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삼국지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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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유우♡어르신♡.jpg

1. 개요
2. 캐릭터 묘사
3. 작중 행적
3.1. 시즌 4: 군웅할거
3.2. 시즌 5: 협천자
3.3. 시즌 7: 적벽대전
3.4. 시즌 10: 한중왕 유비
4. 기타



1. 개요[편집]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에 등장하는 유우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2. 캐릭터 묘사[편집]


모노클을 쓰고 소박한 차림을 하고 있으며, 너그럽고 선량하여 유주 백성들은 물론 이민족들에게도 존경받는 사람으로 묘사된다.[1] 평화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이민족들을 잔혹하게 토벌하고자 하는 공손찬과 계속 대립한다.


3. 작중 행적[편집]



3.1. 시즌 4: 군웅할거[편집]


군웅할거 7화에서 이민족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모습으로 첫 등장. 온화하고 자애로운 성품의 평화주의자이자, 오랑캐라 멸시받는 이민족들을 상대로도 우월 의식을 보이지 않고 기꺼이 화합하고자 하는 열린 마인드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2]

아이들을 보낸 이후 본인의 사무실에서 보좌관과 톡을 나눈다. 그들은 이민족과 친교를 맺으려고 오랫동안 수고를 들였으며, 결국은 보람이 있어서 평화선언문을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우가 최종적으로 발표할 문서에 도장을 찍으려는데.... 공손찬이 불쑥 쳐들어와, 피칠갑을 한 손으로 문서를 싹 쓸어버린다. 이런 무례에도 불구하고 유우는 사람 참 괴팍하다며 웃어넘기고, 몸소 떨어진 종이들을 주우면서 공손찬에게 발을 치워달라 청한다. 그런데 공손찬이 종이를 밟은 발을 움직이지 않고 버티자,

장군. 내가 "발을 치우라"고 하였어.

라며 단호하게 재차 명하는 카리스마도 보인다. 은근슬쩍 다른 종이를 밟으며 유치하게 복수하는 공손찬은 덤

곧 제대로 자리를 마련해 이민족과의 평화협정에 관해 대화를 하지만, 공손찬은 "내가 어떻게 이 땅을 지켰는데 오랑캐와 손을 잡느냐, 화친 따위는 약한 놈들의 핑계일 뿐이고 나는 오랑캐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 그놈들을 모조리 박멸하겠다"며 칼까지 들고 노발대발한다. 유우는 같은 사람에게 버러지니 박멸이니 하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공손찬을 위험한 인물로 여겨 견제하려 마음먹는다.[3]

그 때, 한복의 사신들이 찾아와 느닷없이 유우를 황제라 부른다. 한복과 원소가 작당을 하여[4] 동탁이 옹립한 어린 황제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대립황제로 유우를 추대하고자 한 것. 상황을 파악한 유우는 "이 나라의 신하로서 감히 옥좌를 탐할 수 없다, 허튼 생각 말고 백성들을 챙기라"며 한복의 사신을 죽여 거부의 뜻을 밝힌다.[5]


3.2. 시즌 5: 협천자[편집]


공손찬의 패악질을 보다 못한 유우는 마침내 그를 토벌하기 위해 대군을 일으킨다.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와중에도 민생과 병사들을 챙기는 어진 목민관의 면모를 보여줬다.[6] 그러나 오로지 승리만을 생각하는 공손찬의 잔혹한 계략에 당해 참패, 생포당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처형 예정일에 비가 오면 살려준다"는 조롱까지 당한다.[7]

처형 전날 밤, 유비가 유우를 찾아와 따뜻한 캔커피를 건네며 자신이 유우를 존경한다고 고백하고[8][9], 자신이 유우를 구해줄 수 있는 형편은 못 되지만[10] 내일 비가 오기를 바라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유우는....

유현덕 씨. 나는 내일.... 맑았으면 좋겠는데?

자네 선배가.... 어디 날씨 따라 자비 베풀 사람인가? 날 살려줄 맘... 애초에 없는 것 아네.

그리고.... 비는 싫어. 이 겨울에 비가 왔다간....

추위가 뼛속까지 스미고.... 백성들은 길에서 얼어죽을게야.

나 살자고... 내 사람들 고생시킬 수 없네.


아이고야~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내일은 아주 화창하겠구먼?


