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근

덤프버전 : r20210301



성명
전의근(全義根)
이명
김의근(金義根), 전이근(全利根), 김이근(金利根), 김이근(金二根)
생몰
1880년 ~ ?
출생지
함경북도 온성군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전의근은 1880년 생이며 함경북도 온성군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미국으로 이주했고, 19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립협회(共立協會) 회원, 1908년 노령(露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권업회(勸業會) 회원으로 활동하고, 1912년 권업회 간도지회(間島支會) 설립을 위해 중국 왕청현(汪淸縣) 나자구(羅子溝)로 파견되었으며, 1911년 8월 29일 블라디보스톡 한민학교(韓民學校)에서 개최된 국치일 행사에 참여하였다.

1913년 나자구에서 간민회(墾民會) 의사원(議事員),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훈춘대한국민회지회(琿春大韓國民會支會) 총회에 참가하였으며, '포수영(砲手營)' 결사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19년 3월 하순 김영학(金永學), 구춘선 등 12명과 함께 간도에서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를 배포하고 3월 28일경 약 1000여 명의 한인들이 모인 가운데 독립축하회를 거행하였다.

1920년에는 독군부(都督府) 총무국장(總務局長) 겸 의무국장(義務局長), 대한의사부(大韓議事部) 의사부장(議事部長)을 역임하였다. 대한의사부는 왕청현 춘경향(春耕鄕) 나자구에 근거를 둔 대한국민회 계통의 독립운동단체로 대원은 약 200명 정도였으며, 군총(軍銃) 약 160정, 탄약(彈藥) 1총당 약 50발, 권총 약 20정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1922년 나자구에서 지방자위단(地方自衛團) 총무, 1923년 고려혁명군후원회 고문, 1925년 3월에는 적기단(赤旗團) 행정부(行政部) 자위단(自衛團)의 간사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전의근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