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교수)/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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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국가정보원 고문 관련 발언
3. 1억 협찬 논란
4. 경력 논란
5. 적폐청산은 정치보복
5.1. 내로남불 논란
6. 편향성 논란
7. 이명박은 적어도 소통이 원활한 대통령
8. 유재중 의원과의 질긴 악연
9. 총선 지원 리스트 의혹
10. 발마사지 해명 논란
11. 네거티브 선거전
11.1. 여권의 음해성 공작 주장
11.2. 박근혜 캠프 대학생 금품제공 의혹 제기
11.3. 구전 홍보단 운영 문건 허위 폭로 주장
12. 친박 공천학살의 희생자?
13. 세종시 발언 논란
14. 조중동이 없었다면 성공적인 민주화는 불가능했을 것
15. 청와대 홍보기획관실 조갑제 항의
16. 이회창 후보를 돕는 사람이라 신뢰할 수 없다 발언 논란
17. 폴리페서 논란
18. 헤게모니 발언 논란


1. 개요[편집]


박형준에 대한 비판 및 논란을 다룬 항목이다.


2. 국가정보원 고문 관련 발언[편집]


국정원 비판과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던 도중 “국가정보원에서 고문이 아직도 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하였는데, 문제는 박형준이 속해있었던 MB 정부하에서 일어났던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은 고문 사건으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옳지 못한 발언이다. 당시 상대측이었던 유시민에게 반론을 듣기도 했다.

사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 협박, 회유는 물론 고문도 있었다는 진술이 나와서 해당 주장은 신중치 못했다는 의견이 있었다. "'서울시 간첩 공무원' 국정원 조작" 여동생 증언


3. 1억 협찬 논란[편집]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시절 정청래의 보좌관과 함께 게임산업 관련 협회 비용으로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열린 게임 행사에 다녀와서 논란이 되었다. 문제는 해당 9월에 게임산업개발원의 상품권업체 인증제 취소 후 재지정이 논의되고 있었기에 의혹이 재기된 것. 이에 본인은 "1억 원 협찬은 대행사가 전적으로 담당했다"면서 "본인은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4. 경력 논란[편집]


5공 때 엄청난 탄압 속에 젊은 지식인들은 쉽게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모택동주의에 빠져들었고, 박형준 본인 또한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갔다고 한다.

실제로 박형준은 박지원처럼 한쪽 눈이 매우 불편한데 오른쪽 눈이 실명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80년도 때 시위하다가 최루탄을 맞았기 때문. 때문에 오른쪽 눈이 심하게 손상되어 이후 지금까지 오른쪽 눈으로 글자를 보지 못한다.[1]

다만 애초부터 박형준 본인은 교조주의적 태도와는 거리를 두었고, 88년 유럽에 체류하며 동유럽체제 문제점을 보면서 마르크스주의는 더 이상 희망의 원리가 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후 해당 과거가 재조명되면서 과거 주사파였던 하태경과 비슷하게 자유한국당을 비난하는등의 행보를 보이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에 대해 딱히 논란이 될 수 없다는 의견과 다른 논란도 아닌 과거 극단적으로 치우친 좌파 경력은 심각한 흑역사이자 두고두고 비판받을 수 밖에 없는 오점이며 특히 보수 정치인으로서 실격이였다는 의견이 대립하였다.

"젊어서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요. 나이들어서도 보수가 아니면 뇌가 없는 것이다.(A man who has not been a socialist before 25 has no heart. If he remains one after 25 he has no head.)"라는 말이 있듯 오히려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라는 의견도 있다.


5. 적폐청산은 정치보복[편집]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에 대하여 썰전 매회마다 적폐청산이 아니라 정치보복을 하고 있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있다. 다만 어떤 부분은 오히려 내로남불, 혹은 모순이 되는 부분이 있다. 263화에서 박형준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하며, 언제까지 이런 방식을 계속 할 수 있겠느냐, '덕이 미움을 이긴다.' 라고 국민통합으로 '미움의 정치'를 넘어서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에 유시민은 동의하면서도 통합이라는 미명하에 과거의 불의를 덮으면 과연 통합이 될지라는 딜레마가 있다고 반박했다. 박형준은 덮자는게 아니라고 했다만 바로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전 정권 사정에 대해 '국민통합이 안된다' 라는 명목으로 반대했는데, 전 정권에 대한 사정을 하지 않으면 유시민이 말한 과거의 불의를 덮어버리는 꼴이 되고 당장 여론의 반응에서 보여지듯 오히려 국민 분열이 된다. 그렇다고 전 정권에 대한 사정을 하면 박형준 같은 사람은 또 정치보복이라고 비판을 한다. 즉 뭘 해도, 어떤 프레임을 씌워 욕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형준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하나도 말하지 않은 채 유시민의 말에 '그건 아니죠(그 소리가 아니라~)' 라는 문구로만 반박할 뿐,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방안은 한글자도 꺼내지 않았다.

