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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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嚻/楊囂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인물이자 양수의 아들로 사례 홍농군 화음현 사람.

《전략》에는 楊嚻, 《진서》 <가충전>에는 楊囂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들 양준과 함께 진나라 때 이름을 날렸으며, 태시 초기에 전군장군에 임명되어 중요한 신하가 되었다.

오나라에서는 손호가 매번 군신들을 연회에 참석시켜 취하게 하면서 황문랑 10명을 시켜 군신의 잘못을 적발해 빠짐없이 보고하게 했는데, 잘못이 거듭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잘못이 가벼운 자는 죄를 기록해뒀다가 잘못이 거듭되면 중형에 처해 안면 가죽을 벗기거나 눈을 뽑는 등의 형벌을 내려 국가가 위해 전력을 다하려는 자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손호의 폭정을 안 왕준, 두예, 장화 등이 오나라 정벌을 주장하고 가충, 순욱, 풍담 등이 이를 반대했다. 그러나 사마염이 오나라 정벌을 결심하면서 군사를 보내는데, 양효는 명을 받아 가충에게 가서 사마염의 의지를 전하고 6개월 동안 가충의 곁에 있다가 궁중으로 돌아갔고 일찍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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