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아케르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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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국왕
Patricius | 파트리키우스


파일:external/www.akg-images.de/AKG200585.jpg

왕호
파트리키우스(Patrician)

오도아케르(Odoacer)
주군
제노[1]
생몰
년도

435년 ~ 493년
재위
기간

476년 ~ 493년
1. 개요
2. 왕위에 오르다
3. 치세
4. 몰락



1. 개요[편집]


게르만계 스키리족 출신의 서로마 제국 장군. '오도아케르'는 로마식 이름이고, 본래 이름은 '아우다와크르스'(Audawakrs).[2]

오도아케르는 서고트알라리크 1세, 반달족가이세리크, 훈족아틸라에 의해 쇠약해진 서로마를 완전히 붕괴시킨 인물이며, 서로마 붕괴 이후 유럽의 정치 지형은 대변화를 맞게 된다.


2. 왕위에 오르다[편집]


그가 소속되어 있던 스키리 부족이 약소부족이었던 탓에 동고트족에게 박살이 난 뒤, 서로마 제국 군대에 들어가 그곳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수십 년간 서로마 제국의 장군으로 복무하면서 높은 자리에 오른 오도아케르는 당시 로마의 실력자였던 리키메르의 휘하에 있었는데, 리키메르가 갑자기 사망한 후[3] 군도바트가 리키메르의 뒤를 이었으나 금세 오레스테스에게 실권이 넘어갔다.

오도아케르는 이 새로운 실력자인 오레스테스와는 경쟁 관계였고, 이후 오레스테스가 자신의 아들 로물루스를 황제로 세우면서 둘 사이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었다.

오레스테스가 병사들에게 땅 지급을 미루는 사이에 이에 불만을 품은 야만족 군대가 그를 리더로 옹립한 덕에 오레스테스를 공격해 죽이고 황제를 폐위한 다음 자신이 이 되었다. 사실 오도아케르는 마음만 먹으면 허수아비 황제를 새로 앉힐 수 있었다. 적당한 로마인을 골라다 앉혀 놓고 실권을 자기가 쥐면 동로마 제국에게 공격을 받을 이유는 없었을 텐데 어째서 그런 위험한 짓을 했는지는 미스터리. 다만 이전에 플라비우스 리키메르가 옹립했던 마요리아누스 황제가 서로 권력 다툼을 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자기가 직접 왕이 되는게 더 권력을 쉽게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로마 황제 자리에 더이상 황제가 세워지지 않음으로 인해 서로마 제국은 476년에 멸망했다. 하지만 이 멸망 시점에 대해 이견도 많이 있는데, 일전에 오레스테스에게 쫓겨난 율리우스 네포스를 로마 최후의 황제로 보기도 한다. 네포스는 쫓겨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자신이 황제라고 주장하고 있었고, 로물루스가 폐위되자 동로마 황제 제노도 네포스를 서로마 황제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네포스가 살해된 480년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시점으로 본다.

다른 견해로는 서로마 최후의 군벌인 시아그리우스가 클로비스 1세가 이끄는 프랑크족에게 수아송 전투에서 참패한 시점인 486년을 서로마제국의 멸망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시아그리우스 본인은 딱히 황제를 자처한 적이 없지만 그의 군대가 (서)로마군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세력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황제의 관을 반납함으로써 동로마 황제의 신하를 자처했으므로, 일단 서로마가 유지는 되었으나 그가 테오도리크에게 제거된 뒤 테오도리크가 진짜로 동고트 왕국을 세워 독립하면서 소멸됐다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3. 치세[편집]


파일:오도아케르 왕국.jpg

그는 허수아비 황제를 세우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황제로 즉위하지도 않았다. 그는 실권을 장악한 후 동로마 제국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동로마의 황제 제노가 수여한 '파트리키우스'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왕이 된 후에는 북이탈리아를 본거지로 삼으면서 그곳을 병사들에게 봉토로 지급하고 군대를 재건하여 네포스가 살해된 후 혼란에 빠진 달마티아와 시칠리아를 수복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기존 지배 계급의 특권을 계속 보장하고 그들에게 행정을 맡겨 나라를 안정화시켰다. 하지만 그는 로마인과 적극 동화되지는 않았고 이민족들의 침략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으며 피해를 방치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점들이 로마인의 외면을 불러 그의 통치가 오래가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4. 몰락[편집]


오도아케르는 서로마를 멋대로 멸망시켰다는 점 때문에 동로마 제국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데다 그가 군사적 성과를 거두면서 계속 세력을 확장해 나가자 동로마 제국의 제노 황제는 그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견제 세력을 찾고 있던 제노는 동고트족의 지도자였던 테오도리크와 협약을 맺고 그를 동로마 제국의 장군으로 받아들이며 오도아케르의 축출을 명령했다. 드디어 489년에 테오도리크는 알프스를 건너 이탈리아 반도로 침공해 들어갔다. 오도아케르는 그와 맞붙었으나 연전연패했으며 여기에 서고트족의 왕이었던 알라리크 2세까지 테오도리크를 지원하자 오도아케르는 난공불락의 도시인 라벤나에 은신하게 되었다.

테오도리크의 공성에 맞서서 3년간 라벤나에서 버티던 오도아케르는 라벤나의 주교 요한의 주선으로 테오도리크와 협상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오도아케르는 안전을 보장받고 테오도리크와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 그러나 테오도리크는 라벤나 입성 10일 후 오도아케르와의 연합을 축하하는 잔치를 벌이다가 흥이 오를 때쯤 갑자기 오도아케르를 검으로 목 아래쪽으로부터 옆구리까지 단칼에 세게 베어내려 죽여 버렸다. 동시에 오도아케르의 친위세력도 테오도리크의 부하들에게 공격을 받아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에 모조리 살해됐다. 장례식을 축하 잔치로 대신한 셈. 이에 대한 테오도리크 자신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그 불쌍한 놈은 마치 뼈가 없는 것 같았다."


오도아케르가 몰락하면서 동로마는 한시름을 덜었으나 테오도리크 또한 만만찮은 야심가로 동로마와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기 때문에 훗날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기에 또 한 번 큰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1] 명목상.[2] 원시 게르만어 '아우다와크라즈'(Audawakraz)에서 유래했다. '아우다와크라즈'는 '부'라는 뜻의 '아우다즈'(audaz)와 '깨어있다'는 뜻의 '와크라즈'(wakraz)의 합성어였다.[3] 독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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