擒拿)의 구결를 처음 접한 뒤 귀문신투와 어울리지 않음에 살짝 의문을 느낀다.


'"적으로 생각하면 진정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자였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 두주불사로 마셔도 기꺼운 상대였지요. 그만한 인물을 다시 보기 힘들 것입니다."

- 쌍마(雙魔)와 풍현의 대화 중에서 발췌.

풍종호의 무협소설 『지존록(至尊錄)』에서 50여 년 전, 일기(一奇), 쌍마(雙魔), 삼괴(三怪), 사신(四神)으로 분류되던 천하십대고수(天下十大高手) 중 사신의 한 명이 귀문신투(鬼門神偸)이다. 그것도 말석(末席)으로 꼽혀서 십대고수로 언급되다가도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꼽으면 바로 빠지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귀문신투는 자기 대신 언급된 자가 마음에 들면 놔두었으며, 마음에 안 들면 쫓아가서 바지를 벗겨버렸다고 한다.



2. 행적[편집]


귀문신투는 본래 대과를 보려는 유생이었다. 빌어먹을 관리 놈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그는 대과에 급제하여 그런 놈들을 날려버릴 목적으로 암자에까지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한다. 산속 암자인지라 소일거리로 다른 일을 할 것은 없어서 그는 암자에 굴러다니는 책이란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중에 왕창 뜯겨 나가고 찌꺼기만 남아 먹물 닦는 뭉치가 된 음마비천록(陰魔飛天錄)의 사본을 얻으면서 무예에 입문한다. 한 번 빠져들자 결과는 생각도 않고 휘말려 들어갔는데도 그는 글공부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나라가 부패해 대과의 장원이 재물로 결정되어 진다고 하자 글공부의 의미가 없어진 그는 기념품으로 그 빌어먹을 관리 놈과 자식놈의 머리통을 들고 돌아온다. 고민 끝에 본격적으로 무림에 출사하여 이곳저곳 유람을 하다가 2년 만에 고향에 다시 들른다.

귀문신투가 2년 전 벌인 일이 귀신이 탐관을 벌한 것이라는 소문으로 둔갑하여 있었고, 심지어 사당까지 있었다. 그 고장의 새로운 탐관은 사사건건(事事件件) 방해가 되는 그 소문을 없애기 위해 사당을 불태우려 하는 중이었다. 이참에 귀문신투는 그 새로운 탐관과 그에게 빌 불어 패악을 떠는 불의(不義)한 다섯의 목을 한낮에 잘라 불타는 자신의 사당 안으로 던져 넣는다. 이때 그가 펼친 미완의 음부귀장신법(陰府歸藏身法)은 이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 그는 이때부터 귀문을 넘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제멋대로 20여 년을 천하를 떠돌며 지내는 동안, 어떤 근심도 거리낌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귀문신투는 제자를 얻는다. 그래서 제자가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이 되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터득한 것을 능가하는 절기를 찾아다닌다. 그러다 마침내 제세칠성(濟世七聖)의 유적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일월주천로(日月周天路)의 최상층에서 밑으로 내려와 진정한 일월주천로에 도달하나, 결국 탈출하지 못하고 연구만 거듭하다 자신만의 석실을 남기며 찾아올지도 모를 후대와의 인연을 안배한다.

그리하여 50여 년 뒤에 무영문(無影門)의 혈채를 갚고자 시조의 절기를 찾아 칠성의 유적에 들어온 풍현이 그 인연에 닿는다. 그는 잡언(雜言), 무경요람(武經要覽), 신투묘해(神偸妙解), 귀문보전을 얻으면서 진정한 무영문의 절기를 잇게 된다.



