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스(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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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스의 본명은 럭산나, 그녀는 빛이 가득한 곳에서 태어났다. 데마시아 왕궁 근위대 가문의 금쪽같은 딸 럭산나는 그녀의 높은 신분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듯했다. 럭스의 생활이란 대개 높은 지위의 자제들을 위한 고등 교육을 소화하거나 화려한 상류층 파티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녀는 자신에게 비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일례로 그녀는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목격했다고 믿게 했으며 종종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 소녀는 다른 이가 외우는 주문을 한 번만 듣고도 그것을 역으로 시전할 수 있었는데 실로 놀라운 재능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 이 기품 있는 아가씨를 특별한 천재로 받들었으며 그녀는 데마시아 정부와 군대, 그리고 시민 모두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마법 대학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입학시험을 보게 된 럭스는 자신에게 빛을 다루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좋은 일에 사용하겠다고 결심했다. 이 겸허한 천재 소녀를 어느 군대가 탐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얼마 후 데마시아 군은 그녀를 비밀 작전 요원으로 선발했고 럭스는 곧 대담한 업적을 세워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임무를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역시 녹서스 사령부 침투 작전을 회고할 것이다. 이 위험천만한 작전에서 럭스는 녹서스와 아이오니아의 분쟁에 관련된 중요한 내부 정보를 빼내는 데 성공했고, 결과적으로 데마시아와 아이오니아 양쪽 모두의 신망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럭스는 정찰과 감시가 자신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다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 진정한 길은 역시 리그 오브 레전드에 있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오빠의 뒤를 이어 데마시아 전역에 영감을 불어넣었고 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민중의 빛'이 되었다.
"적들은 럭스의 인도하는 빛을 경계하지만, 정작 경계해야 할 것은 그 빛이 희미해질 때이다." - 데마시아의 힘 가렌.
럭산나 크라운가드는 젊고도 강력한 빛의 마법사다. 그러나 그녀가 태어난 데마시아는 마법을 두려워하고 불신하는 곳이기에,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힘을 숨기고 살 수밖에 없었다. 자칫 발각되어 추방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도 그녀는 마법을 받아들이는 법을 익혀나갔고, 지금은 고국을 위해 그 힘을 은밀히 사용하고 있다.
럭산나보다는 럭스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데마시아의 도시 하이 실버미어에서 명망 높은 가문인 크라운가드 가의 딸로 태어났다. 크라운가드 가는 집안 대대로 국왕을 수호하는 영예로운 의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럭스의 조부는 ‘폭풍 이빨 전투’에서 왕의 목숨을 구했고, 아버지는 ‘사이러스의 난’이라고 알려진 녹서스의 침공 당시 왕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럭스의 오빠인 가렌도 그와 같은 명예로운 일을 해낼 거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럭스와 가렌 남매는 최대한 이른 나이부터 전투, 승마, 사냥을 배웠다. 그런데 가렌은 집안의 전통을 따라 데마시아의 정예 부대 중 하나인 불굴의 선봉대에 들어가기로 한 반면, 럭스는 국경 밖의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부모님은 그녀의 생각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들에게 자식은 둘뿐이었기에,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책임을 럭스에게 맡길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책임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고집불통 이상주의자 럭스의 장래 희망은 변하지 않았다. 가렌은 럭스에게 꿈을 포기하고 본분에 충실하라고, 데마시아인이라면 누구나 그래야 한다고 타일렀지만, 오빠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럭스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물러서지 않고 맞서서 화를 냈다.
큰 포부와 눈부신 야망을 품은 활달한 소녀 럭스는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도무지 성미에 맞지 않았다. 가정교사들은 그녀가 가업을 물려받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려 했지만, 럭스는 매번 새롭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다른 관점을 내세워 토론을 벌임으로써 그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럭스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화가 난 사람이라도, 그녀의 내면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과 같은 생기를 마주하면 저절로 누그러들게 마련이었다. 럭스는 사람들의 그런 반응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점차 자신의 특별한 면모가 그리 당연하게 여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의 내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는 게 단순히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어느 날 황혼 녘에 그녀가 북쪽 산에서 혼자 승마를 즐기고 있을 때 벌어진 사건 때문이었다.
해가 서편으로 저물었을 때, 그녀의 말이 그만 얼어붙은 땅 위에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앞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럭스는 꼼짝없이 그곳에서 발이 묶였다. 가장 가까운 마을로 걸어가려 해도 밤이 되기 전에는 도착할 수 없는 거리인 데다, 고통스러워하는 말이 너무 걱정돼서 그대로 두고 떠날 수도 없었다. 가렌이라면 이럴 때 말을 빨리 죽여서 고통을 없애줘야 한다고 말했겠지만, 럭스는 어렸을 때부터 타고 다닌 애마를 차마 죽일 수 없었다. 그래서 산자락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마음먹고 혼자서 노숙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혼자가 아니었다. 굶주린 칼날늑대 무리 하나가, 그녀의 말이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신선한 고기를 찾아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그녀의 집에서는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럭스 때문에 식구들 모두가 걱정에 빠졌다. 아버지와 가렌이 함께 그녀를 찾으러 나섰지만, 밤새도록 수색을 벌여도 성과는 없었다. 마침내 럭스를 발견한 것은 다음 날 아침이나 되어서였다. 그녀는 겁에 질린 말 옆에 꼭 붙어 앉아서 덜덜 떨고 있었고, 그 주위에 칼날늑대 여섯 마리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털가죽이 시커멓게 그을리거나 녹아버린 상태였다. 럭스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고, 다만 다친 말을 살려달라고 아버지에게 빌었다. 결국 집에서 마차를 한 대 보내서 럭스와 그녀의 애마를 모두 데려오게 했고, 그녀는 말을 정성껏 간호해서 건강을 되찾아 주었다.