이후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2] 문화예술계, 방송장악 사법부 블랙리스트, 삼성 다스 소송비 상납 의혹[3] 등 다스 논란, 영포 빌딩 청와대 문건들 발견[4] 등으로 논란이 되었던 것에 어떻게 제대로 정리하지도 않고 벌써부터 국민통합을 주장할 수 있냐는 뼈아픈 지적을 받았다.


5.1. 내로남불 논란[편집]


언제까지 이런 방식을 계속 할 수 있겠느냐와 같은 주장 등과 같은 주장에 대해서 여러 논란이 생겼는데 이중 내로남불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사실 전 정권에 대한 사정으로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는 것은 상당히 오래간다는 것을 명백하게 입증해내보인 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였다.[5] 실제로 이명박 정부때만해도 수많은 논란들이 생길 때 전 정부인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며 자신들은 이보다 더 낫다는 것을 내보였다.[6] 때문에 본인들은 잘 써먹었는데 타인보고는 쓰지말라는 것이냐는 원색적인 비난이 생겼다.

'덕이 미움을 이긴다'고 국민통합으로 '미움의 정치'를 넘어서야 할 때라고 주장한 것도 논란이 됐는데 이는 국민 통합과 미움의 정치를 넘어서는 것은 본인이 속했던 이명박 정부조차도 실제로 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본인들과 자신들도 못했던 것을 타인에게 어떻게 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여담으로 이를 시도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유승민 의원이었다.[7]


6. 편향성 논란[편집]


이명박 전 대통령 조사에 대해 반발하며 거센 비난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때문에 다른 주제들은 나름대로 중립과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면서 유독 이명박 전 대통령 이야기만 나오면 편향적이 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모순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반응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반응의 차이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겐 여론이 어떤지 여론을 따라야 하지 않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서도 정작 이명박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국민의 여론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에 대해 긍정적인 상황이다. 때문에 박형준이 이명박에 대해서는 국민 여론 자체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지적[8]도 받았다. 국민 74,2% ”이명박 구속해야” 압도적 찬성, 대구 경북도 61%나, ‘혐의부인’ MB, 檢 구속영장 검토…이명박 엄정처벌 찬성 ‘79.5%’ 국민 여론 다수, [그래픽] 이명박 前 대통령 구속수사 찬반 여론


7. 이명박은 적어도 소통이 원활한 대통령[편집]


2015년 6월 이현덕 대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하던 도중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적어도 소통은 원활했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당시 박형준은 이 대통령은 참모들과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관련 부처 실·국장급, 과장급도 주요 정책 논의에 불러 이야기를 들었다. 내부 언로는 개방적이었다. 참모 간에 이견도 많았다. 대통령 앞에서 수석끼리 얼굴을 붉히며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고 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하지만 이명박이 과연 참모 등을 포함하여 소통이 원활했는지는 미지수. 이미 과거 한나라당 공천에서도 이명박이 여당인 한나라당과 본인의 측근들의 조언에 대해 별로 귀담아 들으려 하질 않았다는 평가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9].

박형준도 당시 한나라당 경선, 공천의 난장판[10]을 직접 보고 겪었던 인물이였다. 한나라당 공천 파동까지도 직접 보았던 당사자가 박형준인데 이런 사람이 어째서 이명박에 대해서 소통이 잘되었다고 하는지는 미지수.[11]

정두언이 자서전과 인터뷰를 통해 당시 한나라당 공천에서 이명박 본인이 측근들의 조언을 들으려 하질 않았다고 폭로하였다. 이후 이명박에 대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스타일이라고 쐐기를 박아버렸다. 이후 이명박의 최측근이었던 김희중[12]에 이어 김백준[13] 등이 줄줄이 돌아서버리면서 소통 원활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들이 대두되었다. 박형준 교수님 본인은 예스맨이었나 보다.


8. 유재중 의원과의 질긴 악연[편집]


유재중-박형준 '질긴 악연'
부산 수영 박형준, 새누리당 유재중 후보 고소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유재중 의원의 의혹을 둘러싼 진실공방전이 여러번의 고소등으로 까지 심화되면서 결국 서로간의 사이가 크게 벌어졌다. 접전지가 부산쪽이기에 해당 논란이 크게 불거지진 않았지만 당시 사이가 크게 벌어져 박형준의 가족사 논란, 유재중의 성추문 의혹 논란에 대해 서로가 상대측 진형에서 이를 부추긴 것으로 의심할 정도였다. @@@


9. 총선 지원 리스트 의혹[편집]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가 박형준 전 시민사회특보와 정진석 전 정무수석(현 자유한국당 의원) 등의 국회의원 당선을 지원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

이에 대해 박형준은 자신은 19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으며 여권에서 무슨 지원을 해주고 안 해주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공천심사위원회의 전횡에 대해 전혀 발언조차 못했다” “2012년 총선도 박근혜 대표 체제하에서 공천이 이뤄졌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실상 권력의 중심이 그리로 넘어간 상태였다”고 반박하였다. 박형준 “2012년엔 이미 박근혜가 권력인데 내가 MB 지원을 받아?”


