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요시노리(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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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요시노리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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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큐 브레이브스 엠블럼.svg 파일:오릭스 블루웨이브 심볼.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1977
1996

파일:2006닛폰햄우승.png 파일: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V1.svg 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승 엠블럼 V7.svg 파일: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승 엠블럼 V8.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코치

2006
2013
2015
2017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1977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최우수 신인
후지타 마나부
(난카이 호크스)

사토 요시노리
(한큐 브레이브스)

무라카미 유키히로
(난카이 호크스)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1986년 퍼시픽 리그 최우수 방어율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1985년 퍼시픽 리그 최다 승리

파일:퍼시픽 리그 로고.svg
1984, 1985년 퍼시픽 리그 최다 탈삼진[1]

보유 기록(NPB)
노히트 노런
1995년 8월 26일, 킨테츠전

한큐 브레이브스-오릭스 브레이브스-오릭스 블루웨이브 등번호 11번
토다 요시노리
(1964~1976)

사토 요시노리
(1977~1998)


키다 마사오
(2000~2001)
오릭스 블루웨이브 등번호 75번
쿠마노 테루미츠
(1995~1996)

사토 요시노리
(1999~2000)


나카오 타카요시
(2002~2003)
한신 타이거스 등번호 75번
쿠로다 마사히로
(1999~2000)

사토 요시노리
(2002~2004)


토야마 쇼지
(2005~2009)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등번호 81번
신타니 히로시
(2002~2004)

사토 요시노리
(2005~2007)


요시이 마사토
(2008~2012)
{{{#ffffff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번호 71번}}}
키토 마코토
(2006~2008)

사토 요시노리
(2009~2014)


토마시노 세이지
(2015)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번호 70번
요시다 슈지
(2013~2014)

사토 요시노리
(2015~2017)


요시모토 료
(2018~2020)
{{{#ffffff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번호 71번}}}
야마구치 테츠지
(2017)

사토 요시노리
(2018~2019)


무토 아츠키
(2020)



사토 요시노리
佐藤義則 | Yoshinori Satoh

출생
1954년 9월 11일 (69세)
홋카이도 오쿠시리군 오쿠시리초
(現 홋카이도 히야마 진흥국 오쿠시리초)
국적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학력
하코다테 유토 고교[1] - 니혼대학
신체
181cm, 86kg
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투수
프로입단
1976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5번, 한큐)
소속팀
한큐-오릭스 브레이브스-오릭스 블루웨이브 (1977~1998)
지도자
오릭스 블루웨이브 2군 투수코치 (1999~2000)
한신 타이거스 1군 투수코치 (2002~2004)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군 투수코치 (2005)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군 투수코치 (2006~200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09~2014)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군 투수코치 (2015~201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8)[2]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18)[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군 테크니컬 코치 (2019)
SNS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현역시절
3. 코치시절



1. 개요[편집]


파일:사토 요시노리(1954) 한큐 시절 프로필.jpg}}}
일본의 전 프로야구선수이자 코치. 오릭스 버팔로즈의 전신인 한큐 브레이브스-오릭스 브레이브스-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만 22년 간 뛰었던 투수로, 긴 시간을 현역으로 뛰면서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하였다. 은퇴 이후에는 오릭스, 한신, 닛폰햄, 라쿠텐, 소프트뱅크 등의 구단에서 코치 생활을 하며 여러 명의 선수를 키워낸 명투수코치로 유명하다.


2. 현역시절[편집]


사토는 니혼대학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전체 5번으로 1977년 황금기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던 한큐에 입단해 곧바로 1977 일본시리즈 우승에 성공한다. 사토는 해당 시리즈에서 5차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해 4이닝을 소화하며 2실점을 허용했지만 이후 팀이 역전하며 우승반지를 얻었다.

이후로도 한큐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1985년엔 최다승 타이틀과 함께 최다 탈삼진을 기록하며[4] 한큐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이때 사토는 21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했는데 2008년 이와쿠마 히사시가 21승을 거두기 전까지 23년동안 20승 투수는 2003년의 사이토 가즈미 등을 포함해 몇 번 나왔지만 20승을 넘어 21승을 기록한 투수는 나오지 않았다.

1995년엔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팀 내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태에서 킨테츠 버팔로즈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데 이때 나이가 40세로 당시 NPB 역사상 최연장 노히트 노런 기록을 세웠다.[5] 이후 1996년부터는 세월을 피해갈 수 없었는지 팀은 일본시리즈 우승을 일궈냈지만 시리즈에서 등판하지 못하는 등 등판 횟수가 점차 줄어갔고 1998년 시즌을 끝으로 44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자신의 상징이라 불리는 오리지날 변화구인 요시볼은 유명한 변화구 중 하나. 실제로 커브에 가까운 포크볼이였다고 한다. 손가락이 짧아 포크볼을 던질 수 없는 사토가 검지와 중지로 끼울 수 없다면 엄지와 검지로 끼우자는 생각으로 고안해 낸 것이다.


3. 코치시절[편집]


파일:사토 요시노리(1954) 라쿠텐 코치.jpg}}}

일본 제일의 투수코치

호시노 센이치

오릭스의 에이스였던 그는 은퇴 이후 더욱 빛을 발했는데, 투수코치로 선수의 엄청난 기량 향상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한 구단에서 한 명씩만 꼽아도 한신 시절에는 이가와 게이, 닛폰햄 시절엔 다르빗슈 유, 라쿠텐에선 다나카 마사히로의 세 메이저리거를 키워냈다. 다르빗슈에겐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다르빗슈의 폼을 손봤으며, 본인의 전매특허 변화구였던 요시볼을 전수해줬다. 그래서 다르빗슈를 현재 일본 정상급의 투수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다나카 또한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지만 본인의 완전한 포텐셜이 터질락 말락하던 상태였던 다나카의 상반신에 부담이 가는 폼을 개조해 라쿠텐의 에이스로 길러냈다. 선수 본인의 장점을 지우지 않고, 개개인에 적합한 폼을 전수하는 지도에는 정평이 나 있다는 평이다.

그렇게 본인의 고향에 자리잡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1군 투수코치로 활동하면서 다르빗슈 유, 다나카 마사히로, 미마 마나부 등을 최고의 투수로 성장시키며 우승을 일궈냈고, 2015년부터는 소프트뱅크 호크스 투수종합코치로 적을 옮겨 소프트뱅크의 2015년 일본시리즈2017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7년 시즌을 마치고 다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컴백하였다.
호시노 센이치로부터는 일본 제일의 투수 코치라 칭찬받았으며, 닛폰햄 시절 제자인 다르빗슈 유는 사토의 라쿠텐 입단이 확정되자 다나카 마사히로와 전화 통화를 하며 '사토 코치의 말씀은 틀린게 없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투수코치로 뛴 구단 중 오릭스를 제외한 나머지 4개 구단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했다.[6] 현역 시절 자신을 지도한 가지모토 타카오를 코치 생활의 사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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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 하코다테대학 부속 유토 고교.[2] 6월 15일까지[3] 6월 16일부터[4] 상술했다시피 당시엔 최다 탈삼진은 타이틀이 없었다.[5] 이후 야마모토 마사가 경신한다.[6] 한신 시절에만 일본시리즈 우승을 못했고, 나머지 3에서는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