그날 이후로 럭스는 자신이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음을 깨달았다. 데마시아에서는 혐오의 대상으로 통하는 마법의 능력이었다. 럭스는 갓난아기였을 적부터 마법에 대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마법 때문에 룬테라 전체가 멸망할 뻔했으며, 그녀의 삼촌도 마법사에게 살해당했다고 했다. 게다가 데마시아의 전설이나 동화에는 마법사가 악의 하수인으로 등장하거나 선량한 사람이 마법을 접하고 타락한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넘쳐났다. ‘나도 사악해지는 걸까? 나는 죽임당하거나 성벽 밖으로 추방되어야 할 혐오스러운 존재인 걸까?’ 럭스는 두려움과 의혹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다. 밤에는 몸에서 자꾸만 빛이 저절로 새어 나오는 바람에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움켜쥐기 일쑤였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럭스는 심리적으로 무너질 뻔했다. 하지만 열세 살 되던 해 어느 날 밤, 데마시아의 수도에서 거대한 조각상 하나가 어둠 속을 버젓이 걸어 다녔다는 그 밤, 그녀는 변했다. 이후에 하이 실버미어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마법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가렌은 불굴의 선봉대에서 훈련을 받기 위해 수도에 머물렀다. 그가 하이 실버미어에 들르는 날은 드물었고, 남매는 서로 만나는 일이 줄어들면서 점점 사이가 멀어졌다. 한편 럭스는 두려움을 떨치고 마법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상습적으로 호위병들을 따돌리고 인적 없는 숲으로 떠나서, 남들 눈을 피해 몇 시간씩 마법 연습에 매달렸다. 그녀는 마법을 마음껏 펼쳐보면서 동시에 통제하는 법도 익혀나갔고, 마침내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빛을 구부려서 상대방의 시야를 차단하거나 어지럽힐 수도 있었고, 손바닥으로 섬광을 뿜어낼 수도 있었으며, 허공에 빛나는 형상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빛을 아주 강하게 응축해서 무언가를 태우거나 파괴할 수도 있었다. 예전에는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게 무서웠지만, 이제는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게 되어 기쁘기만 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녀가 마법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은 아직 많고도 많았다. 이후 몇 년 동안 크라운가드 저택에서는 럭스 때문에 종종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성안 곳곳에 빛이 춤추듯 떠다니고, 조각상이 사람에게 시를 읊는가 하면, 아무도 없는 데서 웬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크라운가드 가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해명하려 애썼다. 문제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는 그들도 내심 알고 있었지만, 고통스러운 진실을 인정하고 가문을 세간의 이목에 노출시키는 것을 감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럭스의 어머니는 그녀를 현실 세계에 붙잡아두기 위해, 가문의 영지를 시찰하고 주민들을 만나보라는 임무를 맡겼다. 럭스는 처음에는 그 일을 부담스러워했지만 금세 적응하고 최선을 다해 임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늘 귀를 기울이고, 형편이 어려운 이를 돕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그녀는 영지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
럭스가 열여섯 살 되던 해, 가렌은 불굴의 선봉대에 정식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럭스와 그녀의 부모는 가렌의 입대식을 보기 위해 데마시아의 수도에서 한 달간 머물렀다. 그곳에서 럭스는 ‘빛의 사자 수도회’의 자선 활동에 참여하며 불우한 이들을 도왔고, 하이 실버미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냥하고 재치 넘치는 사람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빛의 사자’의 전투 조직인 ‘광휘단’ 소속 성기사 카히나와 친구가 되기도 했다. 럭스는 무도회나 이런저런 행사에 가족과 함께 참석하느라 분주한 와중에도 짬짬이 카히나를 만나 전투 시합을 했고, 삽시간에 그녀와 깊은 유대감을 쌓게 되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럭스의 남다른 면모는 어김없이 힘을 발휘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도시 밖으로 나가서 마법을 쓰곤 했다. 데마시아는 겉으로 보기엔 그저 아름다워 보였지만, 아무리 예쁜 정원이라도 그 어디에선가는 어둠이 싹틀 수 있다는 것을 럭스는 알게 되었다. 숲 어귀에 있는 어느 마을에서 겪은 사건 때문이었다.
