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프리데리케

덤프버전 :


||<-3><colbgcolor=#E0D1D1><tablebordercolor=#746968><colcolor=#000000><tablebgcolor=#FFF,#191919> 하노버 왕국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의 왕비
프리데리케 루이제 카롤리네 조피 알렉산드리네
Friederike zu Mecklenburg-Strelitz
||
파일: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프리데리케.jpg}}}
이름
독일어
프리데리케 루이제 카롤리네 조피 알렉산드리네
(Friederike Luise Caroline Sophie Alexandrine)
영어
프레데리카 루이즈 캐롤라인 소피 알렉산드리나
(Frederica Louise Caroline Sophie Alexandrina)
출생
1778년 3월 3일
신성 로마 제국 하노버 선제후국
사망
1841년 6월 29일 (향년 63세)
하노버 왕국
배우자
프로이센의 루트비히 카를 왕자[1]
(1793년 결혼 / 1796년 사망)
졸름스브라운펠스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공자
(1798년 결혼 / 1814년 사망)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 (1815년 결혼)
자녀
프리드리히, 카를, 프리데리케, 조피, 프리드리히, 빌헬름, 아우구스타, 알렉산더, 카를, 프리데리케, 게오르크 5세
아버지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카를 2세
어머니
헤센다름슈타트의 프리데리케 공녀
형제
샤를로테 게오르기네, 카롤리네 아우구스테, 게오르크 카를, 테레제, 프리드리히 게오르크, 루이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카를, 아우구스테 알베르티네
1. 개요
2. 작위
3. 생애



1. 개요[편집]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카를 2세의 5녀이자 하노버 왕국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의 왕비.

고모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조피 샤를로테와 언니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와 함께 다산 왕비로 유명하다.

파일:루이제 왕비와 프리데리케 왕비의 석상.jpg
루이제, 프리데리케 자매의 석상.


2. 작위[편집]


  •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프리데리케 여공작 전하 Her Serene Highness the Duchess Frederica of Mecklenburg-Strelitz (1778년 3월 3일 - 1793년 12월 26일)
  • 프로이센의 루트비히 카를 왕자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Louis Charles of Prussia (1793년 12월 26일 – 1798년 12월 10일)
  • 졸름스브라운펠스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공자비 전하 Her Serene Highness Princess Frederick William of Solms-Braunfels (1798년 12월 10일 – 1815년 8월 29일)
  •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부인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Cumberland and Teviotdale (1815년 8월 29일 – 1841년 6월 29일)
  • 하노버의 왕비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of Hanover (1837년 6월 30일 – 1841년 6월 29일)


3. 생애[편집]


1778년 3월 3일 하노버에서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카를 2세와 헤센다름슈타트의 프리데리케 공녀의 일곱번째 아이이자 다섯째 딸로 태어났다. 언니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와 함께 당시 유럽에서 손꼽히는 미녀였다.

1793년 루이제와 프리데리케 자매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아들들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와 루트비히 카를 형제와 결혼했다. 언니 루이제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먼저 결혼식을 올렸고, 이틀 뒤 같은 장소에서 프리데리케와 루트비히 카를이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금슬이 좋았던 언니 부부와 달리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남편 루트비히는 정부들과 어울리느라 프리데리케를 찬밥취급했다. 이에 프리데리케도 남편의 당숙인 루이 페르디난트와 불륜을 저질렀다. 그래도 둘 사이에는 2남 1녀가 태어났다. 결혼한지 3년만인 1796년 남편 루트비히 왕자가 디프테리아로 사망하면서 과부가 된다.

2년 후인 1798년 프리데리케는 졸름스브라운펠스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공자와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임신했다. 임신 사실을 언니 루이제에게 말했고 형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리드리히도 자신이 아이 아버지임을 인정하여 프리데리케에게 청혼했고 두 사람은 혼전임신(...)으로 재혼했다. 재혼 직후 딸을 낳았지만 8개월만에 요절했다.

하지만 행복한 재혼생활도 얼마 못갔다. 남편 프리드리히는 술고래였고 정서장애를 앓고 있었다. 이후 군대도 그만두면서 백수가 되었다. 형부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프로이센의 전 왕자비로서의 연금을 돌려주는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프리데리케는 자기 재산으로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다. 프리드리히와의 사이에서 프리데리케는 4남 2녀를 낳았다.

그러다가 1813년 노이슈트렐리츠를 방문하던 중 고모 영국의 샬럿 왕비의 5남으로 고종사촌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를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금방 사랑에 빠졌지만 프리데리케는 유부녀였다. 이미 남편과는 별거 중인 상태로 프리데리케는 형부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에게 이혼을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모두가 찬성하였고 별거중인 남편 프리드리히도 동의했다. 그런데 이혼에 동의하고 얼마 안 가서 프리드리히가 뇌졸중으로 급사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죽음이라서 프리데리케가 남편을 독살했다는 의혹이 돌았다. 모두가 이혼을 인정했다지만 이혼을 흠으로 여기는 것을 당연시 했던 시대이니 더더욱 그런 의혹이 돌만했다.

여하튼 1815년 영국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와 3번째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어머니이자 프리데리케의 고모였던 샬럿 왕비는 이 결혼을 반대했고 두 사람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낳았다. 그 중 딸 2명은 요절했고, 막내아들은 하노버 왕국의 마지막 군주였던 게오르크 5세다. 이때 프리데리케의 나이는 41세로 당대에나 현대에나 굉장한 노산이었다. 1837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하노버의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프리데리케도 함께 하노버의 왕비가 되었다.

하노버의 왕비가 된지 4년이 지난 후인 1841녀 향년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0-28 00:14:39에 나무위키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프리데리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차남이다. 참고로 언니 루이제는 루트비히 카를의 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와 결혼하면서 겹사돈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