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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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수웅(鄭秀雄)
생몰
1864년 5월 24일 ~ ?
출생지
함경남도 갑산군 회린면 후지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수웅은 1864년 5월 24일 함경남도 갑산군 회린면 후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12일 갑산군 회린면 후지리 정국태(鄭國泰)의 집에서 천도교 전교사 김명수(金明洙)로부터 갑산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제안받자 적극 찬성했다. 이후 그는 정국태, 김명수와 함께 협의 끝에 거사일을 월 15일로 정했다. 그는 곧바로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15일에 갑산 교구당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을 호소하였다.

약속한 15일이 되자, 교구당에는 거사 시간도 되기 전 이미 200여 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오후 2시경 정수웅은 조병학(趙秉學)에게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하였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을 보자 군중의 만세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이어서 군중은 계속하여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며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급보를 받은 혜산진수비대(惠山鎭守備隊)는 장교 이하 12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일경과 합세하여 가까스로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날 밤부터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일제 경찰에 체포된 정수웅은 1919년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19년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정수웅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