그 마을에는 주민들을 잡아먹는 괴물둘의 소굴이 있었다. 럭스는 놈들을 뒤쫓아 숲속의 본거지까지 찾아냈다. 괴물들이 사는 지하 동굴 안에는 그들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의 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젊은 혈기와 격렬한 분노에 사로잡힌 럭스는 마법의 힘을 끌어올려 번쩍이는 섬광의 폭풍으로 놈들을 공격했다. 그 결과 수십 마리가 죽었지만, 괴물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럭스는 금세 수세에 몰렸다. 충동적으로 행동에 나섰다가 적들을 과소평가한 탓이었다. 그런데 놈들이 그녀를 덮치기 직전, 마침 그 괴물들의 소굴을 추적하고 있던 광휘단 소속의 특공대가 나타나 럭스를 구해주었다. 그 특공대의 대장은 카히나였다. 그리고 카히나는 럭스가 마법을 쓰는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광휘단은 럭스를 빛의 사자 수도회의 핵심 지도부로 데려갔다. 거기서 럭스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데마시아 국경 밖에서 마법을 이용해 적들을 염탐하는 일을 하거나, 아니면 마법을 내키는 대로 휘두르며 살되 영원히 나라에서 추방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었다. 데마시아의 고위 조직이 마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데에 럭스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들의 제안 자체는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그녀는 선뜻 첫 번째 선택지를 받아들였다. 다만 그 사실은 그녀의 가족에게도 알려서는 안 될 비밀이었다. 크라운가드 가에서는 럭스가 왕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차출되었으며, 광휘단의 일원으로서 수도에 남아 일해야 한다는 통보만을 받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깜짝 놀랐지만, 럭스가 결국 데마시아 사회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는 데에 기뻐하며 하이 실버미어로 돌아갔다.
럭스는 몇 년간 수도에서 광휘단과 함께 훈련을 받고 수도회 내부 교육을 받은 뒤,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러 나라를 떠났다. 동부 데마시아와 녹서스 제국 사이의 완충 지대에 잠입하여, 혹시 녹서스 측에서 그 완충국들을 병합시켜 데마시아에 대항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보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럭스는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녹서스의 첩자들은 실제로 완충국들의 정부에서 암약하면서 그들 사이에 동맹을 맺고 있었지만, 럭스의 활약 덕분에 그 나라들이 서로를 연이어 배신하고 기만하면서 동맹은 삽시간에 무너져버렸다. 이후에도 럭스는 어떤 임무를 맡든 잘 소화해냈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척척 처리해내는 수완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데마시아의 성벽 밖으로 나간 럭스는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문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역사, 수많은 인간군상을 보고 접한 그녀는 데마시아의 상식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고국에는 장점도 있었지만 그만큼 단점도 있었다. 럭스는 나라 밖을 다닐 때는 마법을 자유롭게 사용했지만,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가렌을 만날 때는 자신의 힘을 감췄다. 가족들은 여전히 그녀가 데마시아의 충직한 일꾼인 줄로만 알고 있다... 물론 그건 사실이지만, 그녀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원문 링크
후보: 럭스
날짜: CLE 20년 10월 17일
관찰
럭스가 들뜬 소녀처럼 신나서 씩씩하게 달려 들어온다. 소녀의 아름다운 금발이 햇살을 받아 눈부신 후광처럼 빛을 발하는 게 천사를 보는 것만 같다. 어리숙한 행인들이야 빛깔 고운 옷이나 햇살같이 환한 미소를 보고 방심할지 몰라도, 노련한 전사들이라면 갑옷을 입고도 편하게 움직이는 럭스의 모습에 긴장하여 발길을 멈출 것이다.
럭스는 잠시 멈춰 서서 영리한 눈길로 주위를 한눈에 살핀다. 손가락으로 정교하게 장식된 지휘봉을 빠르게 휙휙 움직이는 품이 꽤 초조한 모양이다.
진정한 적은 그대 안에 있나니.
별로 대단한 말도 아니라는 듯 "흥"하고 코웃음 치는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온다. 그리곤 뚜벅뚜벅 걸어 나와 장갑 낀 손으로 눈앞의 대리석 문을 홱 열어 젖힌다. 가볍게 지휘봉을 휘리릭 돌리자, 눈 부신 빛의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럭스는 한입에 집어삼킬 것 같이 깜깜한 어둠 속으로 겁도 없이 뛰어든다.
회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빠, 데마시아의 힘 가렌이 눈앞에 서 있었다. 표정은 엄격했지만 어딘지 따뜻하고, 헤어진 후 리그 경기 방송을 통해서만 간간이 보며 실제로 보면 이런 모습일 거라 상상했던 그 얼굴 그대로였다.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뭐니?"
럭스는 우쭐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리그의 심판을 받은 사람은 그 누구든 심판 내용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지지만, 나름 조사해 본 결과 리그가 소환해 낸 환상을 통해 후보들의 내밀한 이유를 이끌어내고 만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럭스에게 그 정도는 애들 장난일 뿐, 이들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고 원하는 바로 그 대답을 해 주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럭스는 몸을 쭉 펴고서 허상에 불과한 오빠의 누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데마시아의 이름으로, 정의의 편에서 싸우기 위해서."
"진짜 이유가 뭔데, 럭산나?"
"우리 동맹들에 승리를 안겨주고, 적에겐 패배를 선사하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입문서 <신중한 발걸음>에서 인용한 이 두 구절은 당당한 데마시아인이라면 누구나 흔히 암송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럭스의 포부가 이와 다른 것도 아니었다.
오빠의 찌푸리는 얼굴을 보자마자, 눈이 멀 듯한 섬광이 폭발하며 둘의 모습을 지워버렸다.