10. 발마사지 해명 논란[편집]


이명박 전 대통령의 얼굴 덜 예쁜 여자 서비스 좋아 발언에 대해 발마사지 얘기가 성매매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해명하여 논란이 되었었다. 사실 해당 논란이 커진 것은 여성 비하라는 비판 때문이었다.

당시 발언은 이명박 후보 본인이 비공식적 술자리에서 이야기 하던 도중 현지에서 오래 근무한 "선배"[14]는 마사지걸들이 있는 곳을 갈 경우 가장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고르더라. 예쁜 여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을 받았겠지만 예쁘지 않은 여자들은 자신을 선택해준 게 고마워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하게 된다였다.

사실 선배가 받았다는 마사지는 발 마사지로 보기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변종 업소[15]가 아닌 건전하게(?) 발 마사지를 받는 사람들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마사지사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는 이상 마사지로 신체를 지압하여 신체의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려고 가기 때문에 얼굴은 관심 밖이고 얼마나 지압을 잘해주느냐가 우선순위이다.[16]

하지만 이슈화가 크게 안 됐는데 이후 한나라당 대변인 측이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져서 모두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였을 뿐, 일부 매체에서 암시하는 특정 직종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라고 논란을 초래하는 해명을 해버려서 주요 타겟으로 크게 비판받았기에 설득력이 부족한 변명이라고 비판을 받긴 했지만 논란의 크기가 작았던 박형준은 그냥 묻혀버렸다.

여담으로 나경원도 동석했는데 나경원은 “밥 먹으며 (농담으로) 한 얘기”라며 자신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었는데 사실 이것이 당시 이것이 보수 지지자들의 정서였다. 선배가 받은 것이지 이명박 본인이 마사지를 받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술을 곁들인 식사자리에서 농담으로 나온 이야기였다는 뉘양스가 강했었다. 좀 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지지자들도 그냥 이명박이 식사 자리에서 말이 과했던 것이고 이에 대해 실언이였으며 본인이 경솔했다고 사과하고 넘어가면 될 문제지 이것이 왜 여성 비하로까지 크게 이슈화가 되어야 하는지 상당히 불쾌해하였다.


11. 네거티브 선거전[편집]


파일:오로지진실만을말하시는분들.jpg
17대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캠프 대변인이였기 때문에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통령 경선 당시 네거티브 선거전의 당사자들 중 한 명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연한 것이 당시 17대 한나라당 경선은 승리자가 사실상 대통령 확정인 승부였으며 이명박과 박근혜 둘의 우세한 분야가 다르고 정도도 비등해서 경선 룰에 따라서 승패가 갈릴 수도 있는, 그야말로 초접전이었으며 박형준은 이명박 캠프의 입이였기 때문에 박근혜 캠프에 대한 의혹들의 상당수가 박형준의 입에서 줄곧 거론되고 공격되었다.

당시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통령 경선 당시 치열한 네거티브 공방전은 엄청났는데 당시 이명박, 박근혜 양측 모두에게 치명적인 논란들은 거의 대부분 이때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17]

결국 이명박이 승리하였지만 해당 공방전들이 남견 상처와 후유증 서로에 대한 악감정과 증오는 엄청났으며 이후 양측 모두의 발목을 잡아 결국 둘 다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져버렸기에 당시 이명박의 입으로 불리며 박근혜 캠프에 대해 네거티브 의혹제기를 주장하는 등 네거티브 공방전에서 적극 활약한 박형준 또한 당연히 논란이 되었다.


11.1. 여권의 음해성 공작 주장[편집]


박근혜 후보 측이 노무현 정권의 보고서를 입수해 아군을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며 여권의 음해성 공작에 아군이 휘둘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네거티브성 반론 주장까지 했다. @@

실제로 이는 과거 유승민 의원도 노무현 정부의 보고서에 대해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정부기관이 검증하는 것은 아무한테도 도움이 안된다고 보며,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다만 유승민 의원은 "정부기관 보고서에서 지적한 대운하의 경제성은 없다는 것과 환경 훼손의 내용 자체는 사실이며 이번 일을 계기로 중립지대의 전문가들이 대운하에 대해 장단점을 따져봐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한마디로 당시 정부와 여당에서 대운하에 대해서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으로 박근혜 캠프측에서도 의심하였기에 박형준이 논편을 통해 여권의 음해성 공작이라고 주장할 만은 했으니 박근혜 캠프는 그냥 이명박의 대운하 정책이 비판적인 시각이었을 뿐이였다.

요약하자면 박형준의 주장대로 음해성 공작에 휘둘리기는커녕 애초부터 유승민의 사례처럼 박근혜 선거 캠프측에서도 대운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였던 것이지 결코 여당에 휘둘린 것은 아니었다.


