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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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백(敬伯)
본관
평산 신씨[1]
출생
1842년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남면
(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사망
1900년
경상북도 청송군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복리
상훈
건국포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842년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남면(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서 아버지 신홍운(申弘運, 1809 ~ 1890. 10. 26)과 어머니 함양 박씨 박급(朴汲)의 딸 사이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자식 없이 요절한 작은아버지 신홍건(申弘建, 1819 ~ 1834)[2]에 입양되었다. 아버지 신홍운은 1825년(순조 25) 식년시 생원시에 3등 43위로 입격하고 1885년(고종 22) 1월 부호군(副護軍:종4품)에 제수되었다.[3]

그는 1896년 1월 안동부 청송군에서 의병을 일으킨 심성지 의진에 입대하여 참모(參謀)에 선임되었다. 그해 4월 심성지 의진이 김하락 의진, 김상종(金象鍾) 의진과 연계 하에 의병 활동을 할 때 참전했다가, 현내면 감은동(현 안덕면 감은리) 뒷산 기슭에서 일본군과 마주쳐 교전 끝에 병사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는 데 일조했다.

그 뒤 부동면 상평동(현 주왕산면 상평리) 마평(馬坪)과 경주군 등지에서 교전하였지만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고, 얼마 뒤에 좌익장 권성하 등과 함께 영덕의진을 지원하기도 했으나 곧 해산되었다.

의진이 해산된 뒤에는 청송군에서 은거하다가 1900년 별세했다.

199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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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판사공파-청송파 32세 호(鎬) 항렬.[2] 초명 신홍진(申弘進).[3] 1885년 6월 11일 승정원일기 기사에, 맏형 신영호(申永鎬, 1840 ~ 1893. 3. 1)가 아버지 신홍운이 1825년에 생원시에 입격하여 입격한지 60돌 되는 1885년에 회방(回榜) 백패(白牌)를 받는 것이 마땅하나 올해 나이 77세로 병이 심해서 한성부로 올라갈 수 없음을 호소하였고 이에 이조에서 회방 백패를 만들어 지급한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