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불교)

덤프버전 : r20210301

1. 개요
2. 순서
3. 설명



1. 개요[편집]


緣起 / Conditioned Genesis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되므로, 독립, 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조건, 원인과 결과는 상호 의존적으로 상관하는 관계에 있다는 설이다. 이것이 확장되어 무상, 무아, 고의 삼법인을 이룬다.

즉, 연기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를 뜻하며, 이것과 저것이라는 상호관계를 통해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를 거부하는 시각이다.

가장 기본적인 묘사는 초기 경전 맛지마 니까야에서의 '이것이 생하여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여 저것이 멸한다'이다. 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인간으로서의 경험'으로 묘사한 것이 12가지 연결고리, 즉 12연기로, 가장 처음에 무명을 연하여 행이 생기고... 에서 시작해 생을 연하여 노사가 생긴다로 끝난다[1]. 즉, 깨닫지 못한 중생이 겪는 삶과 죽음의 과정을 인과적으로 나열한 것이다. 석가모니는 이 12연기를 다음과 같이 역으로 사유하여 고찰한 끝에[2]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고, 이를 선정 수행을 통해 체험하고 깨달음으로써 마침내 열반을 이루었다.


2. 순서[편집]


12연기는 다른 여러 이름으로도[3] 불리는데, 삼계에 대한 미(迷)의 인과를 12가지 단계로 나눈 것이다. 12연기를 역순으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1. #12 노사(老死): 늙어 죽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이 겪는 삶의 고통을 나타낸다.
  2. #11 생(生): 태어남. 사람이 늙어 죽는다는 것은, 곧 태어난다는 것을 전제(선행조건)로 한다.
  3. #10 유(有): 영어로는 becoming(됨)으로 번역된다. 업보의 축적이라는 전제조건으로서 세상에 존재가 생겨나는, 태어나기 바로 전까지의 과정을 뜻한다.
  4. #9 취(取):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집착에 해당한다. 존재가 생겨남(유)에 앞서는 전제조건으로는, 무언가를 취해 자기 것 내지는 자기 몸의 일부로 만들려는 집착이나 집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5. #8 애(愛): 흔히 '욕구'나 '갈애'로 번역된다. 무언가를 취하려는 행동에 앞서 존재하는 것은 바로 욕구이기 때문이다.
  6. #7 수(受): 느낌에 해당한다. 욕구가 생기려면, 우선 그 욕구가 생겨날 만한 동기가 되는 좋거나 나쁜 감각을 느끼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세부적으로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중립적인 느낌 등이 이에 포함된다.
  7. #6 촉(觸): 접촉이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6근根)[4]과 여섯 가지 감각대상(6경境)[5]이 만나는 과정이다.[6] 느낌이 생기려면 우선 뭔가 감각적인 접촉이 있어야 하니까.
  8. #5 육입(六入): 앞서 언급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다. 흔히 '안이비설신의'라는 말로 표현되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의식(의식의 분별작용)에 해당한다.
  9. #4 명색(名色): 명과 색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명(이름)'은 느낌, 지각, 의도, 접촉, 주의 등의 감각접촉처리 시스템으로서, 형태인 '색'에 의지해서 연기적으로 일어날 뿐, 자체의 형태는 없으므로 '이름 뿐인' 요소들에 해당한다고 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색'은 지수화풍의 4대 요소와 이로부터 파생된 물질, 즉 고깃덩어리로 된 몸에 해당한다. 당연하지만 몸이 있어야 육입도 존재한다. 식은 조건에 따라 발현될 뿐 직접적인 수행의 대상이 되지는 못하기에, 불교에서 직접적인 수행의 대상은 바로 이 '명색', 즉 감각과 몸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무상하고 자성이 없는 명색을 자신으로 여기는 환상에 빠져있기 때문에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빠져 있다. 따라서 명색의 정체를 올바르게 관찰 및 통찰하여, 이러한 환상에서 벗어나 집착을 놓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10. #3 식(識): 인간의 의식이다. 오온 중 '식온'이라고도 한다. 명색만 있다고 해서 인식작용이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에, 인식작용에는 반드시 식온이 필요하다. 반대로 식은 (깨닫지 못한 범부의 입장에서) 명색과 항상 결합해 존재한다. 즉, 범부의 입장에서 식과 명색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7]
  11. #2 행(行): 과거의 경험이나 행동으로 인해 조건화되어 남은, 지식정보, 성격, 습관, 소질 등의 잠재적인 행동 경향성이다. 과거의 경험은 의식에 영향을 주는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12. #1 무명(無明): 직역하면 '빛이 없는 상태.' 즉, 연기법을 모르는 상태 그 자체를 가리킨다. 연기법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은, 과거의 업으로 인해 조건화된 '행'에 따라서만 살아간다. 그러므로 온갖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태어나고 죽는 괴로움에 빠진다.


