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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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박상학 프로필 사진.jpeg.jpg
이름
박상학 [朴[[相]][[學]]]
출생
1969년 2월 16일 (55세)
북한 량강도 혜산시
학력
김책공업종합대학 (퇴학)
직업
북한 인권운동가

1. 개요
2. 논란 및 사건사고
3. 비판




1. 개요[편집]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탈북자 출신으로 북한 인권운동가이다.

1969년 2월 16일 북한의 량강도 혜산시 출생으로 북한의 명문대학인 김책공업종합대학에 입학했으나 예비과 과정을 4개월 다니고 성적 미달 퇴학을 당했다. 김일성사회주의노동자청년동맹 청년돌격대 선전지도원을 역임한 바 있다고 한다.[1]

1998년에 탈북해서 1999년에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숙부들이 국가보위성 국가보위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가 사망했고 사촌들은 꽃제비가 돼서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2] 2005년부터 북한의 독재 정권에 대한 내용을 담은 대북전단 배포 등의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고 한다. 2013년에 노르웨이 '오슬로 자유포럼'에서 '창의적 반대운동을 위한 바츨라프 하벨상'(Vaclav Havel Prize for Creative Dissent)[3]수상하였다.


2.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상학/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비판[편집]


일부 단체들이 하는 공개적 방식은 나도 반대한다. 북한 자극하고 우리 정부와도 충돌을 불사하는 건 옳지 않다.

-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한겨레와의 인터뷰


진보 진영은 물론 보수 일각에서까지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심지어 진보 진영 사이에서 탈북민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게 한 인물로, 대북전단 이슈가 논란이 될 때마다 전단을 반대하는 탈북민은 심적 고생을 겪어야 했다. 탈북민 모두가 박상학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이들에게 혐오발언을 쏟아내기도 할 정도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탈북민 윤설미 씨는 환경보호 캠페인에 참가하다가 뜬금없이 “왜 삐라를 뿌리고 난리들이냐”며 시비를 들은 경험을 소개한다. # 기타 전단을 반대하는 탈북민에 대한 이야기는 이 기사를 참조하자.

하지만 그는 북한에서 선전지도원으로 일한 인물이다. # 그렇기에 자신의 경력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이런 행동이 필요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게다가 극우에 가까운 인물들에게는 오히려 이걸 제지하는 정부는 다 나쁘게 보이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나머지는 다 빨갱이로 보이기에 이런 인사에게 더 열광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이것은 부적응이 아니라 '태극기 코인' 마냥 국내 정치를 제대로 악용하는 것이다. 그는 2014년 새누리당에서도 자신에 대한 반대 주장이 나오자 "비겁한 보수들이 종북세력보다도 더 역겹다", 새누리당이 "남남갈등을 유도한 북한에 넘어가 큰일"이라며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런 독설에 열광한 국내 여론에 부응해 그에게 한 번에 천만원을 기부한 사람도 존재할 지경이다. #

그러나 이런 태도는 북한을 민주화하는 입장에서 보아도 이런 시도에 대한 한국 여론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고, 상당수의 탈북민이 원하는 통일에 대해서도 탈북민은 미개한 극우주의자라는 인식을 키워[4] 통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악영향을 끼쳐 탈북민에게도 좋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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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 체제의 특성을 볼 때, 이런 이력을 고려하면 그는 북한에서 꽤나 특권층 자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2] 출처 [3] 바츨라프 하벨은 체코의 극작가이자 민주화운동가, 정치인.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적극적으로 공산독재에 맞서 싸웠으며, 공산권 붕괴 이후 민주화된 체코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4] 탈북민도 사람이니만큼 정치 성향이 다양하다. 보수 탈북민이 매체를 많이 타고 지원도 많기에 그렇지 박상학의 고향인 혜산에서부터 남북정상회담에 열광했다는 주장을 하는 탈북민도 존재하고, # 호남 탈북민은 민주당에 더 많은 표를 준다.# 심지어 대북지원은 원하는 쪽이 탈북민의 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