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쿼이 극장 화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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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쿼이 극장 화재 사고
Iroquois Theatre fire

파일:이로쿼이 극장 화재 사건.jpg
발생일
1903년 12월 30일
사고일로부터 43949일
발생 위치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유형
화재
원인
모슬린 커튼 점화
인명피해
사망
602명
부상
250명

1. 개요
2. 이로쿼이 극장
3. 화재
4. 화재 이후




1. 개요[편집]


1903년. 시카고의 이로쿼이 극장에서 일어난 화재이며, 미국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화재다.


2. 이로쿼이 극장[편집]


파일:20230325_112852.jpg

화재가 있기 약 50일 전에 개관한 이로쿼이 극장은 객석이 1,744개나 있는 대형 극장이었다. 계단은 전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높은 천장과 곳곳의 유화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런 크고 아름다운 구조 덕에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런 곳인 만큼 화재 안전도 중요해서 비상구 27곳과 석면으로 된 방화막 등의 방화시설도 갖추었고, 오픈할 당시에도 이러한 방화시설이 있다며 신문으로 대놓고 "Absolutely Fireproof" 라며 크게 홍보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상구 대부분은 돈을 내지 않고 몰래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단 이유로 잠가뒀었다. 거기다 출입문이 바깥에서 안쪽으로 열리는 구조였고, 작은 손잡이를 작동해야 여는 도개식이었는데, 당시 이런 구조는 유럽에서 막 미국으로 퍼지기 시작한 구조라서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상당수의 층으로 나뉜 극장이 그러하듯이, 높이 올라갈수록 가격이 낮아지고 보기 불편했고, 혹여나 윗층을 고른 관객이 몰래 다른 층으로 내려갈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연극 상영때는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철제문으로 막았다.

거기다 안에 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기, 긴급전화도 없었는데, 건설 도중 근로자들이 파업을 벌여서 정해진 기간 내에 다 짓기가 힘들어지자 이러한 화재 방지 시스템을 빼고 지었다. 당연히 불법이었으나 감시하러 온 사람들에게 눈 감고 넘어간다면 나중에 공짜로 연극을 보게 해주겠다고 해서 넘어갔다. 그런데 이러한 안전 장치들을 다 빼고도 제한 기간 내에 완공을 못해서 다 짓지도 않은 채로 오픈을 했고, 오픈한 뒤에야 완공을 했다. 그 상태서도 비상구에 계단이 없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큰 화를 불렀다.


3. 화재[편집]


1903년 12월 30일, 당시 극장에선 연휴를 맞이해 학생과 부모들이 뮤지컬 푸른 수염을 관람중이었다. 인원은 객석 1,744개를 넘어선 1,900여 명 정도, 방학을 맞이해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학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뮤지컬 도중 극장 지붕의 전기 배선에서 발생한 불이 무대 옆 커튼에 옮겨 붙었다. 당시 밤 장면 연출을 위해 불을 다 끈 상태에서 불길이 일어나 관객들은 공연 연출로 착각하기도 했다. 불을 본 스태프가 방화 커튼을 바로 내렸으나 절반 절도만 내려오다 조명 반사막에 걸려 멈추는 바람에 불이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이 상황에서 배우 에디 포이(Eddie Foy)는 직원에게 객석에 있는 자기 아이를 데리고 도망가라 하고는 관객들에게 안심하라 말하고, 오케스트라에게 관객을 진정시킬 음악을 연주하라 했다. 이 와중에 다른 배우들은 킬파이어(Kilfyre)라는 소화도구[1]로 불을 진압하려 했으나 실패, 안 되자 막대로 쳐서 불을 끄려 시도했으나 오히려 불똥만 뒤집어 썼다.

배우들은 불 붙은 무대 의상을 입은 채 뒷문으로 도망쳤고, 공기가 유입되면서 커진 불길이 유화가 그려진 캠버스들을 잡아먹으며 더 커졌다. 객석까지 번지는 바람에 사람들은 모두 출구를 향해 도망쳤다. 하지만 비상구 대부분이 잠겨있었고, 그나마 멀쩡한 비상구도 사람이 너무 몰리는 바람에 넘어져 밟혀 압사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간신히 열린 2층 비상구로 탈출했으나 비상구 밖에 계단이 없어서 추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앞서 말한 도개식 구조의 문 때문에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나마 부잣집 어린이 한명이 집에서 쓰던 문 구조와 비슷해 열고 탈출할 수 있었다. 또 한 노면전차 운전자는 마침 운좋게 공구를 갖고 있어서 문의 경첩을 해체해 사람들 대피를 도왔고, 옆 건물에서도 긴 사다리로 임시 다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파일:1674376072673.jpg

극장 내에 전화기가 없어 화재 신고가 늦어 소방대도 화재 15분만에야 도착했고, 불을 끄려고 소방대가 문을 열려 시도했으나 문이 시체들로 막혀서 열 수가 없었다. 겨우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불은 이미 산소부족으로 줄어든 뒤였다. 불이 진압되기까지는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 30분 사이에 화재로 575명이 사망, 병원에 옮겨진 중상자 중 27명이 사망하면서 602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 원인은 연기에 의한 질식이 많았고, 사람들에 깔려 압사한 사람들도 있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건축물 화재사고로 기록됐다.


4. 화재 이후[편집]


당시 시카고 시장 해리슨은 170여개의 극장과 홀, 교회당을 폐쇄 후 한 달 동안 소방시설 점검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소방법도 개정했다. 비상구는 안에서 바깥으로 밀어서 여는 구조로 바꾸었고, 극장 안의 불을 꺼도 비상구 표시등은 반드시 켜지도록 했고, 방화커튼은 철제로 교체했다. 또 비상구에 반드시 가로로 된 긴 손잡이[2]를 만들어 쉽게 열 수 있도록 지정됐다. 여러모로 화재 안전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극장주와 공사담당자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처벌은 없었다.

이로쿼이 극장은 화재 이후 리모델링 해서 콜로니얼 극장으로 재 오픈했으나 1920년에 철거됐다. 그리고 다시 지어져서 제임스 M 네덜란더(James M Nederlander) 극장으로 재오픈, 현재까지 운영중이다.

비상구에 계단이 없어서 사람들이 추락한 자리에는 귀신이 보인다는 소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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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화 가루를 뿌려 불을 끄는 일종의 소화기다.[2] 패닉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