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남조)/상서복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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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목록
2.1. 제1대 좌(左)복야 심약


1. 개요[편집]


남북조시대 양(梁)의 역대 상서복야를 정리한 문서로 시기는 사마광(司馬光)자치통감(資治通鑑)』을 기준으로 정리되어 있다.

2. 목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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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좌(左)
1대 우(右)
2대 우(右)
2대 좌(左)
심약
범운
왕형
왕형
3대 우(右)
4대 우(右)
5대 우(右)
3대 좌(左)
유담
원앙
왕무
하후상
4대 좌(左)
5대 좌(左)
6대 좌(左)
6대 우(右)
장직
장충
원앙
왕간
7대 좌(左)
7대 우(右)
8대 좌(左)
8대 우(右)
왕간
서면
왕빈
하경용
9대 좌(左)
9대 우(右)
10대 좌(左)
10대 우(右)
하경용
사거
소연조
유중례
11대 좌(左)
11대 우(右)
12대 우(右)
추증 우(右)
왕포
왕충
왕통
주이




2.1. 제1대 좌(左)복야 심약[편집]


초대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沈約 | 심약

재임기간
양나라의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503년 2월 13일 ~ 503년 12월 30일
초대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자치통감(資治通鑑)』에 기록된 바로는 소연이 황상의 자리에 오르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자 범운과 함께 옛 부터 연을 맺은 사이였다. 양이 건국될 때는 상서복야(尙書僕射)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503년에 이르러서 범운과 함께 각각 상서좌복야와 상서우복야가 되었다. 본래 국정에 참여하는 재상들은 심약과 범운 그리고 좌광록대부 왕량이었으나 왕량은 정월 1일(2월 12일)에 사신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병을 핑계로 오르지 않았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어 파직되어 서인이 되었고 범운은 같은 해 6월 15일에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때문에 조정의 국정은 심약이 맡는 것이 당연했고 무리들도 그가 그곳의 으뜸이 될 것이라 생각했으나 소연은 애초에 심약의 행동이 경솔했기 때문에 심약 대신 상서좌승 서면과 우위장군 주사를 국정에 참여하게 했다. 이들은 청렴하고 아량이 넓었으며 명재상으로 칭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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