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켄 하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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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셀주크 튀르크 시대의 왕비
2. 호라즘 왕조의 제6대 술탄 알라 웃 딘 테키시의 왕비
2.1. 개요
2.2. 대중매체에서


1. 셀주크 튀르크 시대의 왕비[편집]




2. 호라즘 왕조의 제6대 술탄 알라 웃 딘 테키시의 왕비[편집]



2.1. 개요[편집]


1148 ~ 1233

일명 "투르크의 여왕"이란 뜻의 투르켄 하툰 (페르시아어: ترکان خاتون)이라고도 불렸다. 알라 웃 딘 무함마드, 즉 무함마드(모함마드) 2세의 어머니였다. 유목 부족이었던 킵차크계 캉그리족 출신이었다. 남편 알라 웃 딘 테키시가 죽은 뒤에도 캉그리족의 족장을 겸하며 실권을 행사했다.

무함마드 2세와 인도계 첩의 아들인 잘랄 웃 딘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자 그를 견제하였다. 오트라르의 아미르 이날축이 칭기즈칸이 보낸 몽골 사신단을 죽이고도 처벌을 받지 않은 데는 이 사람의 입김도 작용했는데 이날축이 테르켄 하툰의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호라즘이 멸망하자, 몽골로 끌려가 고령의 나이로 13년간 하녀 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했다.


2.2. 대중매체에서[편집]


2005년, KBS에서 수입해 방영한 칭기즈 칸에서는 타르겐 태후로 나오는데, 호라즘 멸망의 계기를 만든 인물로 그려진다. 더빙 성우는 성선녀. 몽골 상인들을 살해하고 재물을 강탈한 하이얼 칸(이날축)[1]은 태후의 친척으로 나오는데, 태후는 하이얼 칸에게 보석들을 진상받고는 그를 옹호해주며 결과적으로 호라즘이 외교적 대참사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할 기회를 날려버린다. 호라즘이 무너질 때는 무함마드 2세에게 찾아가 그의 뺨을 때리면서 무능한 아들이라고 호되게 질타하더니, 다시금 왕족들을 이끌고 요새로 들어가버린다. 몽골군의 포위로 요새에 물이 떨어졌을 때 상황을 알면서도 땡깡을 부리질 않나, 몽골군에 항복한 이후 물이 들어오자 성을 지키느라 고군분투 했던 병사들을 물리치고 왕족들이 먼저 물을 마셔야 한다고 일갈하는 모습 등에서 볼 때 그다지 존경할만한 왕실의 여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2] 이후 공주, 왕비들과 함께 칭기즈칸에게 끌려갔는데 이 자리에서 호라즘 왕족 여인들이 호라즘이 맞은 재앙을 놓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3] 오드아이 고양이를 안고 다니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 오드아이 고양이는 쿨란이 관심을 보였는데, 자존심을 내세우던 태후에게 공손하게 다가가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한마리 줄 수 있겠냐'고 한다. 그리고 칭기즈 칸이 태후에게 호라즘의 왕족들이 우르겐치에서 자신의 왕자들의 공격을 잘 방비하고 있다는 것과, 잘랄 웃딘이 8만 명의 군대를 모아 제베와 수부타이가 공략한 성들을 다시 되찾는 등 자신에게 용케 잘 저항하고 있다는 얘기를 가벼운 위로의 의도로 전하자, 태후는 "그런 기쁜 소식을 나에게 전해주어 고맙다" 라고 하며 울먹인다.[4] 호라즘이 건재할 때는 잘랄 웃딘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괄시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왕국이 멸망하고 나서야 비로소 손자인 잘랄 웃딘의 능력을 인정하게 되는 때늦은 개심의 모습을 보인 셈. 이미 늦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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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이얼 칸'은 이날축의 다른 칭호인 '가이르 칸(Ghayir-Khan)'을 드라마 제작국인 중국 식으로 표기한 '海儿汗'의 발음을 따라간 표기로 보인다.[2] 그리고 몽골군은 좀 전까지 적이었던 호라즘 병사들이 물을 마시는건 터치하지 않았지만 왕자들은 모두 학살했다.[3] 그러자 분노한 칭기즈 칸의 아들이 칼을 뽑아 죽이려 하자, "내가 죽으면 너는 내 손자 잘랄 웃딘에게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예전에는 그렇게 박대했었으나 태도가 바뀌었다..[4] 물론, 칭기즈 칸은 바로 덧붙여서 "나쁜 소식도 있는데, 내가 직접 사마르칸트로 출정해 잘랄 웃딘을 추격할 것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