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열승(야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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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열승.jpg
배우
차룡
등장 에피소드
62~122화[1]
격투 스타일
발차기, 연장질

1. 개요
2. 작중 행적
3. 전투력
4. 명대사
6. 여담


1. 개요[편집]


실존인물 조열승을 모티브로 한 야인시대의 등장인물이다. 배우 차룡이 연기하였다. 실존인물 조열승의 출생지는 김천시 봉산면이라는 풍문만 있을 뿐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배우 차룡이 전남 목포 출신으로 서남 방언에 능하다는 점을 반영해 작중에선 전라도 출신으로 설정되었다. 토박이만이 할 수 있는 걸쭉한 사투리 연기가 일품.[2]


2. 작중 행적[편집]


62화에서 첫등장. 처음 등장은 동대문 지게꾼 왕초로 나오며 임화수와 같이 극중 '장 사장'이라는 인물을 협박해 점포를 날로 먹으려고 나온다. 그리하여 장 사장의 요청을 받은 이정재와 1:1로 맞붙어 초반에는 대등하게 싸웠으나 점차 밀리다 크게 무너지며 패배.[3] 결국 이정재에게 항복하고 점포를 포기한다. 본인 말로는 싸워서 진건 이정재를 상대로 처음이라고 한다. 싸우기 전 카페에서 이정재에게 "당신은 상대를 잘못 골라부렀구먼, 나 동대문 지게꾼 왕초 조열승이오."라며 도발했지만 정작 이정재와 붙었을 때는 오히려 일방적으로 얻어 터지면서 "한 가락 하는구만. 괜찮은 실력이야.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라고 그대로 되돌려받으며 완벽하게 굴욕을 당하는데 그래도 이정재와 1분 넘게 합을 주고받은건 나름 대우해준 것 같다. 이후 이정재를 형님처럼 모시게 되었다. 어쨌든 동대문 파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정재랑 맞장 뜬 경력이 있기에 실력에 비해 취급이 매우 좋다. 그 자리에 있던 임화수도 형님으로 모시기에 실권이 아니라 자리로 따지면 동대문패 1.5인자이다.[4]

6.25 전쟁 때는 출연이 없다가, 동대문파가 휴전 후 서울로 막 올라왔을 때 재등장하는데 잠시 고향에 가있었다고 한다. 이천내지 인접 지역 출신들이 노른자위를 독차지하는 동대문패에서 조열승은 호남 출신이라는 불리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전쟁 이전부터 이정재 - 임화수와 알고 지내던 사이에 연배도 높아서 바로 김기홍과 나란히 고문으로 취임해 김기홍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같은 이천 외 출신인 김동진이 철저하게 차별받은 것과는 대조된다. 김기홍이 조직을 떠난 후로는 고문직을 단독으로 수행하게 되어 극중 대사와 비중이 늘어났다.

다만 순수한 주먹패에 돌쇠처럼 우직한 성품이라 김기홍처럼 조직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보다는 이정재나 임화수, 김기홍이 결정하면 결정하는 데로 충실하게 따르는 쪽이었다. 임화수, 이석재보다 호전성이 적어서 황금마차 습격사건때 명동과의 충돌을 꺼리는 이정재의 지시를 군말없이 따랐다.

이정재가 동대문파 회장에서 물러날 때 이석재, 이억일과 더불어 일선에서 은퇴한다.[5] 이석재와 함께 초야에 칩거한 이정재의 집을 방문하거나 고대생 습격 사건을 터트린 임화수에게 가라는 이정재의 명령을 받고 직접 찾아가 따지는 장면이 몇 번 묘사된다. 이정재가 잡혀간 뒤론 이석재, 이억일과 함께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3. 전투력[편집]


상술되어있듯 조열승의 1vs1 싸움씬은 이정재와의 결투가 유일하다. 그 이후론 시라소니 린치사건때 잠깐 끼어들다 한두방에 거하게 털리거나 흔히 '시라소니 복수전' 이라고 불리는, 린치 사건 후 회복한 시라소니가 종로회관 앞에서 회식을 마치고 나온 동대문패와의 만남서 각목 들고 뒷치기 하려다 박치기 한 방에 또 털리는(..) 모습이 다다. 하지만 시라소니를 상대로 중간보스나 오야붕급 주먹들 아닌 이상 비벼 보기는 커녕 전부 한 두방에 털렸다는걸 감안하면 이 점은 논외로 하고 조열승의 진짜 전투력을 논하려면 유일한 1대1인 이정재와의 결투를 두고 논해 봐야 하는데 상술되어 있듯이 잠시나마 대등하다 바로 복날 개 잡듯 털린다. 하지만 이 '잠시나마 대등했다' 라는 말에 유의해서 생각해 보면 이정재를 상대로 '잠시나마 대등했다' 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인물이 명동에서는 황병관, 오상사, 같은 동대문에선 유지광 정도만이 기대해 볼 만하다.

