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호 스카이 다이빙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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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리호 스카이다이빙 참사.jpg

1. 개요
2. 사고 당시
3.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1967 Lake Erie skydiving disaster

1967년 8월 28일 미국 오하이오주 이리호에서 일어난 스카이다이빙 참사.


2. 사고 당시[편집]


당시 스카이다이버 30명은 오하이오 주 오트너(Ortner) 공항에 모여 스카이 다이빙을 준비했다. 이들 중 17명은 평균 스카이다이빙 75회, 그 중 7명은 평균 200회를 넘는 베테랑이었다. 원래는 Huronite Ted Murphy가 운행하는 B-25에 모두가 타고 스카이다이빙을 하려 했으나 비행기가 그만큼 넓진 않아서 나눠 타야 했다.

목표는 20명이 B-25를 타고 지상 2만 피트(6,100m) 위로 올라가 18명이 스카이다이빙, 이후 비행기가 고도를 높여 올라가 3만 피트에 도달하면 2명이 마저 하는 것 이었다.세스나 180이 B-25를 따라다니며 촬영할 예정이었다. 당시 날씨는 좋지 않았다. 구름이 곳곳에 짙게 끼었고, 아직 GPS가 민간에 보급되기 전이라[1] 인근 관제탑과 계속해서 연락을 하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오후 3시에 비행기가 이륙했고 금새 지상 2만 피트에 도달했다. 온도가 최저 영하 34도나 되는 구간이었기에 스카이다이버들은 모두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B-25가 관제탑 레이더에서 벗어났고, 세스나기만 레이더에 잡히는 가운데 이를 보던 관제탑에서 세스나기의 위치를 B-25의 위치로 헷갈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짙은 안개 속에 B-25도 자신의 위치를 헷갈렸다. B-25는 원래 계획됐던 위치에서 약 3마일 가량 떨어진 이리호로 향했다. 하지만 세스나기는 호수에 없었고, 관제탑에선 두 비행기를 헷갈려 잘못 안내해 B-25가 가까운 뭍에서 약 7~9km나 떨어진 지점에 갔다.

것도 모른 채 스카이다이버들은 올바른 위치에 있다 착각해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이들은 지상 2,500피트(760m)에서 낙하산을 펼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육지가 아닌 호수 한 가운데에 착지했다. 상공의 추운 날씨에 대비해 두꺼운 옷을 입었던데다, 낙하산과 같이 물에 떨어지는 바람에 헤엄쳐 나오기가 힘들었다. 호수에 주둔 중이던 구조대는 사람 여러명이 갑자기 내려오는 것을 보고 바로 출동해 구조에 나섰다. 인근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선에서도 구조에 나서 보트 총 30대가 출동했다. 하지만 겨우 2명만 구조에 성공했다. 16명은 익사했다. 마지막 시신은 9월 4일이 되어서야 수습됐다.

사고는 스카이다이빙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편집]


사고 직후, 비행기는 원래 목표대로 지상 3만 피트 까지 올라가 나머지 스카이다이빙을 했다. 이때는 다행히 비행기가 육지 위에 있었고 사람들은 안전한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었다.

1968년과 1969년에 사망자를 기리기 위한 스카이다이빙 추모식이 있었다.

사건에 연루된 B-25는 이후에도 비행하다 1970년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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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PS는 군대에서만 사용되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이후에야 민간이 보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