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군필

덤프버전 : r20210301


파일:정군필.png
성명
정군필(鄭君弼)
이명
정원용(鄭元鎔)
생몰
1883년 12월 25일 ~ 1973년 1월 18일
출생지
경기도 남양도호부 수산면 사강동
(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사망지
경기도 화성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군필은 1883년 12월 25일 경기도 남양도호부 수산면 사강동(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8일 왕광연, 문상익, 홍명선, 김교창, 홍면(洪冕)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천여 명의 군중과 함께 사강리 뒷산에 모였다. 이때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코오조오(野口廣三)가 제지하려 했지만, 군중은 더욱 기세를 올리며 홍면 등 수십명이 면사무소로 달려가 면장과 면서기에게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강요했다.

오후 3시경, 노구치 코오조오 순사부장이 홍면 등을 강제로 체포해 주재소로 연행하려 했다. 이에 군중이 반발하자, 노구치 순사부장은 권총으로 홍면을 쐈다. 홍면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군중은 격노해 노구치에게 달려들었다. 노구치가 자전거를 타고 주재소 방향으로 도주하자, 정군필은 민용운, 안순원, 왕광현, 문상익, 김교창, 홍면선, 홍남후, 김명제(金命濟) 등 20여 명과 함께 노구치를 추격하여 노상에서 포위한 뒤 돌과 몽둥이로 구타해 살해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살인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화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3년 1월 1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정군필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