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메멘토 모리)

나는, 마녀가 되고 싶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다섯 살 때 본 날뛰는 말과 주마등.
그리고 칠흑빛의 로브와 별빛처럼 빛나던 모습.

말발굽이 내 머리를 박살 내기 직전,
용감하게 나타난 그 사람은
신비한 힘으로 말을 쫓아냈다.

모두가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찰나에 벌어진 일.
하지만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 사람이 마법으로 날 구해주는 것을.

나를 구해준 그 사람은
이내 자리를 떠나버렸지만.

떠나는 뒷모습마저도 나에게는 빛나 보였다.

마녀는 불길하다는 이유로 미움받고 있었다. 그 사람도 같은 처지였다. 교회에 쫓기고 있던 그 사람은 나를 구해주곤 바로 떠나버렸다. 부모님은 뭐가 그리 창피한지 마녀 얘기만 하면 내 입을 틀어막더라고?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지. 마녀는... 히어로다! 법으로 심판하지 못하는 악을 처단하기 위해, 그림자로 살아가는 길을 택한 또 다른 악. 그게 바로 마녀! 이걸 아는 자는 드물고, 이 도시에서도 나 하나뿐...! 우리는 이걸 운명이라 부르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날의 만남은 분명 의미가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 뒤로 나는 줄곧 그 마녀를 흉내 내며 지내왔다. 한쪽 눈엔 안대를 찼고 머리는... 길었던 것, 같기도... 그렇게 겉모습을 따라 하고, 말투도 그럴싸하게 바꾸었다. 분명 별이 어쩌고저쩌고했던 것 같은데... 그래, 맞아. 별을 지배하는 자였어! 좋아, 오늘부터 나는 별을 지배하는 자야! 이걸로 완벽해! 사람들은 진실을 모르니까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본다. 오히려 좋지 않은가. 대의 앞에 우정 따윈 무쓸모! 그렇다! 이 몸은 별을 지배하는 자이자, 세계를 관측하는 자! 고독함은 바라던 바. 외로움 따윈 전혀 안 느낀다고? 히어로에게 동료 따윈 필요 없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거리에서 지팡이를 지닌 수상한 자를 발견했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옆 마을에서 마녀사냥이 있었다는 얘길 사람들이 했었지. 많은 여자아이가 처형당했다던데. 딸을 숨겨두던 부모마저도, 마녀를 감쌌다는 이유로 싸잡아서.... 설마 방금 그자도, 마녀를 찾으러... 나는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아는 자. 녀석의 정체를 눈치챈 것도 나뿐이겠지. 어떻게든 해야 해... 악의 손길로부터 이 도시를, 모두를 지키는 거야아아!!! 녀석을 미행했지만, 도중에 놓치고 말았다. 이 몸을 따돌리다니 더더욱 수상쩍은 녀석이군! 그때였다. 광장 쪽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광장에는 생전 처음 보는 짐승이 날뛰고 있었다. ...뭐야, 저건. 평범한 짐승이 아니야. 익숙하던 풍경이 눈앞에서 무너져 내려갔다. 하지만 내게는 어딘가 동떨어진 세상의 일처럼 느껴졌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울고불고하는 소리마저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그림책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하지만 그때, 갑자기 들려온 짐승의 포효 소리가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이어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밀쳐대고 어린아이마저 걷어차였다. 언제나 이런 광경을 상상하곤 했다. 악당이 나타나면 그걸 멋지게 물리치는 상상... 무리야. 불가능해. 난 특별하지 않은걸.

그때, 어딘가 익숙한 그림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저건... 아까 봤던 지팡이를 든 자! 그는 모두를 지키려는 듯이 광장의 중심에 섰지만... 위험해! 아니나 다를까 짐승은 그자를 향해 돌진했다. 간발의 차로 그는 공격을 피했지만... 이미 만신창이잖아. 아까부터 계속 피하기만 하고... 그렇지만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있어. 어째서 그렇게까지... 설마 우리가 도망칠 시간을 벌고 있는 거야? 결국 막다른 길에 몰린 그자에게, 짐승이 달려든다. 난 특별하지 않아. 그런 건 알고 있어. 하지만... 히어로는 이것저것 따져가며 사람을 구하지 않아. 구할 수 있는 사람만 구하는 게 아니야. 히어로는 구하고 싶으니까 구할 뿐이라고! 정신이 들었을 땐, 나의 몸은 이미 달려 나가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내 손에서 흘러 나간 빛이 짐승을 날려버렸다! 이건, 마법? 안도할 새도 없이, 이번엔 내가 표적이 되었다. 히익... 눈을 질끈 감으려던 그때, 신비한 빛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들의 소중한 사람을 지켜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하곤 신비로운 빛이 나는 사람... 마녀들은 짐승에게 향했다. 그 뒤로는 줄곧 상상해 왔던 대로의 전개였다. 마녀가, 히어로가 악당을 물리치는 흔하디흔한 이야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누구도 감사하지 않았다는 것. 마녀는 재앙을 불러온다는 이유로, 나도 함께 도시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외로움 따윈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새로운 동료가 생겼는걸. 상상 속에서가 아닌 진짜 동료가... 이제껏 머릿속에 그려왔던 마녀와는 조금 다르지만. 누군가에게 추앙받거나 감사받기는커녕, 정반대의 경우가 많다. 그래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마녀는 히어로야. 내가 그 사실을 세상에 증명해 보이겠어! 세상을 구하는 진짜 히어로가 되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