가끔 데마시아 왕립 학교의 유리 복도에 빛이 반사되며 온 사방으로 현란한 무지갯빛이 드리워지곤 했는데,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었다. 럭스의 피부는 수정 가루가 곱게 뒤덮은 듯 아른거리며 반짝였다. 둥실 떠오르는 기분으로 빛이 온몸을 감싸게 두자, 온몸이 투명해지며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변했다.
럭스는 아직 이런 기이한 현상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어, 정말 적절치 못한 순간 이런 일이 닥치곤 해서 속이 상했다. 부모님께 환영처럼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서둘러 집 쪽으로 달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번번이 변신은 금방 풀려버려, 학교를 빼먹어 마음만 켕기고 결석 처리만 또 한 번 늘어나고 말았다.
럭스는 크라운가드 저택의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어갔다. 부엌 쪽에서 나직이 이야기하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에는 세 명의 군 장교가 차려 자세로 부모님께 무언가 말씀을 드리고 있었다. 럭스는 가슴이 철렁해서 거실 쪽으로 물러났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 지금은 방해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럭스는 아예 집 밖으로 나가려다 바로 그 잊고 싶은 고통의 순간, 자기 이름을 거론하는 걸 듣고야 말았다.
럭스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럭산나를 거두어주신다니 우리 가문에 정말 큰 영광입니다. 그 애는 제 오빠 가렌과 마찬가지로 큰 일꾼이 될 거에요."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듯, 의자가 마루에 끼익 끌리는 소리가 났다.
"진심입니까, 릴리아님? 따님은 지금 부모님의 보살핌이 무엇보다 필요한 나이고, 무엇보다 오빠가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요."
"국왕 폐하의 명이시지 않습니까. 군에서 부모의 몫까지 다해 주실 테구요." 아버지의 목소리는 더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듯 단호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억눌러왔던 기억이 무자비하게 되살아나면서, 럭스는 그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어 소식을 전해주던 부모님. 방문을 걸어 잠그고 틀어박힌 자신. 억지로 집에서 끌어내던 거친 손아귀에 몹시 아프던 두 팔. 한사코 부모님을 보지 않으려 숙인 얼굴 위를 가리던 머리칼. 매일 밤 잠자리에서 삼키던 뜨거운 눈물. 정신 차리라고 고함쳐대던 우렁찬 목소리들. 이런 짓을 한 가족을 저주하던 자신의 비명 소리.
그리고는 동료 신병들과 나란히 정의의 서약을 낭송하는 자기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책장이 다 닳도록 읽고 또 읽었던 신중한 발걸음 입문서가 안겨주던 평안함. 럭스가 직접 지도했던 신입 학생 반의 교육 시간. 빛나는 데마시아의 깃발 아래 행진하며 가슴 뻐근하던 긍지. 모범적인 품행으로 받은 표창.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국심.
그리고 자신이 자진해서 사랑하게 된 것의 실체를 깨달은 공허함.
숨 가쁘게 몰아쳐 오던 기억이 잦아들고, 이제 럭스는 어둠 속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제 리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빠져나갔으나, 시험은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굳이 고개 들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 리그에 들어오려는 진짜 이유가 뭔지 인정하겠나?"
힘겨운 숨이 목구멍에 걸려, 속삭이듯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주위를 감싸고 있던 어둠이 흩어지더니, 조각조각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럭스는 온몸이 들썩이도록 흐느껴 울며 땅바닥에 엎어졌다.
우뚝 버티고 선 가렌의 환영이 서서히 흩어지며, 늘 친절하기만 하던 얼굴이 거칠고 무표정하게 변해갔다. "방금 넌 나와 마음을 나눈 거다. 리그의 챔피언이 되려면 다른 이들이 네 마음속에 들어가도록 허락해야 하고, 그들도 네 진정한 신념과 목적을 너 자신보다 더 잘 알 수 있게 돼야만 한다. 준비가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진 이미 잘 알겠지."
오빠는 등을 돌리고는 복도를 따라 저 앞에 있는 한 쌍의 문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잠시 멈춰 손을 내밀어 주는 법도 없고, 따라오는지 한 번 돌아봐 주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럭스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마음을 다잡았다. 잠깐 동안 오빠를 소리쳐 부를까, 다시 대전당 안으로 달려가 리그의 모든 것을 꿰뚫는 시선에서 피해야 할까 고민이 됐다. 하지만 이것은 데마시아 최고의 마법사들에게 시험받던 때나 녹서스 심장부까지 나 있는 터널을 몰래 정찰하던 때보다도 더욱 중요한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최초의 진정한 도전이었다. 자신은 크라운가드 가(家)의 사람이 아닌가, 살면서 닥쳤던 다른 시련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도전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럭스는 날렵하게 지휘봉을 손에 쥐며 박차고 일어섰다. 이제 질문에 대한 자신이 첫 대답이 거짓이 아님을, 데마시아에 헌신하는 그녀의 애국심이 진실임을 증명해 보일 때다.
