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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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우승자
파일:오륜기(여백X).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얀오베 발드네르
(1992)

파일:중국 국기.svg 류궈량
(1996)


파일:중국 국기.svg쿵링후이
(2000)


류궈량
Liu Guoliang | 刘国梁


파일:Mondial_Ping_-_Men's_Singles_-_Round_4_-_Ma_Long-Koki_Niwa_-_02.jpg

출생
1976년 1월 10일 (48세)
허난성 신샹시
국적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신체
168cm
종목
탁구
전형
오른손 / 중국 펜홀더 전면 숏핌플
특기
서비스, 스매싱
1. 개요
2. 평가
3. 수상 기록



1. 개요[편집]


중국의 탁구 선수, 세계 탁구 그랜드슬래머, 중국탁구 감독, 중국탁구협회 회장.


2. 평가[편집]


작은 체구의 날렵한 스타일의 전면 숏핌플 중국식 펜홀더 탁구선수로 빠르고 강력한 포핸드 주력 전진속공탁구를 구사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기술은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이질 러버의 특성과 특유의 화려한 서브 모션을 적절히 이용해가며 매우 받기 까다로운 서브를 구사했다. 특히 스매싱이 최고 수준으로 뛰어났다. 반 박자 빠른 타이밍에 볼을 치는 그의 호쾌한 연속 스매싱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류궈량의 탁구 스타일은 조금은 한 쪽으로 치우쳐 보일 수 있으나 류궈량은 백핸드도 약하지 않았으며, 매우 적극적이고 빠른 백핸드 쇼트/푸쉬 기술을 구사했다. 또한 중국 펜홀더 이면타법의 창시자이기도 하다.[1] 기존 펜홀더의 전법에 후면 백핸드 드라이브라는 보조무기까지 장착하여 백쪽에서도 쉽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다. 얀오베 발드네르는 류궈량이 거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물론 기본적으로 펜홀더이니만큼 아무래도 백쪽으로 오는 상대의 선제공격과 다양한 코스변화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류궈량 본인도 올라운드 플레이보다는 적극적으로 돌아서서 포핸드를 치는 걸 선호하는 포핸드 주력의 테크니션에 가까웠다. 류궈량의 탁구는 이후 마린마룽의 탁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류궈량은 3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한 번씩 우승해 중국의 첫 탁구 그랜드슬래머가 되었다. 하지만 류궈량의 선수로서의 마무리는 아주 기분 좋지는 않았다. 류궈량이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사용했던 Spinpip 러버가 지나치게 구질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ITTF에서 공식적으로 밴이 됐고, 류궈량은 이에 타격을 입었다. 무엇보다 류궈량은 2000년 세계 팀 선수권 결승전에서 스웨덴을 만나 하루 2패를 하며 중국의 금메달 획득 실패의 결정적 원인이 되고 만다. 이후에도 류궈량은 전성기 만큼의 경기력을 펼치지는 못했다. 결국 류궈량은 2001년에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선수 은퇴를 선택했다. 이미 그랜드슬램을 이루기도 했고 본인은 코치로 전향하는 게 팀에 더 이롭다고 판단한 듯 하다.[2] 결과적으로 류궈량은 27세에 중국 대표팀 코치가 되었다.

중국에서 류궈량은 탁구 전술의 천재로 불린다. 코치가 된 후에도 선수들에게 탁구 전술을 많이 전수해주는 것으로 보이며, 특히 기막힌 타이밍에 타임아웃을 불러 적절한 지시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모습이 자주 부각되는 편이다. 코치로서의 지도 방식은 매우 엄격한 스타일이다. 선수들에 대한 냉혹한 평가와 잘못된 행동에 대한 가혹한 처벌방식도 유명하다.[3] 물론 류궈량이 선수들을 공개적으로까지 그토록 닥달하는 이유는 인격적 모독을 주기 위함이 아닌 중국탁구의 가혹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서 선수들의 앞날을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유남규의 증언에 의하면 류궈량의 본래 성격 자체는 의외로 정이 굉장히 많은 스타일이라고 한다.[4]

3. 수상 기록[편집]


올림픽
금메달
1996 애틀랜타
단식
금메달
1996 애틀랜타
남자 복식
은메달
2000 시드니
남자 복식
동메달
2000 시드니
남자 단식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5 톈진
남자 단체전
금메달
1997 맨체스터
남자 복식
금메달
1997 맨체스터
혼합 복식
금메달
1997 맨체스터
남자 복식
금메달
1999 에인트호번
남자 단식
금메달
1999 에인트호번
남자 복식
금메달
2001 오사카
남자 단체전
은메달
1993 예태보리
남자 단체전
은메달
1995 톈진
남자 단식
은메달
2001 오사카
남자 복식
동메달
1993 예태보리
혼합 복식
동메달
2001 오사카
혼합 복식
세계팀선수권
은메달
2000 쿠알라룸푸르
남자 단체전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8 방콕
남자 단체전
금메달
1998 방콕
남자 복식
은메달
1998 방콕
남자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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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류궈량이 중펜 이면타법 전법을 처음 개발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게 류궈량이었던 건 확실하다.[2] 펜홀더 전진속공이라는 전형 자체가 체력적으로 부담이 큰 전형이기도 하다.[3] 커리어 초반 장지커같은 경우에는 류궈량의 지시로 아예 대표팀에서 강등시키고 지방 팀으로 보내버릴 정도였다. 최근 알려진 사실로는 장지커의 국대 추방의 이유는 도박 때문이었다고 한다. 탁구판에서 추방 안 시킨 게 다행[4] 그를 마냥 독불장군식 독재자 코치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장지커에게 다시 돌아올 걸 믿는다고 말해 준 것도, 세계선수권에서 연달아 패배해 실의에 빠진 마린에게 반드시 다시 기회가 있을 거라고 격려해 준 것도, 올림픽에서 연달아 준우승을 해 탁구를 그만두기 직전 상황까지 갔던 왕하오를 다시 붙잡아 준 것도 류궈량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