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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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주소. 현재는 대출 사이트로 나오고 있다.

1. 개요[편집]


지금은 사라진 스타크래프트 팬사이트.


2. 역사[편집]


PGR21에서 활동하던 하와이강이라는 유저의 기획하에 PGR21과 스갤에서 당시 레전드라 불리던 유저(주로 스타 관련한 글을 올리던 총알이 모자라나 초창기 스갤 짤방으로 유명한 참치는 투나 등)들을 다수 영입하면서 웹진과 커뮤니티를 결합한 형태로 만들어진 팬사이트로, 초기 발족때부터 유명했다.

생긴 직후부터 PGR21스갤과 동시에 3대 커뮤니티로 불릴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불러왔고, 당시 스갤이 스타판에서 주류로 인정 받지 못하는 시절이라 PGR21과 비타넷을 양대로 취급했을 정도였다. 초기에는 PGR21과 비타넷이 KeSPA에 의해 대표 스타크래프트 사이트로 인정 받았던 적도 있었다. 특히 KeSPA에서 개최한 유일무이한 아마추어 대회인 '스타크래프트 팬 커뮤니티 교류전'에서 당시 PGR21과 양대 대표로 초청받았을 정도. 또한 스타토토라는 스타크래프트 전용 베팅시스템을 도입하여 인기도 높았다. (현재 와이고수 등에서 서비스하는 스타크래프트 베팅과 유사)

사이트 멸망 근본적인 씨앗은 바로 지나친 친목화. 활동을 늘리겠다며 회원간 레벨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는데, 이는 오히려 고 레벨 회원들이 각 게시판을 점령해버렸으며 이로 인해 신규 유저는 활동하기 거의 불가능했다. 특히, 비타넷의 친목화는 서로 친해진 기존 회원들의 잘못이 있어도 서로 감싸주기만 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회원들의 반발을 사는 경우가 잦았다.[1]

이러한 상황에서 비타넷의 몰락에 박차를 가한 사건이 있었으니, 2005년 여름 비타넷의 운영진이 빛서인 사건이라는 초대형 사고를 터트렸다. 스갤의 빛서인이라는 유저가 비타넷의 네임드이며 스타리그 맵퍼로 활동했던 조승연에게 악플을 다는 일이 있었는데, 조승연의 맵이 당시에 밸런스, 재미 면에서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미루어보면 여기까지는 스갤에서 흔히 있는 악플 수준. 그러나 이에 분노한 조승연과 그에 동조한 비타넷 운영진들은 빛서인의 아이피 주소를 이용하여 신상을 털어버리기에 이른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신상털기가 빈번하게 일어나던 때가 아니라 그 파급효과가 엄청났으며, 한 커뮤니티의 친목 단체가 다른 커뮤니티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다굴을 놓고 결국 커다란 모욕을 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일을 더 크게 만든 것은, 빛서인의 정체가 PGR21의 당시 네임드 유저였다는 것. PGR의 유저들은 이 사건의 진위여부에 대해 많은 논쟁을 벌였으며, 이 와중에 빛서인은 상황을 벗어나려고 자작극을 꾸몄다가 결국 자멸하고 커뮤니티를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비타넷이 역풍을 맞는 것은 진위여부를 가리는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사건이 불거지며서 PGR 회원들간의 반목이 심해졌고 탈퇴하는 사람도 많이 생겼는데, 논쟁을 벌이던 와중에 그들은 따지고보면 그냥 악플 사건인데 이걸 가지고 신상을 털고 그것을 공개하는 비타넷 임원의 처사가 옳지 않다., 더 나아가 비타넷 운영자들이 빛서인을 잡아낸 것을 보면 다른 PGR 회원들의 아이피 역시 감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 라는 결론에 도달하며 비타넷에 강력한 불만을 표출하기에 이른다. 한마디로 회원들로서는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당했다는 불쾌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사건의 본질이 결국은 비타넷 운영진들이 마음에 안드는 악플러 하나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사건 종결 이후 열기가 가라앉은 PGR 회원들이 비타넷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까놓고 말해 독재국가와 다를 게 없다.

결국 사건은 빛서인이 PGR에서 사라지면서 끝이 났지만, 이 사건 이후로 PGR과 비타넷의 관계는 완전히 어긋나버렸다. 지금의 PGR 규모도 작지 않은 편이나, 2005년 당시의 PGR은 스갤의 전성기 이전의 스타크래프트 최대 커뮤니티였고, 이 사건은 PGR과 비타넷에서 동시에 활동하던 유저들을 비타넷에서 떠나게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비타넷의 규모가 확 주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침체된 사이트 분위기를 살리고자 비타넷 시리즈라는 팀매치 형식의 리그를 개최하였는데 이로 인해 다수 재야 초중고수들의 신규 가입으로 잠시나마 활기를 띄기도 했다. 하지만, 친목화로 다져진 기존 회원들의 일방적인 대회 운영과 기존 회원이 적거나 없는 팀이 위화감을 느낄 정도의 과도한 응원으로 분위기 자체를 반짝 열기에 그치게 했으며 친목화 범위의 바깥에 있던 기존 회원들마저 비타넷을 떠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후, 네임드 유저들간의 오랜 친목질로 인해 비타넷은 신규 유저들이 유입되고 커뮤니티를 성장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였기에, 비타넷의 부흥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은 유저들끼리의 친목화가 지속되면서 결국 게시판은 그 유저들간의 활동으로 도배되다가 하나 둘 씩 개인사로 활동을 중단하거나 그 네임드 유저들간에도 사적인 이유로 다투기도 하면서 황폐화되기 시작했다.

이맘때쯤 총운영자가 계정비가 없어서 계정이 정지되었고 이로 인해서 PGR21에 공지를 띄워 놓았는데 비타넷의 횡포에 정나미가 떨어져 비타넷과 손절한 유저들이 대다수이던 PGR21에서 적선 좀 해달라는 식의 공지를 좋게 볼 리가 없었고, 욕설을 하면 이유를 막론하고 즉각 징계를 내리는 규칙이 있었음에도 덧글들이 욕으로 도배됐다. 스갤조차 과도한 친목화로 망한 걸 보면서 '망해도 싸다'라는 식의 반응이였기 때문에 재기는 불가능했다.[2] 결국 잠시 복귀가 되었다가 다시 문을 닫았고 그 이후로는 접속조차 할 수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아무리 컨텐츠가 좋더라도 친목화가 심해지고, 운영자가 권한을 악용해버리면 결국 망한다는 걸 보여준 사이트.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PGR21이 닫히고 내외부 유저들에게 비난받던 시기에 일부 PGR21 유저들이 피난처로 다시 비타넷을 부활시킨 적이 있다. 그러나 PGR21에 비하면 커뮤니티성도 부족했고 포모스스갤 이주, 혹은 아예 이 바닥을 접고 떠나는 유저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결국 사태가 종결되고 PGR21이 열리자 다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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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타넷에는 채팅방 시스템도 있었는데, 여기서도 친목질을 통해 자기들이 거슬리는 회원을 채팅을 통해 집중적으로 괴롭혀서 화가 난 그 회원이 즉시 탈퇴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친목질로 인한 멸망을 예견한 격이다.[2] 물론 스갤도 2010년대 후반 멸망에 접어들었지만 비타넷보다는 오래가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