1. 장문[편집]
2. 마지막 빛[편집]
3. 소녀와 석상[편집]
4. 우주 / 암흑의 별 스킨 세계관[편집]
4.1. 야망의 포옹[편집]
5. 구 설정[편집]
5.1. 구 배경 1[편집]
럭스의 본명은 럭산나, 그녀는 빛이 가득한 곳에서 태어났다. 데마시아 왕궁 근위대 가문의 금쪽같은 딸 럭산나는 그녀의 높은 신분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듯했다. 럭스의 생활이란 대개 높은 지위의 자제들을 위한 고등 교육을 소화하거나 화려한 상류층 파티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녀는 자신에게 비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일례로 그녀는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목격했다고 믿게 했으며 종종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 소녀는 다른 이가 외우는 주문을 한 번만 듣고도 그것을 역으로 시전할 수 있었는데 실로 놀라운 재능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 이 기품 있는 아가씨를 특별한 천재로 받들었으며 그녀는 데마시아 정부와 군대, 그리고 시민 모두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마법 대학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입학시험을 보게 된 럭스는 자신에게 빛을 다루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좋은 일에 사용하겠다고 결심했다. 이 겸허한 천재 소녀를 어느 군대가 탐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얼마 후 데마시아 군은 그녀를 비밀 작전 요원으로 선발했고 럭스는 곧 대담한 업적을 세워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임무를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역시 녹서스 사령부 침투 작전을 회고할 것이다. 이 위험천만한 작전에서 럭스는 녹서스와 아이오니아의 분쟁에 관련된 중요한 내부 정보를 빼내는 데 성공했고, 결과적으로 데마시아와 아이오니아 양쪽 모두의 신망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럭스는 정찰과 감시가 자신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다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 진정한 길은 역시 리그 오브 레전드에 있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오빠의 뒤를 이어 데마시아 전역에 영감을 불어넣었고 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민중의 빛'이 되었다.
"적들은 럭스의 인도하는 빛을 경계하지만, 정작 경계해야 할 것은 그 빛이 희미해질 때이다." - 데마시아의 힘 가렌.
5.2. 구 배경 2[편집]
럭산나 크라운가드는 젊고도 강력한 빛의 마법사다. 그러나 그녀가 태어난 데마시아는 마법을 두려워하고 불신하는 곳이기에,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힘을 숨기고 살 수밖에 없었다. 자칫 발각되어 추방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도 그녀는 마법을 받아들이는 법을 익혀나갔고, 지금은 고국을 위해 그 힘을 은밀히 사용하고 있다.
럭산나보다는 럭스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데마시아의 도시 하이 실버미어에서 명망 높은 가문인 크라운가드 가의 딸로 태어났다. 크라운가드 가는 집안 대대로 국왕을 수호하는 영예로운 의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럭스의 조부는 ‘폭풍 이빨 전투’에서 왕의 목숨을 구했고, 아버지는 ‘사이러스의 난’이라고 알려진 녹서스의 침공 당시 왕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럭스의 오빠인 가렌도 그와 같은 명예로운 일을 해낼 거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럭스와 가렌 남매는 최대한 이른 나이부터 전투, 승마, 사냥을 배웠다. 그런데 가렌은 집안의 전통을 따라 데마시아의 정예 부대 중 하나인 불굴의 선봉대에 들어가기로 한 반면, 럭스는 국경 밖의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부모님은 그녀의 생각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들에게 자식은 둘뿐이었기에,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책임을 럭스에게 맡길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책임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고집불통 이상주의자 럭스의 장래 희망은 변하지 않았다. 가렌은 럭스에게 꿈을 포기하고 본분에 충실하라고, 데마시아인이라면 누구나 그래야 한다고 타일렀지만, 오빠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럭스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물러서지 않고 맞서서 화를 냈다.
큰 포부와 눈부신 야망을 품은 활달한 소녀 럭스는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도무지 성미에 맞지 않았다. 가정교사들은 그녀가 가업을 물려받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려 했지만, 럭스는 매번 새롭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다른 관점을 내세워 토론을 벌임으로써 그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럭스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화가 난 사람이라도, 그녀의 내면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과 같은 생기를 마주하면 저절로 누그러들게 마련이었다. 럭스는 사람들의 그런 반응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점차 자신의 특별한 면모가 그리 당연하게 여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의 내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는 게 단순히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어느 날 황혼 녘에 그녀가 북쪽 산에서 혼자 승마를 즐기고 있을 때 벌어진 사건 때문이었다.
해가 서편으로 저물었을 때, 그녀의 말이 그만 얼어붙은 땅 위에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앞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럭스는 꼼짝없이 그곳에서 발이 묶였다. 가장 가까운 마을로 걸어가려 해도 밤이 되기 전에는 도착할 수 없는 거리인 데다, 고통스러워하는 말이 너무 걱정돼서 그대로 두고 떠날 수도 없었다. 가렌이라면 이럴 때 말을 빨리 죽여서 고통을 없애줘야 한다고 말했겠지만, 럭스는 어렸을 때부터 타고 다닌 애마를 차마 죽일 수 없었다. 그래서 산자락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마음먹고 혼자서 노숙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혼자가 아니었다. 굶주린 칼날늑대 무리 하나가, 그녀의 말이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신선한 고기를 찾아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그녀의 집에서는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럭스 때문에 식구들 모두가 걱정에 빠졌다. 아버지와 가렌이 함께 그녀를 찾으러 나섰지만, 밤새도록 수색을 벌여도 성과는 없었다. 마침내 럭스를 발견한 것은 다음 날 아침이나 되어서였다. 그녀는 겁에 질린 말 옆에 꼭 붙어 앉아서 덜덜 떨고 있었고, 그 주위에 칼날늑대 여섯 마리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털가죽이 시커멓게 그을리거나 녹아버린 상태였다. 럭스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고, 다만 다친 말을 살려달라고 아버지에게 빌었다. 결국 집에서 마차를 한 대 보내서 럭스와 그녀의 애마를 모두 데려오게 했고, 그녀는 말을 정성껏 간호해서 건강을 되찾아 주었다.
