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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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알제리의 도시
1.1. 개요
1.2. 역사



1. 알제리의 도시[편집]


파일:베샤르 알제리.jpg
파일:알제리 베샤르.jpg
프랑스 지배기 노트르담 성당이었던 말리크 빈 알 후리트 모스크
베샤르 크사르의 풍경

아랍어 بشار
베르베르어 ⴱⴻⵛⵛⴰⵔ
영어 Béchar


1.1. 개요[편집]


알제리 서부 베샤르 주의 주도. 알제리의 사막 도시들 중 가장 큰 도시로, 인구는 약 18만명이다. 틀렘센에서 남쪽으로 400여 km[1], 가르다이아에서 서쪽으로 550여 km 떨어진 오아시스에 위치해 있다. 시가지는 베샤르 산 서쪽 기슭의 평지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과 서쪽 방면 모로코와의 국경에서 불과 50km 떨어져 있다. 석탄 산업이 발달하였고, 그 외에 가죽 공업과 보석 판매가 이루어진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 도시인데도 오랑과 철도로 연결되어 있어 도심 북부에 알제리 최남단 역이 위치해 있다. 도심 서남부에는 베샤르 대학이 있고. 서북쪽에는 베샤르 부드겐 벤 알리 로트피 공항도 있다. 시가지 서쪽 외곽에 위치한 357m의 켄다사 전파탑은 알제리에서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이다.


1.2. 역사[편집]


17세기 말엽 알제리의 베이들 중 한명이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고 사하라 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미탐사 지역에 부하들을 파견해 물이 있는 곳을 찾게 하였다. 베이는 성공한 자는 매년 상금을 지급하고 세금과 군역에서 면제시켜 주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파견된 이들 중 다수는 길을 잃고 갈증으로 죽었지만 일부는 여태 알려지지 않았던 샘을 찾는데 성공하였다. 다만 그러한 샘들은 대부분 염분이 섞인 것이었는데, 어느날 한 부하가 가죽 수통 (게르바)을 가져와 바치며 주스파나 협곡에서 신선한 물이 있는 샘을 발견했다고 고하였다. 베이는 기뻐하며 그를 공개적으로 치하하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의미인 '엘 베샤르'라는 호칭을 내렸다. 따라서 그가 발견한 지역 역시 베샤르로 불리게 되었다.

베이는 울레드 나시르 부족에게 가축을 대동시켜 보내어 개척하게 하였고, 요새를 세우게 하였다. 농업에 적합했던 베샤르는 대추야자와 무화과 산지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홍수가 발생한 후 울레드 나시르 부족은 모로코령 타필랄트 쪽으로 이주해버렸고, 베이는 새로운 이주민을 모집했지만 자원자가 없자 강제로 노예와 부족들을 보내어 정착시켰다. 이번에는 댐을 건설하여 수량을 조절하게 된 베샤르가 재차 번영하자 타릴랄트의 술탄 라크할이 침공하여 강줄기를 막아버리고 농경지를 파괴한 후 성채를 포위하였다. 포위는 1년간 이어졌고, 오직 몇 kg의 밀과 송아지 열마리 만이 남자 주민들은 원로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노인은 남은 식량을 송아지에게 먹인 후 풀어놓게 하였다. 다음날 이를 포획한 적군은 송아지의 위장에 밀알이 가득하다고 보고하였고, 성내에 식량이 넘쳐난다고 여긴 라크할은 포위를 풀고 철수하였다. 독산성 전투의 일화와 유사하다

이후로 아이트 아타 등 여러 베두인 부족들이 베샤르에 머물렀으나 일시적인 정착에 그쳤다. 한편 19세기 들어 모로코 남부 다라아 협곡의 게난마 부족이 베샤르 일대를 지속적으로 습격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귀르 협곡의 두이아 메니아 부족에서 도움을 청했으나 효과가 일시적이자 부유한 학자 시디 모하메드 벤 부지아네를 통해 두이아 메니아 부족장 셰이크 아이사에게 간곡히 개입을 청하였다. 이에 병력을 모아 출정한 셰이크 아이사는 레젬 카암에서 게난마 부족과 만나 그 지도자 카암에게 결투를 신청, 그를 죽이고 승리를 거두었다. 베샤르는 1903년에야 프랑스령 알제리에 귀속되었고, 1907년 석탄 광산이 발견된 후 인구가 늘기 시작하였다. 베샤르 산지의 석탄 매장량은 막대한 규모였다.

다만 해안까지의 운송 비용이 알제리 동부의 자원들에 비해 크기 때문에 별로 개발되지 않았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베샤르에는 스페인 공화파와 프랑스 공산당원, 유대인 등을 대상으로 한 노동 수용소가 있었다. 전쟁을 거치며 국제적으로 고립된 알제리는 에너지 자립을 위해 1917년 이후 쇠락했던 베샤르의 석탄 광산을 적극 개발하였다. 전후 1947년 프랑스 군은 베샤르에 로켓 발사 및 실험 기지를 세웠고, 모로코와의 국경 수비를 위해 프랑스 외인 부대가 배치되었다. 1950년대에는 화력 발전소와 함께 오랑에서 출발한 철도가 놓였다.


2. 창세기전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장기[편집]


이름의 유래는 위의 도시.

팬드래건 왕국이 개발한 화포를 장착한 3급 마장기로, 기동성은 부족하지만 화포의 긴 사정거리를 이용해 방어전이나 공성전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투르 제국의 전차 기술이 도입된 이후에는 도태되었는데, 마장기는 로봇보행병기로서의 결점을 거의 대부분 보완한 물건이었던데다 전차 설정상 마장기보다 부족한 점들이 많이 있었기에, 아마도 생산 단가와 유지비 문제로 제식 양산기 경쟁에서 밀린 것으로 보인다.

마장기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던 다갈이 팬드래건 왕국의 도움을 받아 라이센스 생산한 하위 호환 바리에이션인 어스베샤르라는 물건도 있다. 이 쪽은 베샤르의 동체에 로퍼와 비슷한 충각용 쐐기가 달린 근거리형 3급 마장기. 로퍼와 마찬가지 이유로 실제 전장에서의 효용도는 낮았으며, 2편에서 다갈 성 마장기 격납고에 다수가 진열되어 있는 모습만 나온다. 투르의 전차가 등장한 뒤에는 역시 로퍼와 같은 이유로 생산과 운용이 전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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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선거리 상으로는 중간에 모로코 영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