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 사다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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岡 定俊

1561년 ~ 1620년 (추정)

1. 소개
2. 일화
3. 대중매체에서


1. 소개[편집]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으로 오카노 사나이(岡野左內), 또는 오카 사나이(岡左內) 등으로도 불리는데, 이 중 1597년에 '오카 사나이'라고 서명한 행정 문서가 남아 있다.

본래는 가모우 家를 섬기던 사무라이였는데, 전공을 세워 1만 석의 녹을 받았다가 가모 우지사토가 죽은 뒤에, 몰락한 가모우 가를 대신해 아이즈 지방을 다스리게 된 우에스기 가문에 사관하여 1601년에 마츠가와 전투에서 다테 마사무네의 군대를 대파하고 마사무네를 거의 죽이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등의 전공을 세웠다. 그러다가 우에스기 家가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에도 막부의 정책에 따라 전봉되고 가모우 가가 다시 아이즈 번을 다스리게 되자 이번엔 다시 가모우 가를 섬겨 이나와시로 성의 성주로 1만석의 녹을 받고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2. 일화[편집]


'부헨바나시키키가키'(武辺咄聞書)에 따르면 서양 갑옷으로 추정되는 갑옷을 입었다고 하며, 기리시딴(기독교인)이기도 하여 전후에 사재를 털어 교회를 열고 신부를 초빙하였다고 한다. 또한 '우게츠모노가타리'(雨月物語)에 따르면 당시 장사를 천하게 여겼던 대부분의 사무라이들과는 달리 장사로 재산을 불리는 데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며 재능도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에게는 특이한 버릇이 있었는데, 방 안에 돈을 잔뜩 깔아놓고는 그 위에서 알몸으로 뒹굴거나 잠을 자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스크루지 맥덕?)

그러나 단순히 재물을 치부하는 데에만 열중한 것은 아니었는데, 세키가하라 전투 후에 우에스기 가가 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게 되자 자신의 재산을 풀어서 우에스기 카게카츠에게 헌상한 뒤 우에스기 가가 전봉을 당할 때 헤어짐에 앞서 그 차용증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고, 이 사실을 안 나오에 카네츠구는 그와 헤어지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 했다고 전한다. 또한 자신의 하인 중 하나가 자신의 금화를 하나 훔쳐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처벌하기는 커녕 "아무리 좋은 명검도 수백 수천의 적을 상대할 수 없지만 황금은 모든 사람들을 쉽게 굴복시킨다. 너는 천한 신분임에도 황금의 힘을 알아보고 간직할 줄 알고 있으니 상을 받아 마땅하다"면서 그에게 10냥의 금화를 주고 무사로 삼았다고 한다. 이러한 부분에선 우리나라의 자린고비가 생각나는 인물.


3. 대중매체에서[편집]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13번째 시리즈 '천도'에서 처음 등장했다. 능력치는 좋게 말하면 균형잡혀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어느 쪽도 특출하지 않은 평균적인 형태.

일본 웹소설 '이세계 전생 소동기'에서 주인공의 전생이자 인격 중 하나를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위에서 말한 '기벽'이 소개되며, 주인공의 실전 능력을 보충해 주는 부분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