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송 전투(4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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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전투 경과
4. 결과



1. 개요[편집]


서기 486년 메로베우스 왕조의 군주 클로비스 1세와 수아송 왕국의 마기스테르 밀레툼 시아그리우스가 수아송 인근 평원에서 맞붙은 전투로, 클로비스 1세가 승리하여 수아송 왕국을 멸망시켰다.


2. 배경[편집]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무렵, 갈리아 북부에 로마계 군벌 시아그리우스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서로마 말기 갈리아에 잔존한 로마군을 통솔한 아에기디우스의 아들로, 464년경 수아송을 수도로 삼고 갈리아의 마기스테르 밀레툼을 칭했다. 그는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도아케르에게 복종하길 거부하고, 이탈리아와의 모든 관계를 끊었다. 동로마 제국에게 사신을 보내기도 했으나, 제노 황제가 그를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인정하길 거부하자 역시 교류를 끊었다.

서기 481년, 수아송 왕국 인근에 거주하며 수아송 왕국에 복종했던 잘리어 프랑크 족의 부족장 킬데리크 1세가 사망하고 아들 클로비스 1세가 즉위했다. 그는 5년간 주변의 여러 프랑크 부족들을 장악하며 힘을 키웠다. 이윽고 서기 486년, 클로비스 1세는 시아그리우스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이에 시아그리우스가 응하면서, 양측은 수아송 인근의 평원에서 맞붙었다.


3. 전투 경과[편집]


양측의 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사료가 미비해 알 수 없으나, 양측 모두 대등한 수의 병력을 동원했다고 전해진다. 투르의 그레고리우스는 수아송 전투에 대해 간략한 기록을 남겼다. 이에 따르면, 클로비스 1세는 전투 전에 시아그리우스에게 결투를 신청했지만, 시아그리우스는 프랑크족을 물리칠 수 있다고 자신하며 회전을 벌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전투는 한나절 동안 진행되었고, 프랑크 족이 완승을 거뒀다고 한다.


4. 결과[편집]


시아그리우스는 전장에서 탈출한 뒤 툴루즈의 서고트 국왕인 알라리크 2세에게 귀순했다. 그러나 클로비스 1세가 시아그리우스를 내놓지 않으면 서고트 왕국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자, 알라리크 2세는 시아그리우스를 프랑크 족에게 넘겨줬다. 시아그리우스는 넘겨진 직후 처형되었다고 전해진다.

클로비스 1세는 수아송 왕국을 점령함으로써 솜 강에서 루아르 강에 이르는 영토를 획득했다. 그는 이를 발판으로 삼아 향후 몇 년간 갈리아 정복 전쟁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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