그날 이후로 럭스는 자신이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음을 깨달았다. 데마시아에서는 혐오의 대상으로 통하는 마법의 능력이었다. 럭스는 갓난아기였을 적부터 마법에 대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마법 때문에 룬테라 전체가 멸망할 뻔했으며, 그녀의 삼촌도 마법사에게 살해당했다고 했다. 게다가 데마시아의 전설이나 동화에는 마법사가 악의 하수인으로 등장하거나 선량한 사람이 마법을 접하고 타락한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넘쳐났다. ‘나도 사악해지는 걸까? 나는 죽임당하거나 성벽 밖으로 추방되어야 할 혐오스러운 존재인 걸까?’ 럭스는 두려움과 의혹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다. 밤에는 몸에서 자꾸만 빛이 저절로 새어 나오는 바람에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움켜쥐기 일쑤였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럭스는 심리적으로 무너질 뻔했다. 하지만 열세 살 되던 해 어느 날 밤, 데마시아의 수도에서 거대한 조각상 하나가 어둠 속을 버젓이 걸어 다녔다는 그 밤, 그녀는 변했다. 이후에 하이 실버미어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마법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가렌은 불굴의 선봉대에서 훈련을 받기 위해 수도에 머물렀다. 그가 하이 실버미어에 들르는 날은 드물었고, 남매는 서로 만나는 일이 줄어들면서 점점 사이가 멀어졌다. 한편 럭스는 두려움을 떨치고 마법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상습적으로 호위병들을 따돌리고 인적 없는 숲으로 떠나서, 남들 눈을 피해 몇 시간씩 마법 연습에 매달렸다. 그녀는 마법을 마음껏 펼쳐보면서 동시에 통제하는 법도 익혀나갔고, 마침내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빛을 구부려서 상대방의 시야를 차단하거나 어지럽힐 수도 있었고, 손바닥으로 섬광을 뿜어낼 수도 있었으며, 허공에 빛나는 형상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빛을 아주 강하게 응축해서 무언가를 태우거나 파괴할 수도 있었다. 예전에는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게 무서웠지만, 이제는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게 되어 기쁘기만 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녀가 마법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은 아직 많고도 많았다. 이후 몇 년 동안 크라운가드 저택에서는 럭스 때문에 종종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성안 곳곳에 빛이 춤추듯 떠다니고, 조각상이 사람에게 시를 읊는가 하면, 아무도 없는 데서 웬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크라운가드 가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해명하려 애썼다. 문제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는 그들도 내심 알고 있었지만, 고통스러운 진실을 인정하고 가문을 세간의 이목에 노출시키는 것을 감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럭스의 어머니는 그녀를 현실 세계에 붙잡아두기 위해, 가문의 영지를 시찰하고 주민들을 만나보라는 임무를 맡겼다. 럭스는 처음에는 그 일을 부담스러워했지만 금세 적응하고 최선을 다해 임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늘 귀를 기울이고, 형편이 어려운 이를 돕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그녀는 영지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
럭스가 열여섯 살 되던 해, 가렌은 불굴의 선봉대에 정식으로 입대하게 되었다. 럭스와 그녀의 부모는 가렌의 입대식을 보기 위해 데마시아의 수도에서 한 달간 머물렀다. 그곳에서 럭스는 ‘빛의 사자 수도회’의 자선 활동에 참여하며 불우한 이들을 도왔고, 하이 실버미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냥하고 재치 넘치는 사람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빛의 사자’의 전투 조직인 ‘광휘단’ 소속 성기사 카히나와 친구가 되기도 했다. 럭스는 무도회나 이런저런 행사에 가족과 함께 참석하느라 분주한 와중에도 짬짬이 카히나를 만나 전투 시합을 했고, 삽시간에 그녀와 깊은 유대감을 쌓게 되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럭스의 남다른 면모는 어김없이 힘을 발휘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도시 밖으로 나가서 마법을 쓰곤 했다. 데마시아는 겉으로 보기엔 그저 아름다워 보였지만, 아무리 예쁜 정원이라도 그 어디에선가는 어둠이 싹틀 수 있다는 것을 럭스는 알게 되었다. 숲 어귀에 있는 어느 마을에서 겪은 사건 때문이었다.
