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화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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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안에 금화(禁火)의 법을 전장(專掌)한 기관이 없어 거리에 사는 지각 없는 무리들이 주의하여 잘 지키지 못하고 화재를 발생시켜, 가옥이 연소되어 재산을 탕진하게 되오니, 백성의 생명이 애석합니다. 따로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하여... 상설 기관으로 하고 폐지하지 말아 화재 방지하는 것을 사찰하게 하소서.

《조선왕조실록》 세종 8년(1426년) 2월 26일#

조선 세종 때 설립된 소방기관. 1426년에 일어난 한양 대화재를 계기로 설치되었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당시 금화도감의 대책은 현재의 시각으로 봐도 꽤 괜찮았다. 현재의 방화벽에 해당되는 방화장을 초가집 사이에 지었고, 가옥 5개 마다 우물을 파서 현재의 급수 펌프와 비슷한 기능을 하게 했으며, 화재가 나면 소속 부하들을 이끌고 끄게 했다. 금화도감 관원은 밤중에 불을 끄러 가다가 순라군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 일종의 증명서인 신패(信牌)를 가지고 다녔다. 나중에는 한성부의 건의로 금화도감에서 하천 관리 업무도 맡았다.

설치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도성을 관리하던 성문도감과 합쳐져 공조 소속의 수성금화도감(修城禁火都監)이 되었다. 도성을 수리하고 화재를 금지하고, 하천을 소통시키고, 길과 다리를 수리하는 일을 모두 맡아 보게 되었다. 1429년에 세종이 강무(講武)에 나선 사이 다시 도성에 화재가 나자 금화도감 관리들에게 책임을 물어 국문을 실시했다. 이때는 길을 넓게 내 놓은 덕에 그나마 피해가 줄었다.

수성금화도감은 세조 때 폐지되어 도성 관리 업무는 공조가, 소방 업무는 현재의 서울특별시청인 한성부가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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