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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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기형2.jpg
본관
울산 김씨
출생
1894년 10월 16일
전라도 장성도호부 북이면 거마산리
(현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신평리)[1]
사망
1952년 3월 28일
전라남도 장성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기형은 1894년 10월 16일 전라도 장성도호부 북이면 거마산리(현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신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2월 4일부터 6일까지 전남 장성군 북이면 백암리에 소재한 자신의 집에서 일본 메이지대학 유학생인 정광호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생 김범수(金範洙) 등과 같이 최팔용 외 10인이 연명한 독립선언문 한국어판 550여통과 일본어판 50여통을 비밀리 인쇄하여 서울로 보냈다.

또한 추가로 인쇄하여 3월 10일 광주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한 시민에게 배포하며 김태열(金泰列)·김강 등과 함께 시위행진을 주도하다가 붙잡혔다. 1919년 6월 1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9월 19일 대구복심법언에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장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2년 3월 2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김기형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997년에는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울산 김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