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니(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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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서휘, 자넷, 보람

2000년 7월 여름,[1] 정규 1집 ‘First Of All TrINitY’[2]를 발매하며 데뷔한 3인조 걸그룹. 리더이자 비쥬얼 센터였던 서휘[3], 메인보컬 보람[4], 해외파 막내 래퍼 자넷[5]으로 구성되었으며 타이틀곡은 화려한 현악기 선율이 돋보이는 댄스곡 <뭐야>[6]로 활동했었다.

사실 이 팀은 탄생부터 화려했다. 당시 조성모터보[7]의 소속사 GM기획 대표 김광수김정민, 최진영(스카이)이 소속된 두손기획이 서로 의기투합해 걸그룹을 만들어보자는 합작 프로젝트 제휴[8]로 탄생된 걸그룹이 바로 티니였다. 약 10년 뒤에 나오게 되는 합작 프로젝트 걸그룹 헬로비너스, 라붐 등의 조상격인 셈. 음반 역시 대형 유통사였던 대영A/V가 유통하고 앨범의 Thanks To에는 온갖 소속사의 사장들 이름이 나열되어 있어 얼마나 많은 자본과 인맥이 스며들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앨범에 참여한 작사/작곡가들의 인지도도 화려했으며 안무는 짝꿍 1기 출신이자 듀스를 만든 김동구 뮤즈 단장이 제작했다.

필리핀에서 찍은 뮤직비디오는 ‘구속과 자유’를 테마로 세 명의 수녀가 신앙 생활을 하다 자유가 그리워 노래 엔딩 부분에선 머리에 쓴 베일을 벗고 태평양으로 뛰쳐나가며 일탈하는 결말로 끝이 난다. 방송마다 틀어댄 뮤비 홍보와 수녀라는 독특한 소재 덕택에 각인된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티니가 데뷔한 2000년 여름 가요계는 1999년부터 엄청난 대형 가수들이 연이어 1위를 돌려먹기하는 시즌이었기에 대형 기획사의 합작이라며 그렇게 온갖 예능, 음악방송에 많이 꽂았어도 티니는 용두사미처럼 망하게 된다.

김광수는 자신이 제작하고 매니지먼트 방향성에 직접 손댔던 걸그룹임에도 너무 망해버려 창피해서 그런지 이 팀은 거의 언급하지 않지만[9] 사실 티니 활동 당시를 되짚어보자면 GM기획(현 MBK엔터테인먼트) 특유의 삽질 매니지먼트의 흔적이 이곳 저곳 보인다.


데뷔곡 <뭐야>

예시로는 <뭐야> 활동 후반부에는 메인보컬 보람의 하이라이트 파트에서 센터 멤버인 서휘를 앞세워 립싱크를 시킨다. 이런 특정 멤버 띄워주기 방식은 팡수 사장의 오랜 필살기.[10] 게다가 멤버 서휘가 활동 도중 모친상을 당했는데, 그로 인해 팀 탈퇴를 고민 중이고 자세한 내막은 SBS 한밤의 TV연예에서 심경을 밝히겠다며 일개 무명 신인그룹이 톱스타처럼 지상파 단독 기자회견 하는듯한 반감을 사는 언플 공세를 펼치기도 했으나 대중들의 관심도는 제로였다.

당시 인기 톱가수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연이어 컴백 중이라 화제거리가 넘쳐나는데 굳이 신인의 어처구니 없는 노이즈마케팅에 관심이 쏠리지 않았기 때문. ‘걸그룹’, ‘댄스 그룹’ 자체도 인기있는 몇 팀 제외하고는 열광하기도 힘들었던게 대부분 음악성 운운대며 온라인에서 ‘붕어 가수’라며 조롱이 많았고 지금처럼 대놓고 소비하기도 뭣한 분위기도 한 몫했다. 대부분 성인이라면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CD까지 사며 소비하진 않았다. 10대 청소년이나 군인들은 그나마 시선에서 자유로웠던 편.