3. 설명[편집]


이 12연기가 과거생-현재생-미래생의 삼생을 거쳐 펼쳐진다는 교리가 삼생양중인과설이다. 또 1찰나(刹那)에 12연기를 모두 갖춘다는 학설과, 시간적으로 3세(世)에 걸쳐서 설명하는 학설이 있는데, 삼생양중인과설은 후자의 경우로, 식(識)에서 수(受)까지의 다섯 단계를 현재의 5과(果)라 하고, 무명ㆍ행을 현재의 과보를 받게 한 과거의 2인(因)으로 설명한다. 여기까지가 과현일중인과(過現一重因果). 이 다음에 애ㆍ취는 과거의 무명과 같은 혹(惑)이요, 유(有)는 과거의 행과 같은 업(業)이니, 이 현재는 3인(因)에 의하여 미래의 생ㆍ노사의 과(果)를 받는다는 것이 현말일중인과(現末一重因果)이다.

이렇듯 원인과 결과가 꼬리를 물고 계속 변해가는 것(이는 단순히 원인과 결과라는 필연적 인과 체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의 상호관계에 주목한 사유이다)이 이 세상의 원리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할 수 밖에 없다. 용수(나가르주나)보살의 중론은 어떤 것이든 만약 변하지 않는 고정된 자성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논리적인 참사(?)가 일어나는지 자세히 논증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중론이 어떻게 시간적인 원리인 무상에서 좀 더 상호관계/상대적인 원리인 으로 전환되는 연결고리로 작용하는가 하는 점.

이는 인간 또한 마찬가지라서, 고정된 '나'는 존재하지 않고 색수상행식의 오온이 무상하게 끊임 없이 변한다. '무아'라고 하는 한문식 번역을 보면 '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단멸론적인 시각을 가지기 쉬운데, 원래의 팔리/산스크리트어로는 anatta/anatman이라고 하여 '아트만'이라고 불리는 힌두교 교리의 '절대적/고정적, 영원한/불변하는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 - 라는, 알고 보면 받아들이기 훨씬 더 쉬운 내용이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가 가지고 사는 '아상'은 뿌리가 깊어 '나'가 존재한다는 상견이나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견에 빠지기 쉽다. 이 두 사견을 초월하는 것이 중도.

이렇게 계속 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에, '이것이 항상 고정되어 같았으면 좋겠어'라거나 '인과에 의해 어쩔 수 없는 것이어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좋고 싫음으로 매달리거나 집착하면 고통이 생긴다는 것이 일체개고의 의미다. 사실 이 '고' 또한 팔리어로는 dukkha라고 불리는 것으로, 더 정확한 의미는 '불만족스러움'이다.



[1] 우리에게 익숙한 반야심경에서 언급되는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이 바로 12연기를 함축적으로 언급하면서, 12연기에도 역시 자성(自性)이 없는 업의 과보, 즉 공(空)한 것에 불과함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구절이다.[2] 실제로 사유할 당시에는 무명과 행을 제외한 10가지 단계까지 사유해 내려갔다고 초기경전(니까야)에서는 언급하고 있다.[3] 십이인연(十二因緣)ㆍ십이유지(十二有支)ㆍ십이지(十二支)ㆍ십이인생(十二因生)ㆍ십이연문(十二緣門)ㆍ십이견련(十二牽連)ㆍ십이극원(十二棘園)ㆍ십이중성(十二重城)ㆍ십이형극림(十二荊棘林)[4] 6관(官)이라고도 하는데, '근(根)'은 잰다는 뜻이다. 안근(眼根)ㆍ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ㆍ신근(身根)ㆍ의근(意根). 안근은 안식(眼識)을 내어 색경(色境)을 인식하고, 의근은 의식을 내어 법경(法境)을 인식하므로 근이라 한다.[5] 6식(識)으로 인식하는 감각의 대상. 색경(色境)ㆍ성경(聲境)ㆍ향경(香境)ㆍ미경(味境)ㆍ촉경(觸境)ㆍ법경(法境).[6] 또한 이러한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6경에 대하여 보고(眼識)ㆍ듣고(耳識)ㆍ맡고(鼻識)ㆍ맛보고(舌識)ㆍ만지고(身識)ㆍ느끼는(意識) 인식의 작용을 6식(識)이라고 한다. 6식의 가장 마지막인 '의식' 그 자체를 '제6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제6의식은 육식ㆍ의식ㆍ반연식(攀緣識)ㆍ순구식(巡舊識)ㆍ파랑식(波浪識)ㆍ분별사식(分別事識)ㆍ인아식(人我識)ㆍ사주식(四住識)ㆍ번뇌장식(煩惱障識)ㆍ분단사식(分段死識)이라고도 하며, 육식이 없는 사람은 '무육식'이라고 해서, 수치를 수치로 생각지 않는 무분별한 바보를 가리킨다. 6근과 6경을 합쳐서 십이처라고 부르고, 여기에 6식을 더해서 십팔계라고 한다.[7] 이러한 점에서 식이 소프트웨어라면, 명색은 하드웨어에 곧잘 비유되곤 한다. 소프트웨어가 기능하려면 하드웨어가 필요하고, 하드웨어가 기능하려면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