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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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북한의 군인, 정치인, 체육인.

2. 생애[편집]


1949년 2월 16일에 태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젊어서 군인의 길을 걸은 것으로 보이는데, 1997년 4월 13일 최고사령관 명령 0088호에 따라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장령이 되었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이후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재선되었는데 정확한 직무는 알 수 없으나 군사체육 부문에 종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워낙 언변이 좋고 유머감각이 넘쳐서 김정일과 고용희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4월 14일, 최고사령관 명령 0010호에 따라 중장으로 진급하였다. 2008년 11월, 제1차 세계청소년여자축구선수권대회 우승 선수단이 귀국할 때 마중을 나오는 등 각종 체육 행사에 다녔다. 2009년,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근데 강등이 됐던 것인지 2011년 4월 12일, 최고사령관 명령 제0056호와 2012년 2월 15일, 최고사령관 003호에 따른 중장 진급 명단에도 리종무가 있다.

2011년 4월, 조선축구협회 위원장 자격으로 독일 축구협회와의 협조 양해문에 서명하였으며, 2012년 10월에는 김영훈의 후임으로 체육상에 임명된 것이 확인되었다. 2012년 11월 4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국가체육지도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초대 위원에 위촉되었다. 2013년 10월, 중국 톈진에서 열린 제6차 동아시아경기대회에 북한 올림픽위원회 대표단장 자격으로 참석했으며, 2014년 3월,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 최고인민회의 13기 1차 회의에서 체육상에 유임되었다.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이후 2016년 11월까지 체육상 및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으로 각종 활동을 하다가 12월에 김일국으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경질이나 숙청은 아니고 주성하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인, 조선인민군 내부 체육단을 망라한 7·27사단장으로 조동되었다고 한다. 이후 2019년 3월,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재선되었다. 주성하의 보도에 따르면 2019년에 와병하여 사단장에서 물러날 뻔 했으나 리종무의 후임으로 거론된 현송월의 남편 박시철 중좌의 임명에 대해서 군 내부에서 지나친 파격승진이 아니냐고 말이 많자 리종무가 병에서 회복되는 대로 다시 7.27 사단장에 복귀시켰다고 한다. # 하지만 그 뒤로 뭘하고 지내는지는 불분명하며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도 소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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