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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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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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태조 17년(934), 태조가 직접 운주(運州)를 치려 할 적에 유금필을 우장군(右將軍)으로 삼았다. [중략] 마침내 견훤이 아직 진영을 갖추지 못한 틈을 타 (유금필이) 날랜 기병 수천 명으로 돌격하였다. 3,000여 명을 베거나 사로잡았고, 술사 종훈(宗訓), 의사 훈겸(訓謙), 용장(勇將) 상달(尙達)·최필(崔弼)을 포로로 잡았다.

《고려사》 유금필 열전의 운주성 전투 기사.


후백제의 장수. 934년의 운주성 전투에서 유금필의 기습을 받고 군사 종훈, 의원 훈겸, 장군 상달과 함께 고려군에게 포로로 사로잡혔다.

실제 역사에서 최필의 기록은 같은 후백제 장수 애술과 더불어 단 한 줄 밖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적국인 고려측의 사서에서 상달과 함께 무려 용장(勇將)이라는 칭호를 달고 나온 점을 보면 당대에 후백제측 장수들 중에서도 상당히 이름을 날린 것으로 보인다.

2. 태조 왕건[편집]


파일:최필.jpg
파일:지훤신덕최필.jpg[2]
파일:최필박영규신덕.jpg[3]
배우는 한정국.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후백제군의 2열을 책임지는 정도로 묘사된다.

애술, 신덕과 더불어 중반부쯤에 등장하는데 97회 영산강 전투에서 유금필과 일기토에서 유금필을 밀어붙이는 기염을 보인다.[4][5] 이후 제2차 대야성 전투에서 선두를 맡아 공성전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검양검이 대야성을 돌파하고 내성으로 진격하다가 장수 추허조를 잃고 패퇴하여 분개한 견훤에게 매를 맞고 죽을 위기에까지 처하자 급하게 달려와 견훤을 말리고 자신 또한 패배의 장본인이라며 차라리 자신을 베어달라는 인상깊고 책임감 있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후 비중이 잠시 후퇴하다가 운주 전투에서 등창과 추위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 견훤을 마차에 태우고 운송하다가 전의성주 이치의 급습을 받아 고난을 겪게된다. 이때 견훤을 끝까지 호위하며 항전하다가 이치에게 결국 죽임을 당한다. 최필이 고려군의 시선을 끌 때 견훤은 다른 마차를 타고 급히 도망가고 있었는데 이때 견훤이 최필이 죽는 모습을 보며 오열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정확히는 이치가 아닌 난전 중에 이치의 수하부장에게 죽는다. 이것으로 태조 왕건의 무력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은 덤. [6] 그것도 단칼에. 실제 역사에서는 위의 개요와 같이 군사 종훈, 의원 훈겸과 함께 고려군에 포로로 잡히지만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자 자신의 상관인 견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을 잃는 다소 영웅적인 모습으로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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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운주성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는것으로 나오나 실제로 이때 최필이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2] 오프닝에서의 지훤, 신덕, 최필 맨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바로 배우 한정국이 맡은 최필이다.[3] 후반부 오프닝에서의 최필, 박영규, 신덕 맨 왼쪽에 있는 사람이 최필이다[4] 단, 유금필은 갑작스런 복병을 만나 당황하여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된 상태였고 왼쪽 어깨에 화살을 맞고 말에서 굴러떨어져 부상까지 입어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반면, 최필은 미리 복병을 쳐놓고 여유있게 기다리던 입장이어서 둘의 상태는 극과극으로 차이가 많이 났다.[5] 물론 유금필이 왼쪽 어깨에 화살을 맞는 부상이라는 설정이 깔렸으나 태조 왕건에서 유금필을 밀어붙인 백제 장수는 최필이 유일하다.[6] 유금필 >= 최필 의 설정이 무명 부장 > 최필 로 설정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