독사가 김두한과 시라소니를 상대로 순삭 당했던 걸 감안하면 조열승과의 간접비교가 더욱 쉬워진다. 김두한과 시라소니보다 약소 열세인 이정재를 상대로 28합을 나눴다는 건 최소 이억일 급은 능가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6] 홍만길과의 비교도 애매한 것이, 홍만길은 시라소니를 상대로 도꾸야마보다야 더 버티긴 했지만 5합밖에 나누지 못하고 4방만에 나가 떨어졌다. 아무리 시라소니가 이정재보다 한 수 위라고 해도 그 차이가 크지는 않을진대, 그런 이정재를 상대로 버틴 걸 보면 홍만길보다는 조열승이 좀 더 강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이정재와의 결투 씬이 다인지라 정확한 판단은 불가하지만 위의 내용들을 토대로 추측해 본다면 홍만길 초과, 이석재 미만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시라소니와의 대결은 설정 오류일지도,,

가장 결정적으로 조열승 또한 김동진과 마찬가지로 서울 내 큰 조직의 오야붕 출신이며, 서로에 대한 평가 또한 김동진은 조열승을 주먹세계에서 만만찮은 인물이라고 평했고, 조열승은 김동진을 독종이라고 평했으니 동대문에서 김동진, 이석재 다음가는 실력자일 가능성이 있다.


4. 명대사[편집]


어이, 가만히 봉께 주먹 쪼까 쓰는 모양인디, 상대를 영 잘못 골라부렀구먼. 들어오면서 아들 봤겠지? 나는 시끄러운거 좋아 안해부러. 뭔 말인지 알겄는가?


아 염병허고 자빠졌네.


나으가 앞으로 형님으로 모셔볼라요. 그 말 전할라고 왔소.[7]


이런 쌍까지가!![8]


와~따! 나 저렇게 징그러운 상대는 처음 봐부렀다 처음 봐부렀어![9]


시라소니 아니여??!!


5. 야인시대 합성물에서[편집]


조열승도 합성물에 잘 안 나온다. 나오지 않는 이유는 사투리 조교 때문.


6. 여담[편집]


실제 인물 조열승이 이정재 실각 이후에도 주먹계에서 손을 씻지 못했다가 혁명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몇 년 후 석방된 것을 생각하면 극 중 대우가 나름대로 좋은 편이다. 조열승에게 도움을 받은 인연이 있었던 이천 출신의 제보자들에 따르면 담당 배우인 차룡은 실제 조열승과 매우 닮았다고 한다. 조열승 문서의 조열승 사진만 봐도 배우 차룡은 거의 조병옥을 맡은 김학철의 싱크로율에 버금가는 수준일 정도로 조열승과 매우 닮았다.
담당 배우 차룡은 액션배우로 현재 유튜브 채널도 운영중이다.# 실제로도 태권도 4단, 쿵푸 5단, 검도 3단, 프로권법 5단의 실력자로 여의도 한복판에서 50대 1로 혈투를 벌였던 일화로 유명한 액션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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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6화에선 미등장.[2]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땐 서울 표준 말투였다고 한다. 서남 방언으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OK사인이 나와 촬영을 했는데 걸쭉한 사투리톤으로 많지 않은 등장에도 시청자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캐릭터가 되었다. 제작진이 이를 흡족하게 여겨 점점 비중이 늘어나 동대문 사단 고문으로 까지 승진했다고 한다.[3] 초반에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몰아붙였으나 정작 유효타는 없었고 오히려 씨름의 목감아치기에 넘어진 것을 계기로 일방적인 구타를 당해버린다.[4] 실권만 따지면 동대문 조직을 만들고 이정재를 옹립한 임화수와 김기홍이 함께 1.5~2인자였고 김기홍이 떠난 이후엔 임화수가 유일한 2인자였다.[5] 이 때 이정재의 뜻을 임화수에게 전달하는데, 임화수가 유지광과 그 부하들을 우려하며 본인이 조직을 물려받는 걸 딱히 마땅찮아하자 조열승은 오히려 화랑동지회는 딱히 결속력이 단단하지 않다며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6] 맨발의 대장은 이정재를 상대로 2합 나눴다.[7] 경찰서까지 찾아와선 난데없이 이정재에게 무릎을 꿇고 간청한다.[8] 야인시대 97회 시라소니 린치 사건 당시 적들을 궤멸시키는 시라소니를 지켜보다가 조열승이 덤벼들며 외친 한 마디이다. 싸가지를 외치려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들리는 발음은 쌍까지이다.[9] 위와 같은 화에서 시라소니가 린치당한 뒤 말한 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