다음 날 하늘은 비는커녕 한겨울임이 무색할 정도로 쨍쨍했고, 유우는 흔들림 없이 맑은 표정으로 처형대에 오른다. 유비는 그를 구명하려고 공손찬을 설득하고[11] 처형장에 모여든 유주 백성들도 우리 어르신을 살려달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공손찬은 유비의 진의를 눈치채고 "너는 내가 아니라 저 백성들이 두려워서 유우를 살리려는 모양이다만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하며 기어이 처형을 강행, 유우는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끝내 유우가 참수되자 공손찬은 울부짖는 유주 백성들 앞에서 유우의 수급을 들고서는 광소를 띤 채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나, 그 참담한 모습을 지켜보던 유비는 속으로 당신이 진 것이라고 읊조린다. 이 사건 이후, 유우의 가족들도 모조리 공손찬에게 죽었고 아들 한 명만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한다.[12]

이 소식이 알려지자 유우를 존경하던 북방 이민족들이[13] 그의 죽음에 분노하여 원소와 연합해서 공손찬을 공격하였고[14], 이것이 공손찬이 몰락하는 시발점이 된다.


3.3. 시즌 7: 적벽대전[편집]


유우 사후 어언 10년이 흘러 조조가 오환족을 치고 있을 시점에서, 유우의 옛 부하였던 전주[15]의 회상으로 다시 등장한다. 어릴 적 오환족의 공격으로 부모를 잃고 절망하던 전주를 끌어안으며 '전 선생!, 마음 다잡게.[16] 분명 오환과 우리가 함께 살 길이 있을 게야...'라고 위로하였는데, 어버이 같이 따르던 주군이었지만 전주의 원한은 사라지지 않았고, 유우도 그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고 전주가 스스로 밝혔다. 그리고 전주는 끝내 옛 주군의 뜻을 거스르고 조조를 이용하여 오환족을 공격한다.


3.4. 시즌 10: 한중왕 유비[편집]


조조와의 결전을 앞둔 유비가 유우와의 마지막 만남을 떠올리며 존경심을 담아 그에게 선물한 커피를 장비를 포함한 부하들과 마시고는 장비가 맛없다고 불평하자 제사음식이라 언급한다.

그러고는 유비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누구보다 하늘의 뜻에 가깝던 사람을 하늘이 버리는 것을

그 날 순진했던 젊은 유비도 죽었지...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라고 독백하며 다 마신 커피캔을 밟아 찌그러뜨리고는 게릴라전을 앞둔 군사들을 다독이는 연설을 한다.

4. 기타[편집]


명실상부 고귀한 황족 신분[17]임에도 검소한 옷차림[18]을 하고, 이민족 아이들과 함께 노는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목숨보다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고[19], 비(非)한인 이민족들을 오랑캐라 멸시하지 않고 동등한 사람들로 대우하는 등, 작중 원탑으로 선량한 인품을 보여주었다. 이런 모습이 독자들에게도 큰 감명을 주어, 팬덤에서마저 '유우 어르신'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연의에선 완벽하게 묻혀 버린 비운의 인물인데[20], 삼톡에서는 정사에 기록된 그의 훌륭한 인격을 적극 어필하여 비중을 살렸다. 특히 최후의 순간까지도 자신이 살 길을 구하기보다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는 묘사, 유비가 그를 존경하여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각색[21]을 더하여 존재감이 더욱 빛난다. 이에 따라 유우도 진궁, 원소, 공손찬과 더불어 삼국지톡의 수위권 수혜자로 꼽힌다.[22]

