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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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군사
1.1. 조선 전기
1.2. 조선 중기
1.3. 조선 후기


1. 군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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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조선 전기[편집]


조선 전기의 군사 제도는 오위(五衛)·금군(禁軍)으로 대표되는 중앙군과 익군체제(翼軍體制)·진관체제(鎭管體制)로 대표되는 지방군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중앙군은 고려의 제도를 대부분 받아들여 십위체제(十衛體制)를 유지하다가,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사병을 혁파하고 군사 제도를 정비하여 1457년(세조 3년)에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지휘하의 오위제도(五衛制度)로 정착되었다. 오위는 의흥위(義興衛) - 중위, 용양위(龍驤衛) - 좌위, 호분위(虎賁衛) - 우위, 충좌위(忠佐衛) - 전위, 충무위(忠武衛) - 후위로 구성되어 있고, 각 위마다 5부(部)로 편성되고, 부마다 서울의 5부와 각 도의 진관군사가 소속되었다. 오위는 졸(卒) - 오(伍) - 대(隊) - 여(旅)의 조직으로, 1오는 5졸, 1대는 5오, 1여는 5대로 하는 5진법에 의하여 편성되었다.

또 다른 중앙군의 하나인 금군은 국왕을 직접 호위하는 군대로 오위에 속하지 않았고, 내금위(內禁衛)·겸사복(兼司僕)·우림위(羽林衛) 등으로 인원수는 적었으나 왕권 강화와 직결되어 필요에 의해 설치되고 법제화되었다.

지방군은 평안도·함경도를 제외한 곳에서 대체로 육수군(陸守軍)과 기선군(騎船軍)의 두 가지 형태가 있었다. 육수군은 다시 번상(番上)하여 시위하는 시위패(侍衛牌)와 지방의 여러 영(營)이나 진(鎭)에 부방하는 영진군(營鎭軍)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영진군은 각 도의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1]와 그 밑의 절제사(節制使)·첨절제사(僉節制使)가 지휘했다.

다른 지방군의 하나인 잡색군(雜色軍)은 영·진이 주로 해안 지대를 중심으로 설치되어 내륙 지방에 방어할 군사가 없어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향리·관노·무역백성(無役百姓)·공사천(公私賤) 등을 망라하여 편성한 것이다. 잡색군은 마병(馬兵)과 보병(步兵)으로 나누어 25인을 1대(隊)로 편성하여 수령이 지휘하도록 하였으나, 평상 시 군사 훈련에도 참가하지 않아 유사시에 대비하여 전국적 군사 조직 체계를 갖추었다는 데 의의가 있을 뿐이었다.[2] [3]

이러한 군사 조직은 1455년(세조 1년)에 진관 체제로 정비되었다. 먼저 전국적으로 내륙 지방에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주위의 여러 읍을 좌·우·중의 3익으로 분속시켜 군익도를 편성하는 한편 군익도체제가 불편한 곳에는 별도로 독진(獨鎭)을 두어 이원 체제로 운영하게 했다. 1458년(세조 4년)에는 행정 구역상의 도(道)와 혼동하기 쉽던 군익도의 조직을 주진(主鎭)·거진(巨鎭)·진(鎭)으로 재편하여 각 진의 독자성을 살리면서 군사 기지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하였다. 진관 체제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의 주진 아래 첨절제사(僉節制使)가 여러 진을 통할하는 몇 개의 거진을 두고, 여러 진의 절제도위(節制都尉)[4]·만호(萬戶) 등이 진을 중심으로 스스로 적을 방어하는 책임을 지는 자전자수(自戰自守)의 체제를 가지게 되었다. 1464년에는 번상군(番上軍)·영진군·익군 등으로 통일되지 않았던 명칭을 정병(正兵)으로 통일하여 균일한 국방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정병 외에도 봉족, 혹은 보인이라는 역종이 있었는데 이는 군대에 나가지 않고 대신 물품[5]을 내거나 일을 도와주어 군대에 나간 정병 집안의 생계를 돕는 역할을 하였다.


1.2. 조선 중기[편집]


16세기에 이르러 진관 체제는 진관에 속한 정병이 군역과 요역을 함께 지면서 각종 폐단이 발생하자 포를 내고 군역을 지지 않는 방군수포(放軍收布)로 변질되고, 외세의 침입을 각 진관의 소수 병력으로 자전자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조정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면 도내의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합심 방어하는 제승방략체제(制勝方略體制)를 강구하게 되었다. 제승방략 체제는 많은 군사력을 동원하여 적을 막는 총력방어 태세로서의 이점이 있으나, 후방 지역은 군사가 없어 방어선이 무너지면 적을 막을 방도가 없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왜란 때 이일상주 전투, 신립탄금대 전투에서 패전한 뒤 일본군이 한성으로 쉽게 진격할 수 있게 된 원인 중 하나를 제공했다.[6]


1.3. 조선 후기[편집]


조선 후기의 군사 제도는 중앙의 오군영(五軍營)과 지방의 속오군(束伍軍) 체제로 특징 지을 수 있다. 오군영은 조선 후기에 수도 및 외곽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훈련도감(訓鍊都監)·어영청(御營廳)·금위영(禁衛營)·총융청(摠戎廳)·수어청(守禦廳) 등이다.[7]

훈련도감은 1598년(선조 31년) 10월 서울 수복 후 포수(砲手)[8]·살수(殺手)[9]·사수(射手)[10]의 삼수병(三手兵)을 중심으로 기민(飢民) 구제와 정병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임시 군영이었으나, 왜란 후에는 오위를 대신하여 후기 중앙군의 핵심 군대로 자리 잡았다. 훈련과 조직은 명나라 척계광의 기효신서(紀效新書)의 속오법(束伍法)에 따라 개혁하여 과거의 대부대 단위 전투 형태에서 초단위(哨單位)의 소부대 단위 전투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속오법은 부(部)[11] - 사(司)[12] - 초(哨)[13]기(旗)[14] - 대(隊)[15] - 오(伍)[16]로 연결되는 편제로, 대개 120인 ~ 125인의 병력이 군사 조직의 기본 단위인 1초를 이루었다. 다른 군영과는 달리 정기적으로 급료를 받는 받는 직업 군인 위주로 편성되었다.