후속곡 <True Love>[11]

각종 예능에는 많이 나왔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같은 시기 데뷔해 라이벌로 꼽히던 SZ보다도 약한 인지도를 누렸다. SZ도 결과적으론 실패한 팀이지만 그래도 음악방송엔 티니보다 더 많이 나왔고 길보드 차트나 나이트 클럽, 댄스 공연, 축제 등에서 많이 소비됐지만 티니의 음악 방향성은 그쪽 타겟도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서 딱히 소비될 수가 없었다.그저 숨듣 후속곡은 겨울 시즌을 겨냥한 뉴 잭 스윙 풍의 댄스곡 <트루 러브>로 활동했으나 이 역시 큰 반향은 일으키지 못하며 2000년 12월을 끝으로 정규 1집 활동은 종료된다.

그리고 갑자기 뜬금없이 2001년 1월 새해 벽두부터 김광수 사장 특유의 언플이 또 다시 시작되고야 말았다. 멤버 서휘가 홍콩 연예계를 조지고 있다는 언플을 한 것. 서휘가 홍콩 톱스타(?)가 되었다는 언플은 2월 내내 두 달여 걸쳐 보도하며 지속됐다.

실제 기사로 쓰인걸 몇개 나열해보자면 “티니 서휘, '홍콩에서 나 모르면 간첩'”이라던지누구세요... “홍콩스타 여명-티니 서휘 열애설 모락모락”, “(전략)서휘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광고가 홍콩 시내 이곳저곳에 부착되면서 장바이쯔 등 유명배우 못지 않은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서휘는 열애설 해명 요구에 '여명은 한국 연예인들에게 친절하기로 소문이 났잖아요. 그 정도로만 이해해 주세요. 개인적으로 여명의 팬이에요'실제로 서휘가 말한건지도 팡수라 믿기힘든라며 열애설을 일단 부인하고 있다”, “서휘는 홍콩 내에서 한국의 톱스타로 인정받고 있다.” 등 마치 씨야 시절 남규리를 이용해 황당하고 허무맹랑하게 반감사는 언플에 발동을 건 것. 이 어처구니 없는 언플 방식은 씨야 외에 티아라 때도 써먹느라 팀의 많은 안티 생성에 영향을 주었으나 티니 경우는 “서휘가 누군데?”, “서휘가 진짜 홍콩에서 유명한가?”정도의 미미한 반응에 그치며 일단락 됐다.

티니의 활동 이후 ‘티니 서휘’로 홍콩 진출 언플을 과하게 때리며 케이블 음악채널에서 VJ로 활동시키며 개인 푸쉬를 해줬기에 2001년에는 티니의 정규 2집이 나오는건가 추측했었으나 두 회사는 이때부터 각각 조성모의 소속사 이탈, 터보의 해체, 김정민, 최진영(스카이)의 하락세 등 캐시카우들이 승승장구 하던 합작 제휴를 맺었던 당시와는 다르게 두 회사의 재정이 상당히 안 좋게 흘러갔으므로 티니를 지속할 여건이 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끝내 2집은 나오지 않은채로 무산되었고 결국 이들의 1집 앨범은 마지막 앨범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팀의 시작부터 해체 직전까지 푸쉬하던 비쥬얼 멤버 ‘서휘’ 역시 이 이후로 두문불출하며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췄고 언플했던 홍콩에서의 활동도 없었다. 이렇다 할 푸쉬를 제대로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나머지 두 멤버도 역시 연예계에서는 다시 볼 수 없었다. 당연히 이들 3명 모두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유튜브의 티니 무대 영상에 댓글로 근황을 알린 친척에 의하면 아직까지 티니와 서희(서휘)를 기억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고 대신 말을 전하며 일찍 결혼해 현재는 고교생 딸을 둔 어머니가 되었다고 근황을 밝혔다.