11.2. 박근혜 캠프 대학생 금품제공 의혹 제기[편집]


“박캠프, 이명박 비방 UCC 제작 등에 수천만원 제공
李측, 朴캠프 대학생 금품제공 의혹 제기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후보 캠프 대변인 시절 박근혜 캠프에 대해 이명박 비방 UCC제작 및 합동연설회 대학생 동원을 위해 수천만원대의 금품을 제공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박형준은 박 후보 캠프 산하 청년 및 대학생팀장 황모씨와 김모씨(제보자)간의 대화내용이 담긴 녹취록”이라며 증거자료를 제시했다. “녹취록을 보면 박 후보 측 ‘2030 국민참여본부’가 대운하 비방 UCC 제작을 위해 청년 및 대학생팀의 대학생 8명에게 6박7일간의 지역탐사를 사주하고 1000만원의 자금을 제공했다”면서 “돈은 김 본부장이 현금으로 줬다”고 주장했다.

이에 당시 이혜훈 대변인은 박형준의 주장에 대해 “대학생 정치의식을 조사하기 위해 정식으로 용역을 준 것”이라며 “자기 안경으로 남을 바라보고 자기가 그러니 남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날을 세웠다. 이명박·박근혜측, 물고 물리는 금품제공 폭로

결국 한나라당은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간의 돈선거 폭로전에 관여하여 이명박 전 시장측을 도운 김대은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해임조치했다. 한나라당, 朴측 돈선거 녹취 부대변인 해임


11.3. 구전 홍보단 운영 문건 허위 폭로 주장[편집]


박근혜 캠프가 폭로한 '구전 홍보단 운영‘ 문건과 관련해 당시 이명박측 캠프 대변인이었던 박형준이 "실무자가 만들었다 폐기한 것"이라면서 "대외협력위원장(정의화 의원)은 물론, 정종복 본부장, 김대식 단장에게도 보고된 적도 없고 실행된 적도 없는 폐문건에 불과하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박형준의 당시 주장대로 보고된 적도 실행된 적도 없는 것은 당연히 사실 여부 확인이 필요한데다 실제로 이것은 활성화 된 것도 실행된 것도 아니라서 여기까지는 맞는 말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실무자가 분명하게 작성한 문건이였기에 상대측의 의혹제기에 대해 허위폭로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였다. 한마디로 허위폭로라는 것은 실수였다.[18]


12. 친박 공천학살의 희생자?[편집]


박형준 본인은 본인의 경선 탈락에 대해 박근혜에게 찍혀서 그렇다는 어조를 자주 말하지만 사실 친박계가 최근 논란들이 많다 하더라도 해당 논란들과는 별개로 친이계와 친이계 소속인 박형준이 이에 대해 자신들은 공천학살의 희생자라고 말할 처지는 결코 아니었다.

애초부터 공천학살의 스타트를 끊어 대규모로 친박계를 공천에서 몰살시키는 것을 시작한 당사자들은 바로 친이계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를 거둔 친이계에서 2008년 총선 과정에서 친박 몰살/소탕을 벌였기 때문[19]

이후 이명박이 정운찬, 김태호를 국무총리로 기용한 것도[20] 박근혜 견제 의도가 강하다는 의혹이 보수내에서도 줄곧 제기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보수 지지자들은 이미 이명박과 친이가 뭘 하던간에 신경쓰지않고 박근혜를 지지했는데 당시 한나라당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위치를 선점한 것이 박근혜였기 때문.

결국 친이계는 이후 과거 자신들이 경선에서 승리한 후 뒤이어 대선에서도 승리하여 친박에 대해 주도권을 잡고 대대적으로 친박 소탕에 나섰던 처럼 친박계 또한 친이계에 대해 대선에서 이겨 주도권을 잡으면서 보복으로 줄줄이 갈려 나간 것이다.[21]

사실 한나라당/새누리당 당시의 공천의 정당성과 원칙에 의거한다는 것들은 예전부터 이미 크게 훼손된지 오래였다. 당시만 해도 이상득, 이재오 등이 사사로이 공천에 개입한다는 정황들과 이에 대한 불만들이 줄곧 불거졌으며 그조차도 수많은 논란중 일부일 뿐이다.[22]

대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박희태 숙청. 박희태에 대해 65세 이상 3선 이상 공천금지를 운운하면서 정작 이명박의 친형인 이상득이 공천돼버렸다. 당시 공천 당시 5선의 이상득(73) 국회부의장을 제외한 65세 이상 의원 전원이 탈락했는데 3선 이상 의원 20명 가운데 무려 14명이 해당 공천 원칙을 이유로 줄줄이 숙청되었다. 박희태조차도 원래 이명박 캠프의 선대위원장이자 차기 국회의장감으로 거론되는 인물이었는데 정작 박희태는 이 기준으로 날리면서 정작 해당 기준에 맞지 않아 공천 기준에 미달한 이상득이 공천되는 사실상 원리원칙 따위는 죄다 말아먹은 것이 당시 보수여당 한나라당의 공천이었다.

