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수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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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큰 앗 딘 메수트
페르시아어, 아랍어 : ركن الدین مسعود
튀르키예어 Rukn al-Dīn Mesud ibn Kilij Arslan

재위 1116년 ~ 1156년

1. 개요
2. 생애
2.1. 대십자군 전쟁
3. 기타



1. 개요[편집]


룸 술탄국의 4대 술탄. 룸 술탄들 중 가장 오래 재위하며 부왕 클르츠 아르슬란 1세 사후 불안정했던 룸 셀주크를 재차 안정시키고 지역 강국으로 발돋움시켰다. 전략적 능력 역시 뛰어났다. 특히 2차 십자군 당시 독일, 프랑스 십자군에 연이어 대패를 안기며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콘야에 셀주크 양식의 건물들을 지어 수도로써의 위엄을 높혔다.


2. 생애[편집]


클르츠 아르슬란 1세의 차남으로, 형 멜리크샤가 1116년 필로밀리온 전투에서 패배하여 동로마 제국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자 (알렉시오스 1세의 예견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다니슈멘드의 도움으로 콘야를 점령한 그는 멜리크샤를 우선 실명시켰다가 곧 살해하였다. 그후 자신의 즉위를 도와준 다니슈멘드에 칼끝을 돌려 일부 영토를 점령하였다.

비록 1125년 동생 아랍이 콘야를 포위하자 콘스탄티노폴리스요안니스 2세에게 망명하기도 했으나 복위에 성공하여 1130년에는 콘야에 알라에딘 모스크 건설을 시작하였다. (완공은 무려 1221년에야 이루어졌다) 1130년대 다니슈멘드에 눌려 있던 그는 1142년 메메드 가지가 사망한 후 동로마와의 공조 하에 평화를 유지하며 지역 강국으로 떠올랐다.


2.1. 대십자군 전쟁[편집]


안정기 동안 세력을 키운 메수드는 2차 십자군에 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146년 10월의 2차 도릴라이온 전투[1]와 1147년 1월의 카드무스 산 전투[2]에서 각각 독일 국왕 콘라트 3세와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의 십자군을 괴멸시키는 대승을 올렸다. 1149년 8월에는 이나브 전투로 약화된 안티오크를 포위했으나, 누르 앗 딘의 개입으로 철수하였다.

다만 이후 누르 앗딘의 딸과 결혼하며 그와 동맹을 맺고 함께 망해가던 에데사 백국을 분할하기로 하였다. 1151년 메수드, 누르 앗딘, 그리고 마르딘의 티무르타슈가 함께 에데사 백국을 공격해 각각 라벤델, 아인탑, 사모사타 및 비레칙을 점령하였다. 1156년 메수드는 사망하였고, 아들 클르츠 아르슬란 2세가 계승하였다.


3. 기타[편집]


여담으로 당시 셀주크 술탄 기야스 앗 딘 마수드 (재위 1133 ~ 1152년)와 아랍/페르시아어 이름이 같기에 12세기 서아시아사를 볼 때에 상당히 헷갈린다.

40년에 걸친 긴 치세 동안 군사 원정에 별로 나서지 않고 내치를 우선시했지만, 전투에 나섰다 하면 항상 승리한 편이었던 명장이었다. 특히 2차 십자군 당시 독일과 프랑스 국왕을 연거푸 격파한 것은 중세 시기에 흔하지 않은 전공이었다.

메수드의 딸들 중 하나인 카메로는 콤니노스 가문 출신의 무슬림 개종자인 요안니스 첼레페스와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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