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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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沭堅
생몰연도 불명

후조의 인물. 자는 벽강(壁強). 사예(司隸) 하간군(河間郡) 출신. 《자치통감》은 '술견(沭堅)'으로 기록하였으나 오기로 추정된다.


2. 생애[편집]


석호가 나라를 다스릴 때 소연(小掾)으로 임관하였고, 점차 승진하여 녕북장군을 지내다가 패왕(沛王) 석충(石沖)의 장사로 배속되었다.

태녕 원년(349년) 5월, 무제 석호 사후 황족들 간에 내란이 일어났는데, 이때 팽성왕 석준이 정변을 일으켜 소제 석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위에 올랐다. 그 소식을 들은 석세의 친동생 패왕 석충은 계(薊)에서 석준 토벌을 명목으로 거병하고, 술견만 계에 남겨 유주(幽州)의 수비를 명한 뒤 친히 병력 50,000명으로 남하하였다. 하지만 석충이 떠난 후 목견이 가혹하게 정치를 펼쳐 백성들의 원한이 사무치고 말았고, 결국 분노한 유주의 백성들이 칼과 창을 들고 관청을 습격하였다. 당시 함께 있던 자주현(刺咒縣)령은 넘어져 그대로 목숨을 잃었고, 목견 또한 그 자리에서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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