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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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誠諤
생몰년도 미상
1. 개요[편집]
발해의 인물. 대씨 성인 점을 보면 발해의 왕족 출신으로 보이며, 관직은 재상(相)으로 기록되어 있다.
2. 생애[편집]
909년 3월, 발해국왕 대인선(4년) 왕명으로 후량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대성악은 여자 노예(兒女口), 담비가죽(貂鼠皮), 곰가죽(熊皮) 등을 바쳤다고 한다. 발해국왕 대인선은 911년, 912년 후량에 다시 사신을 보낸다.
3. 관련 기록[편집]
梁開平元年五月, 其王大諲譔遣王子大昭順來貢方物. 至二年正月, 又遣殿中少令崔禮光來朝.
三年三月, 遣其相大誠諤來朝, 兼貢女口.
후량[梁] 개평 원년(907) 원년 5월, 그 왕 대인선이 왕자 대소순(大昭順)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2년(908) 정월, 또 전중소령 최예광을 보내어 내조하였다.
3년(910년) 3월, 그 재상 대성악을 보내 내조하고, 여자 노예를 바쳤다.
-五代會要 卷三十 渤海 -
(梁太祖開平) 三年(909) 三月, 渤海王大諲譔, 差其相大誠諤朝貢, 進兒女口及物 · 貂鼠皮 · 熊皮等.
(후량 태조 개평) 3년 3월, 발해왕 대인선이 재상 대성악(大誠諤)을 보내 조공하였다. 여자 노예, 담비 가죽, 곰자국 등의 물품을 진상하였다.
- 册府元龜 卷九百七十二 外臣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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