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수(1886)

덤프버전 : r20210301



출생
1886년 6월 19일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창리
사망
1947년 12월 27일
경상남도 합천군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유인수는 1886년 6월 19일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창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초순 임상종(林尙鍾)이 경성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와서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보이자, 그는 임상종을 비롯하여 권영두, 권중박(權重璞)·정시권(鄭時權)·권양희(權良熙)·송헌기(宋憲基) 등과 밀의를 거듭한 끝에 3월 20일의 창리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한편 인근 부락에도 이 계획을 알렸다.

3월 20일 미리 마을을 순회하면서 규합한 동지들과 장터에 모인 4,000여명의 시위군중을 주도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시위를 벌였다. 군중의 기세는 독립만세의 우렁찬 함성과 함께 폭발하여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온 일군경의 총격에도 굴하지 않고 주재소로 달려가 문서와 기물을 파괴했다.

이후 동지들과 함께 체포된 그는 1919년 9월 15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10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합천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7년 12월 2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유인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