[1] 이민족들이 유우 굿즈를 착용하고 다닐 정도.[2] 이민족과의 친교를 위해 그들의 언어를 직접 공부한다는 설정도 지나가듯 나왔다. 정사에 유우가 유주자사로 부임한 뒤 북방 이민족들이 입는 양모로 만든 의복을 입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부분은 확대 해석하면 유우가 이민족의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사람이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니, 삼톡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연출하기 위해 외국어를 직접 공부한다는 설정을 넣은 듯.[3] 유우 개인의 평화주의 신념만으로 이러는 것이 아니라, 당시 후한은 영제의 실정과 황건적의 난 등으로 망조가 단단히 든 형편이었기에 이민족과의 전쟁을 지속할 상황이 못 되었다. 또한 전쟁을 지속할 경우 군사 인력과 물자가 끊임없이 소모되고, 결국 이 부담은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기에, 인도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삼톡에서는 단순히 대외정책 초강경파 정도로만 묘사되는 공손찬은, 실제 역사에서는 이민족과의 전쟁을 핑계로 본인의 입지를 다지려는 흑심을 품은 위험분자였다. 군비를 횡령해 사욕을 채우다가 유우가 군비 감축을 추진하자 반발하기도 했고, 유우가 소환 명령을 내리자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고 불응하는 등, 황족이자 본인 직속 상사인 유우에게 대놓고 개긴 적도 여러 번이었다. 유우는 공손찬의 이러한 흑심과 야욕까지 간파했기에 그를 위험인물로 간주한 것.[4] 사실 원소는 스폰서인 한복이 주장하는 일에 마지못해 장단을 맞춰 준 정도였고, 유우가 거절할 것도 미리 예상하고 있었으며, 이후 공손찬을 끌어들여 한복을 압박해서 끌어내린다.[5] 인격자 유우가 죄 없는 사신은 왜 죽였느냐는 의문을 갖는 독자들이 많았는데, 원래 사신을 죽이는 것은 거부 의사를 표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원래 전근대 사회에서 전령, 사신은 이런 이유로 죽기가 너무 쉬워 말 그대로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이었다. 사신을 죽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생긴 것도, 일부러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애먼 사신이 죽어나가는 경우가 너무 흔했기 때문. 괜히 손건이 의외의 괴수라는 게 아니다 게다가 유우가 처했던 상황에서 사신을 죽이지 않고 말로만 거절하면, "앞에선 거절하는 척하고 뒤로는 작당할 거 다 같이 했다"는 뒷말이 나오기 쉬웠다.[6] 다만 댓글에서는 이 전략에 대한 비판도 다소 있었다. 백성을 챙기는 것은 좋았으나, 10만명이라는 대군의 목숨을 책임지는 지휘관으로서의 본분에는 소홀했다는 것이다.[7] 애초에 공손찬은 유우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 따위는 없었다(유우 왈 "공손찬이 어디 날씨 따라 자비 베풀 사람인가?"). 이 때는 음력 10월로, 유우가 붙잡힌 유주 계양현은 동계 강수량이 매우 적어 애초에 비가 올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애시당초 살려줄 마음도 없으면서 '충족 불가능한 조건이 충족되면 살려준다'고 능멸한 것.[8] 유비를 듣보잡 취급한 여타의 군벌들과 달리, 유우는 유비가 황족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사족으로 이들은 모두 전한 경제의 후손이며 경제의 4남 노공왕 유여의 후손이 유표와 유언/유장 부자, 7남 장사정왕 유발의 후손이 유우를 포함한 후한 황족들, 9남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이 유비, 그리고 11남이 한무제이다. 그 외에도 유총도 한나라의 황족인데, 이쪽은 명제의 후손이다. 다만 유표와 유비, 유언/유장 부자는 이미 전한에서 황제 가문으로부터 갈려나온 방계 중 방계이므로, 황제와 촌수를 따지기 힘들 정도로 사실상 남이라고 봐야한다. 반면 광무제의 장남의 5대손인 유우는, 비록 먼 친척이긴 하지만 헌제와 13촌 사이로 엄연히 황족 소리 들을 만하다. 유충은 광무제의 손자대, 유엽은 광무제의 아들대에서 갈려나왔으니 마찬가지로 진짜 황족.[9] 실제 역사에서 유비와 유우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고, 연의에서의 인연도 독우를 구타한 건으로 수배 중이던 유비 일행의 복권에 유우가 도움을 준 정도였으나, 본작에서는 약간의 상상력을 덧붙여 '인의를 지키며 선량하게 살고자 했던 유비가, 실제로 어질고 인덕이 높은 유우를 깊이 존경했다'는 설정을 넣었다. 사실 정사에 그랬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을 뿐 둘다 당시 지배자층 중 유일하게 약탈을 하지 않고 백성들의 안위를 돌보는 등 인의를 중시한 성향이 일치하고, 실제로 유비가 공손찬을 손절한 게 그가 유우를 죽인 뒤이기에 유비가 유우를 고평가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높으므로,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각색이다. 거기다 유우는 유비의 고향인 유주의 자사를 맡았으므로, 젊은 시절의 유비는 유우 치하에 있던 백성이었을 가능성도 아주 높다. 연의에서는 아예 유비가 유우 밑에서 종군한 적도 있다.[10] 관우와 장비를 동원하면 유우를 감옥에서 빼내는 것 정도는 간단했다. 다만 유우를 구해줬다가 공손찬의 분노를 사면 그 화가 자신의 사람들에게 미칠 것이라 가볍게 움직일 수 없었다.