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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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淮
(280? ~ 306?)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서진의 인물. 자는 시립(始立). 홍농 회음 사람. 양수의 손자, 양효의 아들, 양교, 양모의 아버지.


2. 생애[편집]


배외, 악광과 친밀한 사이라서 두 아들을 보내 두 사람을 만나보게 했는데, 두 사람이 양회와 두 아들을 비교해서
평가하면서 칭찬했고, 양회는 이를 듣고 두 아들의 우열이 배외와 악광의 우열이라 했다.

원강 말에 기주자사가 되었으며, 황실의 정치가 기강이 문란한 것을 보고 술에 빠져 정무에 뜻을 두지 않은 채 소일하면서 세월만 보냈다. 사마영이 양회가 직무를 돌보지 않는 것을 알고서도 여전히 그를 명사로 여겼고,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파면하지 않고 불러들여 군자의좨주로 삼았다.

성도왕부가 해산되자 집에 머물렀고 관동의 제후들은 양회를 삼공의 지위에 올려 현인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고자 했지만 그 전에 죽었는데, 이 때가 27살로 최종 직위는 태상이다.

생몰년이 나와있지 않지만 사마영이 죽고 얼마 안되서 죽은 것으로 보이므로 306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역산해서 280년생으로 보인다. 280년생이면 아버지 양효가 그 이전에 죽었기 때문에 태어날 당시에 유복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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