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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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선전선동부장으로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으나 2005년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생애[편집]


1933년 5월 25일, 강원도 문천시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950년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했으며 1973년 로동신문 논설원실 실장으로 등장, 당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지도원, 부과장 및 과장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1990년 2월 중앙방송위원장까지 승진하면서 북한 방송계의 거물이 되었다.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에 선출되었다. 1991년 10월, 기자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 1991년 12월 조선로동당 6기 19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다. 1992년 4월 북한-기니 친선협회 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김일성 팔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92년 12월, 조선로동당 6기 20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였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최춘황과 함께 갖은 똥꼬쇼를 벌려 국가 붕괴를 막는데 공을 세웠으며 이 덕분에 김정일의 큰 신임을 얻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2000년 8월, 선전선동부장에 임명, 2001년 9월에 선전비서를 겸하면서 선전부문의 최고봉에 이르렀다. 2001년 1월, 김정일의 중국 순방, 2001년 8월, 김정일의 러시아 순방에 동행했으며 각종 주요 회담에도 계속 나타났다. 2003년 8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김정일을 수없이 수행하는 등 김정일의 최측근임을 과시했다.

하지만 2005년 10월, 당창건 60돌 경축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에 참석한 이후 소식이 두절되어 숙청설이 제기되었다. 2007년에는 정하철이 외국으로 망명했다는 소문이 북한 내부에 돌고 있으며 정하철에 대한 기록말살형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대해서 선전선동부의 권력을 질시한 조직지도부에서 2004년, 최춘황의 딸의 호화결혼식을 문제삼으며 반격을 시작했고 정하철을 정치사건에 연루시켜 정치범 수용소에 처넣는데 성공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외에는 2004년 경에 섣불리 고용희 우상화를 했던 것 때문에 김정일이 대노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던 중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리제강의 유고 <혁명대오의 순결성을 강화해나가시는 나날에>가 입수되면서 좀 더 자세한 정황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중앙방송위원회 직원들이 업무 중 술을 마시는 사건이 발생하자 2005년 6월, 김정일이 조직지도부에 중앙방송위원회와 정하철에 대한 검열을 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정하철이 중앙방송위원장 시절 방송위에 음주문화를 퍼뜨렸으며 자신은 많은 여자들과 치정관계를 맺고 '혁명자금'을 탕진했다는 것이 적발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손에 피부병이 있는 여자 2명을 김정일의 행사 참가자로 선발했다는 쪼잔한 죄목, 김정일 지침을 앉아서 전달한 불경죄 등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3. 참고문헌[편집]


  • 통일부 정보분석본부 정치사회분석팀, 북한의 주요인물 2006(서울: 통일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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