일부에선 이에 대해 박형준에 대한 논란/비판으로 성립되려면 박형준이 친박 학살에 크게 개입했다는 확증이 있어야한다고 주장하며 그리고 친이계에서 먼저 전쟁을 시작하고 그 보복으로 박형준이 공천을 받지 못 했다고 해서 그게 공천 학살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본질적으로 부정할 근거는 못 된다. 먼저 때렸다고 이후에 보복으로 때린 행위가 정당화되거나 보복으로 맞은 사람이 맞았다는 사실이 사라지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다른 의견도 있는데 본인이 공천을 받은 것은 응당한 것이고 본인이 공천을 받지 못하면 피해자라는 것은 본인의 생각일 뿐이다. 선거 결과로 말하자면 "박형준은 공천을 받았을 때, 공천을 받지 못했을 때에 상관없이 모조리 유재중 의원에게 참패했다" 때문에 공천 여부를 떠나서 박형준은 본인의 지역구내에서도 국회의원이 되는데 필요한 충분한 지지율마저도 제대로 확보를 하지 못한 것이고 박형준이 자신의 정치경력의 단절에 대해 공천을 핑계삼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박형준 본인이 공천 학살을 운운해서 쓸데없는 논란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13. 세종시 발언 논란[편집]


세종시 논란에서 박형준은 차분하게 정책적인 토론으로 끌고 가야지, 이걸 계속 이런 문제를 갖고 정말 죽기 살기 식으로 싸우게 되면 결국 그 피해가 국민에게 간다는 함의는 있을 것이라고 하며 박근혜에 대해 한나라당 당헌을 보면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문제제기를 하면, 당연히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박근혜 전 대표를 압박했다. 물론 여기까지 보면 박형준 본인으로도 나름 지적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들은 충분히 되었다. 논리 자체도 타당했다.

문제는 이 사건의 근본을 따져본다면 애초부터 정쟁의 계기를 이명박 본인이 일부 제공하였다. 당시 이명박은 충청북도 업무보고 자리에서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 강도가 왔는데도 ‘너 죽고 나 죽자’ 하면 둘 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 박형준이 한 발언 자체는 틀린 것이 아니지면 박형준은 애초부터 이 문제가 죽기 살기 정치 정쟁으로 흘러간 원인을 제공한 것은 이명박이라는 사실을 쏙 빼먹었다. 다만 이에 대해 박형준은 당시 현직 정무수석인 만큼 이명박에 대해 편향적인 편들기는 불가피했다는 것을 이해해줄 필요는 있다. 근데 저 비유 자체가 애초부터 적절한지가 미지수 근데 누가 강도지? 야당? 반대 여론?

아무튼 이명박의 해당 발언에 대해 당연히 분개한 박근혜는 "백번, 천번 맞는 얘기다. 그런데 집안에 있던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대응하였다.

사실 이 논란을 부추긴 근본 원인은 언론이었는데 조선일보가 그 중 하나였다. 아예 기사 제목을 ‘이대통령 지도자론 언급…박근혜 전 대표 겨낭했나’라고 뽑았다. 부제로는 ‘일 잘하는 사람 밀고 싶어…정치적 계산만 하면 발전 없다’로 뽑아버렸다. 조선일보가 보수 지지자들과 보수정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사실상 이명박과 박근혜에 대해 싸움을 붙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23]


14. 조중동이 없었다면 성공적인 민주화는 불가능했을 것[편집]


의원시절 "조선·동아가 민주화 운동의 간접적 후원자 역할을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며 조선·동아는 비록 5공 치하에서 권력에 굴종한 면도 있지만 방송이 완벽히 통제되고 있던 시절에 조중동이 없었다면 성공적인 민주화는 불가능했을 것" "조선과 동아를 역사의 반역이라고 한다면 그들(총리와 열린우리당)의 존립근거인 민주화 운동 자체를 부정하는 것""조선-동아는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내내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유독 노무현 정권에만 비판적인 것이 아니"라고 두둔했다.

이에 대해 여러가지 비판이 나왔는데 우선 이들 언론사들이 아예 기여를 안한 것도 아니고 민주화 운동에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는 했으나 하지만 박형준은 이들이 없었으면 민주화는 불가능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조선 - 동아에서 민주화 운동을 훼손하고 폄하한 것들에 대해서 쏙 빼먹은 편향적인 주장이며 지나치게 공적 부풀리기라는 지적들을 받았다. 게다가 조중동은 이후 끊임없이 과거 독재 정권들에 대한 미화들과 옹호들을 끝도 없이 하고 있다. 잠깐만 찾아봐도 기사들이 쏟아져서 일일히 링크했다가는 한도 끝도 없을 정도. 결과로 따져보면 이들 조중동은 기여보다도 오히려 왜곡, 폄하, 깎아내리기를 훨씬 더 많이 했다.[24] 비판측에서는 조중동들에 대해 조그마한 도움들을 가지고 아주 크게 생색을 내며 민주화 운운하는 것은 식자의 저열한 가식성일 뿐이며 이들은 그나마 일관성조차도 없다고 아주 혹독하게 비판한다.[25] 때문에 조선일보 없었다면 민주화 더 빨라졌을 것이라는 차가운 분석들도 존재한다.