3. 무공[편집]


  • 음부귀장신법(陰府歸藏身法): 무영객이 무상장과 통합한 음부귀장신법이 아닌 변화된 새로운 형태의 음부귀장신법이다.
  • 신영장(迅影掌): 무상장과는 완연히 다른 형태로 보다 완성된 독문장법이다.
  • 무적대금나(無敵大擒拿): '무적'이란 적을 없애는 것이 아닌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주장이며, 그 뒤에 붙은 '대금나'란 마음 속에 적을 가둠으로 세상에 적을 두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마음 밖에 적이 생기면 할 수 없이 가장 빠른 길로 저 세상으로 보내는 조금 실제적인 작은 수법이다. 손, 발, 온몸을 연환하여 사용하는 모든 타격술(打擊術)의 대응으로써 절정(絶頂)에 이른 것이나 마찬가지라 풍현은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여래대장팔문묘타(如來大藏八門妙打)를 쉽게 완성할 수 있었다. 또한, 묵연동(默然洞)에서 묘선자(妙仙子)가 이 무적대금나로 한선자(恨仙子)의 암기술을 모조리 막아낼 정도의 대단한 절예로 풍현도 자주 사용한다.
  • 무상법(無想法): 방금 있던 일도 태어나기 전의 일처럼 뇌리에서 깨끗하게 접어둘 수 있고, 10년 전에 있던 일도 지금 눈으로 보듯, 귀로 듣는 듯 생생하게 되짚어 낼 수 있는 심법이다.[1]
  • 이매화영(魑鬽化影): 흐릿한 잔영을 남기는 매우 빠른 보법인지라 이형환위(移形換位)와 비슷한 효력을 가졌다. 이 이매화영을 전개하면 부수적으로 펼치게 되는 이매장속(魑鬽藏屬)에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간단한 진도를 구사할 수도 있다. 귀문신투가 죽기 며칠 전에 남긴 응용술수로, 풍현이 무상인마(無上人魔)의 마령십이지살(魔靈十二地殺)과 싸울 때, 이를 이용해 잠시나마 은신처를 만든다.
  • 무애심법(无碍心法): 음마비천록의 불완전하고 파편화된 부분에서 얻었던 내공심법을 바탕으로 여기저기서 얻어 배운 연기(鍊氣), 양기(養氣), 취정(聚精)의 비방 중에 해봐서 기별이 오는 것으로 끼워 때웠다고 할 수 있는 내공심법이다. 생전의 귀문신투의 자유로움을 닮았는지 그 이름처럼 어떠한 장애도 용납치 않아 다른 무공과 같이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애심결은 본래 천마신공(天魔神功)을 바탕으로 이끌어내야 하는 천마호심진기(天魔護心眞氣)를 바로 끄집어내거나 옥로진기(玉露眞氣)를 이끌어 기력의 낭비를 줄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절대천마(絶代天魔)는 풍현이 뒤로 물러서지 못하는 현상이 이 무애심법 때문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애매모호한 부분도 있다.



4. 기타[편집]


사실 『지존록』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더 적은 편인데, 그중에서도 귀문신투는 아직 주목할만한 점이 두 가지 있다.

  • 자부와의 관계
풍현이 얻은 귀문신투의 비전에는 자부신공(紫府神功)과 봉황무(鳳凰舞)가 포함되어 있었다. 더불어 그는 나중에 제세칠성 중 소선(蕭仙)의 자부신소(紫府神簫)에서 자부경(紫府經)을 얻는다. 골치 아픈 점은 이게 연관이 있다는 점만 서술될 뿐, 그게 어떻게 연관되었는지 아니면 애당초 이걸 대체 어떻게 써먹는지 적어도 습득 시점에서는 제대로 이해도 안 된다는 점이 주인공에게나 독자에게나 난감하다고 해야 할까······.[2]

  • 봉래파(蓬萊派)와의 관계
봉황무는 본래 봉래파 문인들의 구명절기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봉래파에서도 실전되었는지 세상에 나온 제자가 죽은 경우가 발생한다. 그런 봉황무를 귀문신투가 가지고 있으며, 그의 귀문신검수(鬼門神劍手)와 봉래파의 묘현신검수(妙玄神劍手)는 어째 묘하게 체계가 닮았다. 풍현도 그것을 느끼고 귀문신투가 봉래파의 근거지에 관심을 기울였던 게 단순한 호기심만은 아닐 거라 짐작한다. 그 외의 사연은 나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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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현이 지존환(至尊環)을 통해 얻은 절기 중에서 귀문신투의 절기로 제압할 수 없는 것들을 돌아보고자 할 때 강력한 충격을 받으며 회상하는 것을 방해받는다. 당시의 풍현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2] 일단 패왕문과 함께 고대의 전승을 있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