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리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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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알앤비 그룹. 두왑에서 중요한 그룹이다.
2. 상세[편집]
2.1. 제1기[편집]
1947년경에 소니 틸 (Sonny Til) 이 활동하다가 조지 넬슨 (George Nelson), 알렉산더 샤프 (Alexander Sharp), 토미 게이터 (Tommy Gaither) 를 만나 결성했다. 당시 그룹명은 더 바이브라 네어스 (The Vibra-Naires) 였으나 녹음 계약을 따내고선 더 오리올스로 변경하였다. 이후 조니 리드 (Jonny Reed) 가 영입되고, 소니 틸이 메인보컬로 1948년 7월에 녹음한 It's Too Soon To Know가 큰 인기를 얻었다.
계속해서 히트곡이 나왔으며, 인기가 대단하여 공연하면 소녀팬들이 난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다 1950년 11월, 교통사고가 발생해 게이터는 사망하고 넬슨과 리드는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1] 그러자 일단 멀쩡한 둘이서 활동하다, 곧 새 멤버 두 명을 영입했고 중상을 입었던 멤버들도 모두 돌아왔다.[2] 이후 1952년, Baby Please Don't Go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1953년 초 넬슨이 술 문제로 그룹을 떠나게 됐다. 빈 자리는 그레고리 캐럴 (Gregory Carroll) 로 대체되었고, 그해 6월에 녹음한 Crying in the Chapel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다 멤버가 떠나고 매니저도 떠나면서 그룹은 오래가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2.2. 제2기[편집]
홀로 남은 소니 틸은 다른 그룹으로 떠나, 그 그룹으로 두번째 오리올스를 시작했다. 비제이 레코드사와 계약하고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가지만, 1959년경에 소니 틸의 차가 압류된 것을 본 멤버가 떠난 것을 마지막으로 두번째 오리올스는 끝나고 말았다.
2.3. 제3기[편집]
그럼에도 소니 틸은 오리올스를 계속했다. 잠시 솔로로 활동하긴 했으나, 다시 오리올스는 결성되었고 녹음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세번째 오리올스도 1960년대 중반에 해체되었다.
2.4. 제4기[편집]
이후 1966년에 소니 틸은 자신의 팬인 바비 토마스 (Bobby Thomas) 를 만났고, 우연히도 본래 오리올스의 초창기 이름하고 이름이 같았던 그룹으로 네번째 오리올스가 시작됐다. 그레고리 캐럴이 때때로 함께했으며, 1975년까지 녹음했으나 결국 해산하고 만다.
2.5. 제5기?[편집]
그 뒤 소니 틸은 잉크 스파츠[주의] 에 들어갔으며, 1977년에 조지 그랜트 (George Grant) 가 영입되자 잉크 스파츠 앤 더 오리올스 (The Ink Spots and The Orioles) 로 투어를 시작했다. 그룹은 1977년에 잠시 녹음한 바 있다.
2.6. 마지막 재결성[편집]
끝내 1977년, 소니 틸은 제2기의 두 멤버와 제3기의 한 멤버를 모아 여섯 번째 오리올스를 시작했다. 그 뒤 1981년에 소니 틸이 53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룹은 계속되었다. 소니 틸의 사후 바비 토마스가 자신만의 오리올스를 결성해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3. 헌액[편집]
- 로큰롤 명예의 전당 (1995)
- 보컬 그룹 명예의 전당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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