당시 동아일보는 유신에 대항하여 언론 탄압을 받았지만 결국 동아일보 경영진들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갔던 직원들을 강제로 해고함으로써, 사태가 종결했으며 당시 해고당한 직원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는 점. 그리고 이것들이 계기가 되어 한겨례가 탄생했다는 것. 조선일보도 결국 기자들을 강제 해고하였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물론 이들 조선 - 동아 해직기자들의 명예회복은 전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상 조선 - 동아에선 이들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도 이들이 한 행위들에 대해 제대로 청산할 성의조차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동아투위 해직기자 13명, 국가 배상 첫 승소(2015년), 채널A? <동아일보>는 1975년에 죽었다

게다가 조선일보 소속인 TV조선에서는 아예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탈북자 임천용과 이주천 원광대 역사학 교수가 출연해 5.18당시 북한의 간첩이 침투를 버젓이 내보내거나 동아일보 소속인 채널A의 김광현의 탕탕평평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방송되기도 했다. 사실상 조선 동아등에서 민주화 운동에 기여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훼손을 하고 있는 상황들이 줄줄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채널A, ‘5·18 북한개입설’ 보도에서 메인뉴스 사과까지 V조선 "5.18 왜곡 방송, 제작시간에 쫓기다보니…"

결국 채널 A가 쏟아지는 비판의 맹폭을 견디질 못하고 두 차례에 걸쳐서 사과방송을 내보낸 가운데 민주당측에서 역사왜곡에 반발하여 TV조선을 항의방문하자 TV조선에서도 사과방송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26]

이런 식의 공도 있었다는 논조는 매우 위험한데 박형준의 조중동에 대한 평가대로 하면 세상의 누구도 공은 있었다는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조차도 대한민국을 외국에 팔아먹은 것도 아니며 나름대로 대한민국을 위해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때문에 이후 재평가의 논조로 흘러갈 수 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룬 35가지의 업적들 물론 이런 논리 적용은 박근혜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북한의 김정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전쟁을 일으키진 않는등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전쟁을 억제했다. 결과는 나빴지만 나름대로 국민들을 먹이기 위해 노력을 아예 안한 것은 아니지 않냐 등등으로....


15. 청와대 홍보기획관실 조갑제 항의[편집]


박형준이 박형준 홍보기획관 시절 조갑제에 대해 항의를 하였다는 것에 대한 논란들이 있었다.

보수 논객인 조갑제가 당시 이명박 정권에 대해 'MB 레임덕' 글을 썼는데 이것이 사라진 것. 당시 조갑제는 "보수층은 노사모보다 이명박을 더 미워하고 경멸한다. 순한 국민들이 모이기만 하면 이명박 대통령 성토장이 된다"며 이 대통령의 문제점들을 열거하는 등 이명박 정권을 비판했다.

문제는 이 글이 올라간 후 청와대가 그에게 강력한 유감 표명을 하였는데 이후 조갑제가 해당 글을 내려버린 것이다.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관실 관계자가 조씨에게 전화를 걸어 "정책에 대한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지만 오늘 쓴 글은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 아니냐?"고 항의했고 조 대표는 "알았다, 일단 글을 내리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에 박형준 홍보기획관도 조 대표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박 기획관은 <오마이뉴스>에 "(조 대표에게) 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글에 대해 뭐라고 얘기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

그외에도 박형준측에서 조갑제측에게 이명박, BBK실질적 소유주로 밝혀진다면 글에 대해 공개적으로 성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16. 이회창 후보를 돕는 사람이라 신뢰할 수 없다 발언 논란[편집]


BBK 해명 당시 에리카 김의 주장에 대해 이장춘 전 필리핀 대사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1년 이 후보로부터 직접 이 명함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논란에 대해 반박하던 도중 "이 전 대사는 이회창 후보를 돕는 사람인 만큼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박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에 이회창 후보 캠프는 "현재 이 전 대사와 이 후보는 무관하다"고 재반박하였다. ###, @

물론 박형준이 당시 이명박 캠프의 대변인이기에 비판에 대해 반박하고 이에 해명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해명을 할때 문제가 될 수 있는 논리를 언급하며 반박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실제로 해당 발언이 나올 당시에도 바로 논리의 모순과 문제점들이 바로 지적되었는데 보수 논객인 조갑제가 박형준의 해당 논리에 대해 이 전 대사는 이회창 후보를 돕는 사람인 만큼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는 논법은 '00道 사람이니 신뢰할 수 없다' '노동자이니 신뢰할 수 없다' '미국인이니 신뢰할 수 없다' '기독교인이니 신뢰할 수 없다' '유태인이니 신뢰할 수 없다' '0氏는 고집불통이다'는 식의 전체주의 사고방식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개인주의를 무시한 말이다. 개인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무시하고 인간을, 계급, 인종, 집단의 부속품으로 보는 시각이라고 지적하며 박형준식으로 박형준씨의 논평을 논평하라면 '당신은 이명박을 돕는 사람이니 믿을 수 없다' '당신은 좌파 잡지 편집위원 출신이니 믿을 수 없다'[27]가 된다. 정치판에서 이렇게 치졸한 말들이 오고가면 논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낭패일 것이라며 아주 크게 비판하였다. 박형준 대변인의 수준@


