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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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趙
319년 ~ 350년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갈족(羯族)[2] 의 석륵이 스스로 대조천왕(大趙天王)에 올라 국호를 '대조(大趙)'라 하였으나, 먼저 세워졌던 유요(劉曜)의 조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후조(後趙), 갈조(羯趙), 석조(石趙), 호조(胡趙), 북조(北趙)라고 불린다.[3]
석륵이 319년에 건국한 뒤 조왕(趙王)으로 자칭하였다. 이후 하북, 하남, 산동, 산서, 요서 일대를 지배하였고, 328년에 전조(前趙)의 유요를 패사시켰다. 329년, 전조를 멸한 뒤 섬서성을 차지하였고, 330년, 천왕(天王)으로 즉위하였다. 특히 이러한 화북 평정에는 조카 석호의 도움이 컸다.
석륵이 333년에 사망하고, 석륵의 아들이었던 석홍(石弘)이 계승하였으나 실력자였던 석호가 승상 자리에 올라 실권을 장악했다. 이후 334년 왕위를 찬탈하여 3대 천왕으로 즉위하였다. 이 시기가 후조의 전성기였으나 이후 사냥과 정벌, 토목 사업 등을 남발하여 국운이 기울어졌다. 337년, 황태자 석수가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이으려고 했으나 발각되어 제거되었다. 이후 황태자였던 석선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우 석도를 죽이게 되고 이것이 발각되면서 역시 제거되었고, 석세를 세우게 되었다.
349년 석호가 죽고, 석세가 제위에 오랐으나, 갈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석호의 양자였던 한족인 석민(石閔)이 병권을 장악하였다. 350년, 석민이 괴뢰정권인 위나라(衛)를 세웠다가, 한 달도 안 지나서 그 황제인 석감을 폐하고 다시 건국하여 염위(冉魏)를 세웠다. 석감에 이어 석지가 제위에 올랐으나 351년 유현에 의해 32년 만에 멸망하였다.
1. 개요[편집]
後趙
319년 ~ 350년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갈족(羯族)[2] 의 석륵이 스스로 대조천왕(大趙天王)에 올라 국호를 '대조(大趙)'라 하였으나, 먼저 세워졌던 유요(劉曜)의 조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후조(後趙), 갈조(羯趙), 석조(石趙), 호조(胡趙), 북조(北趙)라고 불린다.[3]
2. 역사[편집]
석륵이 319년에 건국한 뒤 조왕(趙王)으로 자칭하였다. 이후 하북, 하남, 산동, 산서, 요서 일대를 지배하였고, 328년에 전조(前趙)의 유요를 패사시켰다. 329년, 전조를 멸한 뒤 섬서성을 차지하였고, 330년, 천왕(天王)으로 즉위하였다. 특히 이러한 화북 평정에는 조카 석호의 도움이 컸다.
석륵이 333년에 사망하고, 석륵의 아들이었던 석홍(石弘)이 계승하였으나 실력자였던 석호가 승상 자리에 올라 실권을 장악했다. 이후 334년 왕위를 찬탈하여 3대 천왕으로 즉위하였다. 이 시기가 후조의 전성기였으나 이후 사냥과 정벌, 토목 사업 등을 남발하여 국운이 기울어졌다. 337년, 황태자 석수가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이으려고 했으나 발각되어 제거되었다. 이후 황태자였던 석선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우 석도를 죽이게 되고 이것이 발각되면서 역시 제거되었고, 석세를 세우게 되었다.
349년 석호가 죽고, 석세가 제위에 오랐으나, 갈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석호의 양자였던 한족인 석민(石閔)이 병권을 장악하였다. 350년, 석민이 괴뢰정권인 위나라(衛)를 세웠다가, 한 달도 안 지나서 그 황제인 석감을 폐하고 다시 건국하여 염위(冉魏)를 세웠다. 석감에 이어 석지가 제위에 올랐으나 351년 유현에 의해 32년 만에 멸망하였다.
3. 역대 황제[편집]
[1] 갈족 언어의 계통에 대해서 논란이 분분하다. 인도이란어파의 소그드어나 토하라어라는 설, 시베리아 예니세이어족의 케트어와 유사하다는 설 등이 있다.[2] 흉노의 분파로써 눈이 깊고 코가 크며 눈 색깔이 푸르거나 수염이 붉고 많다고 기록되어 있어 백인 계열이 아닌가 여겨지고 있다.[3] 그런데 전조도 호조, 북조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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