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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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설명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守禦使

조선 인조 시절, 남한산성의 방비와 개축을 위해 설치한 부대인 수어청(守禦廳)의 대장.


2. 설명[편집]


초기엔 삼남도검찰사(三南都檢察使), 광주목사(廣州牧使)가 남한산성 방어사의 역할을 담당하였다가, 1632년에 이르러 첫 수어사가 임명되었다.

초기에는 도성을 둘러싼 경기도의 방어를 책임지는 총융청에 속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1634년 2월 이후에 이르러야 남한산성의 모든 군권을 가지고 총융사와 동등한 5군영의 지휘관이 된다.

군권을 가진 수어사와, 행정권을 가진 광주부윤[1]으로 이원화된 체제로 혼선이 생기자, 1652년(효종 3년)에 광주부윤을 수어부사로 삼아 단일한 지휘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광주부윤에 유력한 신료들이 임명되어 사실상 경관직[2]으로 분류가 됐으며, 임기 또한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빨리 교체되어 한성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군무가 소홀해진다하여 다시 이원화되었다. 이후 1750년(영조 26년)에는 경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광주부윤이 다시 수어사를 겸직토록 하였다.

1795년 8월 광주부윤을 광주유수로 승격시켜 계속 수어사를 겸직토록 했으며, 유수[3]의 잦은 교체로 인하여 남한산성의 방비가 약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임기를 2년으로 정하였다.

최초에는 정3품 목사가, 그 이후엔 종2품 부윤이, 최종적으로는 정2품 유수가 수어사를 겸하여 남한산성을 방비하게 되었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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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조 14년 2월에 광주목이 광주부로 승격됐다.[2] 중앙의 관리[3] 수원부, 광주부 등에 둔 정2품 장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