어영청은 번상하는 향군으로 편제된 중앙군으로 인조반정 뒤 후금에 대한 대비책으로 설치가 논의되다 1624년(인조 2년) 이괄의 난을 계기로 중앙군으로 정착되었고, 1652년(효종 3년) 어영청으로 개편되었다. 금위영은 1682년(숙종 8년) 병조에 직속되어 있었던 정초청(精抄廳)의 정초군과 훈련 도감에 속하여 있던 훈련별대(訓鍊別隊)를 합쳐, 6도 향군을 근간으로 조직·편제되었다. 총융청은 1624년 이괄의 난 이후 경기도 일대의 방어가 중요하게 되어 경기도 내의 정군·속오군(束伍軍)·별마대군(別馬隊軍)으로 조직·편제되었고, 군사는 2만여 명에 달하였다.[17] 수어청은 1626년에 남한 산성을 개축하고, 이를 중심으로 경기도 남방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국왕의 친위군은 호위청(扈衛廳)[18]과 용호영(龍虎營)으로 정비되었다. 호위청은 1623년 인조반정을 주도한 김류(金瑬)·이귀(李貴) 등이 반정에 사용한 사모군(私募軍)을 거의 그대로 궁궐 숙위에 충당함으로써 설치되었다. 용호영은 조선 전기의 금군을 모아놓은 금군청(禁軍廳)을 1755년(영조 31년)에 개칭한 것이다.[19]

조선 후기 지방 군사 제도의 두드러진 변화는 속오군 조직의 등장과 영장 제도의 설치였다. 속오군은 훈련 도감과 같이 왜란 시 임시로 설치된, 양반에서 공·사천에 이르는 총동원 체제로 서 지방의 핵심군이 되었지만 쌍령 전투로 대표되는 운영의 미숙함과 연이은 패배로 붕괴되었다.[20] 이러한 속오군은 병자호란 후 양(良)·천(賤)으로 편제되어 본역 외에 속오역을 지는 일신양역(一身兩役)의 폐해가 발생하였고, 1729년(영조 5년)을 전후하여 천례화(賤隷化)되었으며, 말기에는 수포(收布)·수세군(收稅軍)으로 존재하여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영장제도(營將制度)는 문신 수령이 가지고 있던 군사권을 무신이 담당하도록 한 것으로 1627년(인조 5년)에 후금에 대비해 속오군을 강화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그러나 수령의 반발·재정 부족·유능한 무장 결핍 등의 이유로 병자호란을 계기로 문신 수령 중심의 훈련 체제로 바뀌었다. 이밖에도 해안과 내륙 지방의 요지에 방어영(防禦營)을 설치하여 방어사가 집중적으로 지키게 하였다. 또한 산성의 중요성이 높아져 별장을 배치했으며, 해안·강안의 요해처에 도(渡)·진(津)을 설치하여 방어망을 구축했다.
[1] 이후 병마절도사로 명칭이 바뀐다.[2] 이는 임진왜란 이후 도입된 속오군과 유사하다.[3] 다만 이홍두의 '朝鮮前期의 雜色軍'(1999)에 따르면 양계 지역이나 제주도 등 여진족이나 왜구 등의 침입이 잦은 외방 지역에서는 잡색군의 군사적 역할도 중요했다고 한다.[4] 거의 각 현의 현감이 겸임하였다.[5] 보통 베나 무명을 내었다고 한다.[6] 그러나 제승방략 체제에 대해 많은 이견이 나오고 있다. 이일이 작성한 북도 제승방략 체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무작정 지방군을 한군데 결집시키는 것이 아니다.[7] 이 중 도성의 경비를 맡아보았던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을 삼군문(三軍門)이라 하였다.[8] 조총을 사용하는 군종[9] 창칼 등 근접 무기를 다루는 군종[10] 활을 쏘는 군종[11] 현재의 연대급으로, 지휘관은 천총이라고 했다.[12] 현재의 대대급으로, 지휘관은 파총이라고 했다.[13] 현재의 중대급으로, 지휘관은 초관이라고 했다.[14] 현재의 소대급으로, 지휘관은 기총이라고 했다.[15] 현재의 분대급으로, 지휘관은 대정이라고 했다.[16] 다섯명으로 이루어진 편제로, 지휘관을 오장이라고 했다.[17] 그러나 이러한 숫자는 군포를 납부하는 인원으로, 이들 모두가 군 복무를 했을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18] 350명의 호위군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19] 금군청을 내삼청(內三廳)이라고도 하였다. 금군청 예하에는 내금위 300명, 우림위 200명, 겸사복 200명이 있었다.[20] 병자호란 이후에는 조선 국방 체계는 모병제를 중심으로 한 중앙군(오군영)으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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