그 마을에는 주민들을 잡아먹는 괴물둘의 소굴이 있었다. 럭스는 놈들을 뒤쫓아 숲속의 본거지까지 찾아냈다. 괴물들이 사는 지하 동굴 안에는 그들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의 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젊은 혈기와 격렬한 분노에 사로잡힌 럭스는 마법의 힘을 끌어올려 번쩍이는 섬광의 폭풍으로 놈들을 공격했다. 그 결과 수십 마리가 죽었지만, 괴물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럭스는 금세 수세에 몰렸다. 충동적으로 행동에 나섰다가 적들을 과소평가한 탓이었다. 그런데 놈들이 그녀를 덮치기 직전, 마침 그 괴물들의 소굴을 추적하고 있던 광휘단 소속의 특공대가 나타나 럭스를 구해주었다. 그 특공대의 대장은 카히나였다. 그리고 카히나는 럭스가 마법을 쓰는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광휘단은 럭스를 빛의 사자 수도회의 핵심 지도부로 데려갔다. 거기서 럭스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데마시아 국경 밖에서 마법을 이용해 적들을 염탐하는 일을 하거나, 아니면 마법을 내키는 대로 휘두르며 살되 영원히 나라에서 추방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었다. 데마시아의 고위 조직이 마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데에 럭스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들의 제안 자체는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그녀는 선뜻 첫 번째 선택지를 받아들였다. 다만 그 사실은 그녀의 가족에게도 알려서는 안 될 비밀이었다. 크라운가드 가에서는 럭스가 왕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차출되었으며, 광휘단의 일원으로서 수도에 남아 일해야 한다는 통보만을 받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깜짝 놀랐지만, 럭스가 결국 데마시아 사회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는 데에 기뻐하며 하이 실버미어로 돌아갔다.
럭스는 몇 년간 수도에서 광휘단과 함께 훈련을 받고 수도회 내부 교육을 받은 뒤,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러 나라를 떠났다. 동부 데마시아와 녹서스 제국 사이의 완충 지대에 잠입하여, 혹시 녹서스 측에서 그 완충국들을 병합시켜 데마시아에 대항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보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럭스는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녹서스의 첩자들은 실제로 완충국들의 정부에서 암약하면서 그들 사이에 동맹을 맺고 있었지만, 럭스의 활약 덕분에 그 나라들이 서로를 연이어 배신하고 기만하면서 동맹은 삽시간에 무너져버렸다. 이후에도 럭스는 어떤 임무를 맡든 잘 소화해냈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척척 처리해내는 수완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데마시아의 성벽 밖으로 나간 럭스는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문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역사, 수많은 인간군상을 보고 접한 그녀는 데마시아의 상식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고국에는 장점도 있었지만 그만큼 단점도 있었다. 럭스는 나라 밖을 다닐 때는 마법을 자유롭게 사용했지만,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가렌을 만날 때는 자신의 힘을 감췄다. 가족들은 여전히 그녀가 데마시아의 충직한 일꾼인 줄로만 알고 있다... 물론 그건 사실이지만, 그녀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5.3. 리그의 심판[편집]
원문 링크
후보: 럭스
날짜: CLE 20년 10월 17일
관찰
럭스가 들뜬 소녀처럼 신나서 씩씩하게 달려 들어온다. 소녀의 아름다운 금발이 햇살을 받아 눈부신 후광처럼 빛을 발하는 게 천사를 보는 것만 같다. 어리숙한 행인들이야 빛깔 고운 옷이나 햇살같이 환한 미소를 보고 방심할지 몰라도, 노련한 전사들이라면 갑옷을 입고도 편하게 움직이는 럭스의 모습에 긴장하여 발길을 멈출 것이다.
럭스는 잠시 멈춰 서서 영리한 눈길로 주위를 한눈에 살핀다. 손가락으로 정교하게 장식된 지휘봉을 빠르게 휙휙 움직이는 품이 꽤 초조한 모양이다.
진정한 적은 그대 안에 있나니.
별로 대단한 말도 아니라는 듯 "흥"하고 코웃음 치는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온다. 그리곤 뚜벅뚜벅 걸어 나와 장갑 낀 손으로 눈앞의 대리석 문을 홱 열어 젖힌다. 가볍게 지휘봉을 휘리릭 돌리자, 눈 부신 빛의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럭스는 한입에 집어삼킬 것 같이 깜깜한 어둠 속으로 겁도 없이 뛰어든다.
회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빠, 데마시아의 힘 가렌이 눈앞에 서 있었다. 표정은 엄격했지만 어딘지 따뜻하고, 헤어진 후 리그 경기 방송을 통해서만 간간이 보며 실제로 보면 이런 모습일 거라 상상했던 그 얼굴 그대로였다.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뭐니?"
럭스는 우쭐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리그의 심판을 받은 사람은 그 누구든 심판 내용에 대해 함구령이 내려지지만, 나름 조사해 본 결과 리그가 소환해 낸 환상을 통해 후보들의 내밀한 이유를 이끌어내고 만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럭스에게 그 정도는 애들 장난일 뿐, 이들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고 원하는 바로 그 대답을 해 주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럭스는 몸을 쭉 펴고서 허상에 불과한 오빠의 누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데마시아의 이름으로, 정의의 편에서 싸우기 위해서."
"진짜 이유가 뭔데, 럭산나?"
"우리 동맹들에 승리를 안겨주고, 적에겐 패배를 선사하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입문서 <신중한 발걸음>에서 인용한 이 두 구절은 당당한 데마시아인이라면 누구나 흔히 암송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럭스의 포부가 이와 다른 것도 아니었다.
