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라 나오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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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타이라 나오유키
((たいら 直行(なおゆき)
출생
1963년 12월 15일 (60세)
미야기현 센다이시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거주지
치바현 후나바시시
입식 전적
13승 8승 5패 (6KO)
종합격투기 전적
3전 3승 무패

3SUB

없음
체격
175cm / 80kg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
2. 전적
3. 커리어
4. 파이팅 스타일
5. 여담



1. 개요[편집]


일본의 전 종합격투기선수.


2. 전적[편집]


※ 입식

  • 주요 승: 카와카미 이치히로, 마이크 부시


※ 종합격투기

  • 주요 승: 얀 로물더, 모리스 트래비스, 미나토 타로

  • 주요 패: 없음


3. 커리어[편집]


맞벌이부부에게서 태어났고 어린시절 할머니밑에서 성장했다. 어린시절 브루스 리의 영향을 받았고 중학교시절 프로레슬링의 꿈을 꿨다. 프로레슬링 체육관이 없어 근처 가라테 도장에 입문했다. 그러다가 15세때 아마추어 복싱 전적이 있는 친척의 추천으로 복싱에도 입문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도쿄도 치요다구로 상경해 라멘집에서 월 2만엔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복싱을 수련했다. 고등학교를 재입학후 복싱부에 입부했다. 한편으로 가라테도 손을 놓지 않아서 가라테 대회에도 출전해 감투상을 받았다.

복싱과 보디빌딩을 하면서 몸을 키워나갔고 이케부쿠로역의 카페에서 새벽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요리 담당이였고 처음엔 만드는 메뉴가 적었으나 가게의 분위기가 좋았고 배우는 속도도 빨라 가게의 모든 메뉴를 다 만들었다고 한다.

프로레슬링 선수의 꿈을 갖고 있어 슈토에서 아마추어 경기를 치렀고 1984년 강사로 채용되었다. 이이다바시의 아파트에서 산겐자야로 이사했고 경제적으로도 꽤 여유로워졌다. 여러 슈토대회에서 우승했지만 프로격투가로 진로를 변경했고 당시 슈토는 프로경기가 없었기에[1] 슛복싱으로 전향해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에 슈토를 떠나 시저짐으로 이적했다.

1987년 프로 슛복싱 데뷔전을 치르고 슛복싱뿐만 아니라 해외의 복싱, 무에타이 선수들과 대결을 치르고 심지어 해외의 체육관에서도 무사수련을 떠나 기량을 키웠다.

1992년 링스를 통해 종합격투기에도 도전했고 좋은 성적을 냈다. 이후 미국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칼슨 그레이시에게 주짓수를 수련했다. 이후 발리투도에 출전해 향상된 그라운드 실력을 보이며 여러번 승리를 거뒀다.

이후로도 프로레슬링 선수로도 활약하다가 2002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4. 파이팅 스타일[편집]


가라테로 시작해 복싱, 슛파이팅, 슛복싱, 무에타이, 킥복싱,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현역시절 섭렵했으며 커리어가 흐를수록 기술이 발전되는 모습을 보인 선수였다. 주 패턴은 킥을 뿌리다가 상대가 들어오면 스피닝 공격으로 받아치는 패턴을 주로 활용했다.


5. 여담[편집]


한마 바키의 모티브가 된 선수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나서도 타 무술 수련에 적극적인데 중국의 태극권과 고무술도 수련했다.

초창기 슛복싱시절 물세를 아끼려고 땀이 나면 수건에만 의존하고 로드워크도 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하던 점장이 필요하면 씻어도 된다고 허락하고 샤워를 할수가 있었다.

일본의 주짓수 선수이자 현 일본 브라질리언주짓수 연맹이사를 맡고 있는 하야카와 미츠요시의 주짓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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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3년에 프로경기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