17. 폴리페서 논란[편집]


이후 문대성에 대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동아대 행정학과 교수로 부산에서 3선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에서 주일대사를 지냈으며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사임’이 아닌 ‘휴직’ 상태로 오래 동아대에 적을 뒀던 권철현 세종재단 이사장와 함께 박형준 또한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로 2번의 총선에 출마했고, 청와대 비서관과 특보를 지낸 박형준 전 청와대 사회특보의 경우 8년 가까이 동아대에 ‘휴직’ 상태로 있었는데 이후 여론에 밀려 사표를 제출했었지만 학교 측에서 반려하였고 이후 여론의 관심이 잠잠해지자 그는 그냥 휴직 상태로 여지껏 교수 신분을 유지하였던 것이 같이 보도되면서 폴리페서 논란이 재점화 되기도 하였다. '박형준'사례로 본 '문대성'사임에 대한 동아대의 결정은?

이에 대해 박형준 본인은 일단 자신은 폴리페서가 맞다고 시인하였다. '다만 폴리페서는 무조건 안 된다는 시각 역시 교조적 생각이지요. 사회과학을 한 사람으로서 실천의 영역에서 학문적으로 닦은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활동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과학이 과연 교수가 정치를 할 때 정치를 했냐 안 했냐가 아니라 정치에 참여해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가 판단 기준이 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해명하였다. @@@


18. 헤게모니 발언 논란[편집]


여의도연구원·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18일 국회에서 열린 '보수 가치 재정립 연속토론회' 연사로 나왔을 때 하였던 발언들 중 박 전 사무총장은 "좌파에 대한 분노를 동원자원으로 삼아 영남 헤게모니와 극우 성향의 고령 세대 헤게모니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짙다" "젊은 세대와 수도권에서 외면당하는 정당이 미래가 있나. 좌파 진보 정권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익에만 의존하는 정당이 미래가 있나"라고 맹비난을 퍼붓어서 논란이 되었다. ####

우선 여기에 비판적인 측에서는 정치 정당의 힘은 지지자들에게서 힘과 영향력이 나오며 보수 정당을 크게 밀어주는 영남과 고령세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자신을 지지해준 것에 대해 정치 정당이 마땅히 해야만 할 일[28]이며 좌파 분노 동력자원 운운도 보수 지지자들이 좌파에 대해 품고 있는 분노를 깔아뭉개는 발언이며, 현재 문재인 정부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반사이익에 의해 주도권을 잡은 것인데 오히려 보수 내부에 대해 박형준이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미래 자체가 불투명하다고 평가절하하며 내부 총질을 하는 트롤 짓과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할 뿐이라고 반박하였다.

