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웅(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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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金志雄
1915.8.7(陰) ~ 1988.1.18

백범 김구 암살 사건의 주모자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안두희와 같은 평안북도 용천군 출신으로 일찍이 만주 관동군의 헌병통역 출신이며 중국 왕조명(汪兆銘) 정권의 고문을 역임했다고 자칭하고 해방 후 귀국해서는 왕금산(汪金山)장군을 자처하면서 고급정보 브로커 노릇을 한 인물이다.


2. 상세[편집]


1949년 6월 26일 서울 경교장에서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의 회고에 따르면 암살을 총괄 지휘한 사람은 '의혹의 모략꾼' 김지웅이었다. 김지웅은 사건 당시 안두희와 홍종만에게 자금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건후 안두희를 면회와서 겸연쩍어 하면서 돈봉투를 주고 가기도 하였다. 그런데 안두희는 김지웅의 '눈부신 부상'에는 배후가 있으며, 그것은 국가 고위층이라고 확신하였다. 결국 안두희는 암살 사건의 배후에 김지웅 이상의 선이 있다고 분명하게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상부의 동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지위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회고를 통해 암살의 배후인물로 국방장관 신성모, 외무부장관 임병직, 서울시장 김태선,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경무국장 조병옥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월남 이후 자신의 활동전반과 관련되어 이들이 거론된다는 사실이다. 서북청년회 시절 도움을 준 이들과 암살사건에 직접 관련된 이들을 구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거론된 사람들과 관련하여 먼저 경찰쪽을 보면, 안두희는 서북청년회 시절 평소 노덕술, 최운하 등과 정보를 교환하였으며, 장택상, 조병옥 등 경찰수뇌부와도 잘 알고 있었다. 김태선 서울시경국장은 김지웅에게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있고 김지웅은 홍종만 등에게 돈을 나누어 주었고, 김구가 피살되기 5시간 전 서울시 경찰국은 느닷없이 특별경계를 지시했고, 사건 직후 경찰은 홍종만 등 김구 암살 민간인 행동대원들을 연행하는 듯 하면서도 실은 병원에 수용하여 외부접촉을 차단시켜 실절적으로 보호조치를 취했다.

특히 안두희씨는 1992년 4월 14일 오후 TV회견을 통해 『당시 백범을 암살하라는 직접적인 지시를 받지는 않았으나 수도경찰청장을 지낸 장택상씨와 친일 경찰관으로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이던 노덕술씨, 정보과장 최운하씨 등으로부터도 백범을 암살해야 된다는 강력한 암시를 받고 공감해 범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장택상, 노덕술, 최운하 3인 모두 한국민주당 위원이였다는 것은 한국민주당도 김구 암살 배후임을 의심하도록 한다.

한국민주당 초대당수 송진우 암살사건에서 이미 조병옥과 장택상은 김구를 배후로 지목한바 있으며, 한국민주당 정치국장 장덕수 암살사건에서도 조병옥과 장택상은 김구를 배후로 지목했다. 그리고 동아일보 김성수의 암살시도사건에도 김구는 배후로 지목된다. 특히 김성수 암살시도 관련 김구의 배후는 김규식이 미군정에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김구는 한국민주당의 공공의 적이었던 것이다.

1960년 4.19 혁명 직후 일본으로 밀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

1966년 김지웅 자신이 김구 암살의 총책임자라고 폭로하며 일본에 망명 신청을 하였다. #

1988년 사망해서 충청북도 중원군(현 충주시) 진달래동산에 김형엽이라는 가명으로 묻혀 있다는 게 뒤늦게 밝혀졌다. #

1995년 12월 '백범김구선생 암살진상국회조사보고서'에 "'의혹의 모략꾼' 김지웅은 암살사건 전반을 계획 조율했다"고 명시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편집]


  • 1994년 2월 27일자 KBS1 <다큐멘터리극장>에선 배우 한현배가 연기했다.
  • 1995년작 KBS 광복 50주년 기획드라마 <김구>에선 배우 박영지가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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