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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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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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오호십육국시대 초기 전조의 외척이자 비정통 황제이다.


2. 생애[편집]


초기 생애와 가문의 이력은 전해지지 않는다. 315년 근준이 두 딸을 열종 소무제 유총의 황후로 들인 일을 시작으로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황제의 장인으로서 입지가 올라가 대사공에 임명되었다. 이후 소무제 유총의 차남이었던 유찬과 함께 국정을 위임받아 섭정을 주도했으며 318년 유총이 붕어하고, 효은제 유찬이 즉위한 후 근준의 난을 일으켜 남흉노 유씨 황족들을 제거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선제(先帝) 유총의 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참혹한 행위를 저지른 이유는, 본래 근준은 한족(추정)이었고[1] 그러한 한족의 서진 제국을 영가의 난을 통해 비참하게 몰락시킨 흉노에게 증오심을 갖고 있었기에 그랬다고 한다. 이후 그는 한족 왕조인 동진의 중종 원황제 사마예에게 칭신하고자 하는 뜻을 내비쳤다.

근준은 황제를 참칭했으나 그의 영역권은 평양 일대에 불과했고, 주위를 석륵유요가 포위하고 있었다. 이후 유요가 318년 10월 독자적인 황제로 즉위해 조나라만 3개가[2] 있는 진풍경이 벌어졌으며, 대립을 진행하던 도중 근준은 휘하 부하들에게 암살당해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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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부 사서에선 한족으로 나온다고 한다. 정확하진 않기에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다.[2] 근준의 조, 유요의 전조, 석륵이 유요에게 책봉받은 석조(石趙) 공국(公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