반대로 찬성하는 측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먼저 영남과 고령 세대 헤게모니에 '안주'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지, 영남, 고령층 지지자들을 위해 정치를 하는게 문제라고 한 것이 아니다. 지금 타겟층 자체가 전체 인구의 소수에 불과하고 보수적 성향의 국민들에게 맞춰져있지 않기 때문에 관련 발언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소수의 지지층 결집에만 몰두한 나머지 확장성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며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은 영남을 비롯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참패를 기록한 바 있을 정도로 수도귄에서 자유한국당에 대한 실망과 부정적인 인식은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정권을 일찍 잡긴 했지만 2012년 낙선 이후에 꾸준히 출마를 준비해왔고 박근혜 정부의 낮은 지지율을 봤을 때 만약 최순실 게이트가 없었더라도 진보 정권으로 정권 교체가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았고, 그 주자는 문재인이 되었을 공산이 컸다. 결국 기회도 준비된 자가 잡은 것이지, 현재처럼 준비는커녕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도 없는 자유한국당의 현 모습은 만약 문재인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정권을 탈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요컨대 보수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과거의 잘못을 반성, 시정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정권의 실정만 기다리는 것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오른쪽 눈으로는 신문 글자가 안보인다고 한다. 안경을 쓰고 있지만 오른쪽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2] 이건 아예 이명박 본인이 10만달러 수수를 인정했다.[3] 삼성으로서는 억울한 것이 현대차도 돈을 대납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삼성만 부각되는 판국이다.[4] 이것조차도 이명박의 핵심 측근이었던 김백준이 검찰에게 알려줘서 가능했던 것이다. 김백준 진술이 없었으면 이후 끝날때 까지 아무도 몰랐을 수도 있었다.[5] 박근혜정부는 아예 노무현 정부이명박 정부 모두 싸잡아 비난했다.[6] 아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만 하더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에 대해 노무현의 지지율이 박근혜보다 더 낮았다는 것을 언급하며 가장 최악인 정권은 노무현 그다음이 박근혜라고 주장하는 보수 지지자들도 상당했다.[7] 보수에서 터부시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인정 및 비록 논란이 많더라도 노무현의 취지와 뜻에 공감한다는 것. 이외에도 통찰에 높게 평가한다는 정치역사상 길이 남을 국회 연설을 남겼다. 물론 유승민도 이것을 시도한 대가를 톡톡히 치뤘는데 이후 친박계의 대대적인 성토와 비판이 이어진 것.[8] 박형준은 구속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지만 현재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은 탄핵으로 인해 불명예를 뒤집어 쓴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도 반발 여론이 더 낮다. 아예 친박조차도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을 외쳤다. @@@[9] 이상득의 공천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는데 당시 정두언에게 한 석이라도 아껴야지 무슨 불출마냐. 내게 생각이 있으니 이상득 문제는 내게 맡겨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18대 총선에서는 친박 공천 학살 역풍이 불어버렸다. 여담으로 박형준 본인도 떨어졌다.[10] 박형준 본인도 당시 한나라당 공천에 대해 정두언을 찾아가서 본인이 직접 이런 식으로 공천하면 무소속 바람이 불어서 부산에서 떨어진다고 크게 우려를 표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결국 선거는 박형준 본인 말대로 됐다.[11] 다만 박형준은 정두언과 달리 직접 한나라당 공천에서 이명박과 공천 관련 논란들에 관해 의논하고 이명박에게 직접 의견을 물어보는 중심적인 입장이 아니였을 수도 있다. 참고로 정두언은 이명박의 서울시장 선거 시절부터 이명박과의 인연을 시작한 주요 인물이었다. 아예 이명박 본인이 병원에 입원해있던 정두언에게 서울특별시장 선거캠프 합류를 권했고 그럼에도 정두언이 망설이자 아예 직접 이명박/ 정두언 부부 동반 식사를 제안하는 등으로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영입하였다. [12] 국정원 특활비 논란에 대해 폭로하였다.[13] 영포빌딩 청와대 문건들을 폭로하였다.[14] 이명박 본인이 절대 아니다.[15] 발마사지 업소인데 가면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곳. 실제로 경찰에서 이런 곳을 단속할 때 확인할려고 일부로 발마사지 업소 손님으로 위장해서 먼저 들어가보기도 한다.[16] 어쩌다 한두 번 가는 사람이 아닌 일정주기로 자주 발마사지 받으러 가는 사람은 아예 누구에게 마사지를 받겠다고 지목하여 예약을 한다. 휴일에 갈 경우에도 사전에 전화를 그 사람이 근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17] 아예 박근혜 전 대통령 최태민 일가 연루 의혹은 이후 언론에서 이명박 캠프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참조할 정도였다.[18] 정확히는 불법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허위 폭로라는 것이다. 문제는 문건이 없으면 몰라도 실무자가 분명하게 작성된 문건이 나온 것에 대해 상대측에서 이를 가지고 불법 의혹을 충본히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도대체 문건까지 작성된 이유는 뭔데??[19] 이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 중 1인이 바로 2006년 전당대회 이후 절차부심해오던 이재오 였다. 이때 이방호와 정종복이 이를 도왔다는 분석도 나왔다.[20] 김태호는 인사 검증 과정에서 낙마했다.[21] 다만 친이계에서 친박계를 공격하지 않았어도 친박계에선 친이계를 공격할 것을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는 분석도 있는데 이미 친이계와 친박계는 한나라당 경선을 기점으로 서로 화해할 수도 섞일 수도 없을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22] 일각에선 아예 이명박 본인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심지어 직접 개입했다는 의혹까지도 제기했지만 이는 증거와 설득력이 부족하다.[23] 조선일보에서 저렇게 노골적인 제목의 언론보도가 나가버리면 박근혜 측에서는 대응을 하고 싶지 않아도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싸움을 말려도 부족한 판국인데 조선일보는 대놓고 싸움을 붙인 것이다.[24] 오죽하면 최근 JTBC에 대해 중앙일보의 좋은 이미지 코스프레라고 비난하는 의견들도 있다.[25] 본인들의 잘못에 솔직하게 시인하고 그래도 저희들도 이렇게 했습니다 논조가 절대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도 기여를 하면서 조중동은 시대의 흐름을 이끌고 선도했다는 선동성 어조이다.[26] 문제는 그후에도 돌아온 저격수다에서 일부 패널은 5.18의 북한군 개입설을 다시 제기하는 것을 내보내서 논란이 되었다.[27] 박형준의 과거 좌파 성향의 행보들과 경력은 당시에도 유명했다.[28] 실제로 정당 자체로서 무너질 뻔한 자유한국당을 살려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영남과 고령세대의 콘크리트 지지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