오빠의 찌푸리는 얼굴을 보자마자, 눈이 멀 듯한 섬광이 폭발하며 둘의 모습을 지워버렸다.
가끔 데마시아 왕립 학교의 유리 복도에 빛이 반사되며 온 사방으로 현란한 무지갯빛이 드리워지곤 했는데,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었다. 럭스의 피부는 수정 가루가 곱게 뒤덮은 듯 아른거리며 반짝였다. 둥실 떠오르는 기분으로 빛이 온몸을 감싸게 두자, 온몸이 투명해지며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변했다.
럭스는 아직 이런 기이한 현상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어, 정말 적절치 못한 순간 이런 일이 닥치곤 해서 속이 상했다. 부모님께 환영처럼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서둘러 집 쪽으로 달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번번이 변신은 금방 풀려버려, 학교를 빼먹어 마음만 켕기고 결석 처리만 또 한 번 늘어나고 말았다.
럭스는 크라운가드 저택의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어갔다. 부엌 쪽에서 나직이 이야기하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에는 세 명의 군 장교가 차려 자세로 부모님께 무언가 말씀을 드리고 있었다. 럭스는 가슴이 철렁해서 거실 쪽으로 물러났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 지금은 방해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럭스는 아예 집 밖으로 나가려다 바로 그 잊고 싶은 고통의 순간, 자기 이름을 거론하는 걸 듣고야 말았다.
럭스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럭산나를 거두어주신다니 우리 가문에 정말 큰 영광입니다. 그 애는 제 오빠 가렌과 마찬가지로 큰 일꾼이 될 거에요."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듯, 의자가 마루에 끼익 끌리는 소리가 났다.
"진심입니까, 릴리아님? 따님은 지금 부모님의 보살핌이 무엇보다 필요한 나이고, 무엇보다 오빠가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요."
"국왕 폐하의 명이시지 않습니까. 군에서 부모의 몫까지 다해 주실 테구요." 아버지의 목소리는 더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듯 단호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억눌러왔던 기억이 무자비하게 되살아나면서, 럭스는 그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어 소식을 전해주던 부모님. 방문을 걸어 잠그고 틀어박힌 자신. 억지로 집에서 끌어내던 거친 손아귀에 몹시 아프던 두 팔. 한사코 부모님을 보지 않으려 숙인 얼굴 위를 가리던 머리칼. 매일 밤 잠자리에서 삼키던 뜨거운 눈물. 정신 차리라고 고함쳐대던 우렁찬 목소리들. 이런 짓을 한 가족을 저주하던 자신의 비명 소리.
그리고는 동료 신병들과 나란히 정의의 서약을 낭송하는 자기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책장이 다 닳도록 읽고 또 읽었던 신중한 발걸음 입문서가 안겨주던 평안함. 럭스가 직접 지도했던 신입 학생 반의 교육 시간. 빛나는 데마시아의 깃발 아래 행진하며 가슴 뻐근하던 긍지. 모범적인 품행으로 받은 표창.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국심.
그리고 자신이 자진해서 사랑하게 된 것의 실체를 깨달은 공허함.
숨 가쁘게 몰아쳐 오던 기억이 잦아들고, 이제 럭스는 어둠 속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제 리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빠져나갔으나, 시험은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굳이 고개 들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 리그에 들어오려는 진짜 이유가 뭔지 인정하겠나?"
힘겨운 숨이 목구멍에 걸려, 속삭이듯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주위를 감싸고 있던 어둠이 흩어지더니, 조각조각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럭스는 온몸이 들썩이도록 흐느껴 울며 땅바닥에 엎어졌다.
우뚝 버티고 선 가렌의 환영이 서서히 흩어지며, 늘 친절하기만 하던 얼굴이 거칠고 무표정하게 변해갔다. "방금 넌 나와 마음을 나눈 거다. 리그의 챔피언이 되려면 다른 이들이 네 마음속에 들어가도록 허락해야 하고, 그들도 네 진정한 신념과 목적을 너 자신보다 더 잘 알 수 있게 돼야만 한다. 준비가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진 이미 잘 알겠지."
오빠는 등을 돌리고는 복도를 따라 저 앞에 있는 한 쌍의 문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잠시 멈춰 손을 내밀어 주는 법도 없고, 따라오는지 한 번 돌아봐 주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럭스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마음을 다잡았다. 잠깐 동안 오빠를 소리쳐 부를까, 다시 대전당 안으로 달려가 리그의 모든 것을 꿰뚫는 시선에서 피해야 할까 고민이 됐다. 하지만 이것은 데마시아 최고의 마법사들에게 시험받던 때나 녹서스 심장부까지 나 있는 터널을 몰래 정찰하던 때보다도 더욱 중요한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최초의 진정한 도전이었다. 자신은 크라운가드 가(家)의 사람이 아닌가, 살면서 닥쳤던 다른 시련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도전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럭스는 날렵하게 지휘봉을 손에 쥐며 박차고 일어섰다. 이제 질문에 대한 자신이 첫 대답이 거짓이 아님을, 데마시아에 헌신하는 그녀의 애국심이 진실임을 증명해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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