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화(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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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추존 장종의 부마
흥은위(興恩尉)
정재화
鄭在和


파일:정재화초상화.jpg

흥은위 정재화 초상화
출생
1754년(영조 30)
사망
1790년(정조 14)
묘소
흥은위 정재화 묘[1]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도청길 82)
본관
연일 정씨
부모
부친 - 정인환(鄭麟煥)
모친 - 김성행(金省行)의 딸 안동 김씨
아내
청선공주
자녀
슬하 1남 2녀
장남 - 정의(鄭漪)
장녀 - 민치성(閔致成)의 처
차녀 - 홍혁(洪赫)의 처
봉호
흥은부위(興恩副尉) → 흥은위(興恩尉)
1. 개요
2. 생애
2.1. 사후
3. 가족관계
4. 기타
5. 대중매체



1. 개요[편집]


조선 사도세자사위이자 정조의 매제.

이후 사도세자가 장종(莊宗)으로 추존되면서 정재화의 아내 청선군주도 청선공주(淸璿公主)로 추봉되며 부마가 되었다.


2. 생애[편집]


1766년(영조 42), 사도세자의 막내딸 청선군주와 혼인하면서 흥은부위(興恩副尉)에 봉해졌다. 하지만 이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홍상성(洪相聖)이 정재화가 사람들을 풀어 감옥에 갇혀있던 죄수를 빼준 일을 고하여 직위를 빼앗겼다.

이후에도 조정의 허락 없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여러 문제를 일으키자 1783년(정조 7)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홍낙항(洪樂恒)이 상소를 올려 벼슬을 빼앗기고 벼슬아치 명부에서 지워졌다.


2.1. 사후[편집]


1899년(광무 3)에 부인인 청선군주가 청선공주(淸璿公主)로 추증될 때 본인도 흥은부위에서 흥은위로 추증되었다.


3. 가족관계[편집]


  • 본가(연일 정씨)
    • 현조부 : 정경연(鄭慶演) - 송강 정철의 증손
      • 고조부 : 정필(鄭泌)
        • 증조부 : 정구하(鄭龜河)
          • 조부 : 정유(鄭楺)
            • 부 : 정인환(鄭麟煥) - 기성부윤(箕城府尹)을 지냈다.


  • 배우자 / 자녀
    • 부인 : 청선공주
      • 장남 : 정의(鄭漪)
      • 장녀 : 민치성(閔致成)의 처
      • 차녀 : 홍혁(洪赫)의 처


4. 기타[편집]






5. 대중매체[편집]



  • 위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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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평군 향토유적 제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