[11] 본인은 유우에 대한 존경심+유우를 죽일 경우 사게 될 분노에 대한 우려 때문이지만 그렇게 말하면 공손찬이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 공손찬의 수준에 맞게 "이렇게 맑은 걸 보니 하늘이 저 노인 버린 게 뻔하지 않냐, 굳이 죽여서 이득 될 것도 없다"고 말했다.[12] 작중에선 구체적인 언급은 안 나오는데, 이 때 살아남은 유우의 아들은 유화이다. 유화가 살아남은 이유는 애초에 유주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장안 조정에서 벼슬을 하다가 황제의 명에 의해 유우에게 파견되었다. 유우가 황제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데려와 보호하려고 했고 황제는 그에 응하기 위해 유화를 보낸 것. 그런데 유화는 원술과 원소에게 차례로 붙잡히고, 또 유우의 계획도 원술과 공손찬의 농간에 의해 실패했다. 유우가 죽었을 때도 유화는 원소에게 붙들려 있어서 유주에 없었는데 전화위복으로 목숨을 건진 것.[13] 말 뿐이 아니라 유우의 얼굴이 그려진 유우천사 셔츠를 단체로 입고, 카톡 프로필 사진도 유우로 되어 있을정도다. 거기다 각 이민족 지도자들은 유우를 자신들의 친구였다며 진심으로 애통해했다.[14] 유우에 대한 우호와 존경심도 있었지만, 공손찬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면 오환, 선비 등 이민족들이 싸그리 절멸당할 위기였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실제 역사에선 정치와 선동의 달인인 원소가 이 점을 이용해 이민족들과 연계하지만, 본작에선 이 부분까지는 묘사되지 않았다.[15] 여담으로, 전주는 공손찬이 유우를 처형할 때 유우를 살려달라고 애걸하던 군중들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묘사가 추가되었다.[16] 이때 아직 어린 아이였던 전주를 '선생'이라 불렀던 유우의 인품이 다시 조명되기도 했다.[17] 유우는 동해공왕 유강의 직계후손이고, 동해공왕은 광무제의 첫 황후였던 광무황후 곽씨 소생의 적장남이자 첫 태자였다. 후일 광무제는 곽 황후를 폐출했으나 유강은 여전히 태자로 두었는데, 유강 자신이 부담을 느껴 스스로 태자위를 내놓았고 제위는 광무제의 4남이자 유강의 이복동생, 광렬왕후 음씨 소생인 명제에게 돌아갔다(작중 시점에서 나온 영제, 소제, 헌제를 포함한 후한 황제들이 모두 명제의 직계후손들). 비록 폐후 소생에다 태자 자리에서도 물러났지만 어쨌든 유강은 엄연한 적장자였으며, 죄를 짓고 폐출된 게 아니라 아무 죄도 없는데 스스로 태자위를 내놓은 것이라, 광무제와 명제도 그를 계속 우대하였다. 즉, 유우는 정통성 측면에서 당시 재위 중이던 헌제를 포함한 후한 황통의 직계들보다도 훨씬 우위에 있었고, 전한 황실의 후예인 유비나 유표 등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정통하고 고귀한 신분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비슷한 위상의 황족이 진왕 유총 정도. 반동탁 연합군 와해 후 한복과 원소가 유우를 추대한 이유가 이런 뒷배경 때문인데, 대립황제 추대의 명분이 헌제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었으므로 추대의 대상이 될 사람은 정말로 어느 누구도 태클을 걸지 못할 정통성을 갖춘 이여야 했고, 동해공왕의 후예인데다 평판까지 훌륭한 유우가 적절했던 것이다.[18] 자사 급의 인물들은 대부분 화려한 무늬가 있는 겉옷 또는 양복을 입은 반면 유우의 겉옷은 민무늬로 수수하다. 실제 정사 기록에서도 검소한 사람이었다고 한다.[19] 특히 죽기 전날 밤에 자신보다 백성들을 생각하여 맑은 밤하늘에 감사하는 장면이 무척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연출되어 수많은 팬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으며, 그의 죽음에 대한 유주 백성들의 반응도 매우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당시 삼톡 독자들 모습[20] 연의에서 공손찬의 개막장 행각이 대부분 통편집되고 그냥 유비의 친절한 선배 정도의 비중으로 전락하면서, 그 공손찬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유우는 완전 공기가 되고 말았다. 인격자 포지션은 엉뚱하게도 도겸이 받아갔는데, 도겸이 유비가 세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 건 사실이기에 그렇게 된 듯.[21] 이는 역사적 근거가 분명히 있는 추측이다. 확인해주는 기록이 없어서 각색일 뿐. 유비 또한 평생 인의와 모략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 인물이고, 그런 그의 인생관에 유우 같은 선배 군웅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22] 사실 진궁 정도를 제외하면 원소, 공손찬, 유우는 그저 정사에서 보여준 행보 그대로 묘사했을 뿐이다. 물론 공손찬의 후배사랑이나 원소의 미친 꽃미모같이 과장한 면도 있지만.(공손찬이 유비를 신뢰한 것이나 원소가 잘 생긴 것 자체는 사실이다) 저 셋은 연의에서 지나치게 폄훼를 당했기에 정사를 따라 묘사한 것만해도 수혜자가 되는 것. 본작은 공손찬의 막장 인격이나 명분에 집착하는 원소의 태생적 한계, 비인간적인 면모까지도 그대로 묘사했기 때문에 딱히 미화한 것은 아니다. 유비와의 대화는 창작이지만, 실존인물 유우도 저런 식으로 전국적인 존경을 받던 인격자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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