음원사이트에서도 이 앨범이 서비스되지 못하고 있다. 두 회사가 제휴해 출정한 ‘마인 엔터테인먼트’가 사실상 공중분해 됐고 모기업 중 하나인 두손기획도 현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서비스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음반 유통사 대영A/V의 경우 이 유통사로 유통됐던 90~00년대 음반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다수 못하고 있거나 저작권 찾아오는데만 몇년이 걸리며 힘겹게 얽혀있기도 하고 그나마의 희망인 GM기획 역시 실권자 김광수 자체는 계속 존재하지만 중간에 엠넷미디어, 코어컨텐츠미디어, MBK 엔터테인먼트를 거쳐 포켓돌스튜디오까지로 오기까지 많은 역경이 있었으므로 티니 앨범의 저작권을 되찾기엔 복잡한 사안으로 보인다. 더욱이 음반을 보면 엠아이라는 곳도 해산되었으니 음원을 재개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다. 굳이 해야할 의미도 없어보이고 게다가 성공하지 못한 팀이다보니 기억하는 대중들도 많지 않던터라 서비스 재개 수요도 그리 크지 않으니 기적이 있지 않는 한 서비스는 어려워보인다.[12][13] 더군다나 중고음반을 취급하는 곳에서 이 앨범을 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티니를 검색하면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절판되었다고만 뜰 뿐이다.

여담으로 정규 1집 8번 트랙에 수록된 <One Fine Day>는 방시혁이 작곡한 곡인데, 2002년 JYP에서 데뷔하게 되는 가수 에게 후렴구 가사만 바꾸고 편곡을 다시해서 주게 된다. 그 곡이 바로 별의 <왜 모르니>. 이 곡의 원곡이 티니라는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Baby Cat>과 <니가 사랑할 즈음> 두 곡은 이후 작곡가 김형석의 3집 프로젝트 앨범에 3point[14]가 재녹음한 버전으로 수록됐다.

TJ노래방 반주기엔 <뭐야>, <True Love> 두 곡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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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저협에 등록된 음반 발매일은 2000년 6월 25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오랫동안 음원 서비스가 막힌 옛날 앨범이다보니 포털 등지에선 2000년 7월 정도로만 기재하고 정확한 정보는 업데이트 되고 있지 않은 상태.[2] 앨범 커버가 두 버전이 있다. 사이버 여전사 컨셉의 블랙 자켓(초판)과 여성미를 강조한 화이트 자켓(재판). 팀명은 Trinity(삼위일체)의 스펠링을 따 TrINitY(티니)로 정했다.[3] 본명 박희진. 단순 오타인지 초창기 예명이었는진 알 수 없지만 앨범 속지 인쇄에 ‘서휘’가 아닌 ‘서희’로 인쇄되어 있다. 데뷔 당시엔 여주대 도예과 1년 휴학중이라고 소개 되었다.[4] 본명 박보람. 그룹 해체 후 CCM 가수로 전향했다는 당시 팬의 증언이 있다. 당시엔 동덕여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다고 알려졌다.[5] 본명 자넷 허. 데뷔 당시엔 UCLA 1년 휴학 중이라고 언론사에 소개됐다. 한국 이름이 따로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엔딩에서 깜짝 마술쇼를 선보였던 멤버였으며 한국어가 어눌하다. 어떤 음악방송 리허설에서 마술 퍼포먼스를 실수하자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한테 심한 쌍욕을 먹고 있어 안타까웠다는 레전드 후기가 있었다.[6] Blue Rain, 나의 왕자님께, Feel Your Love 등 핑클의 히트곡을 만들었던 작곡가 신인수가 작곡했다.[7] 터보의 첫 소속사는 권승식이 이끌던 스타뮤직이었고 김정남이 탈퇴하고 마이키가 영입된 터보 2기 활동부터 스타뮤직이 GM기획과 합병했다.[8] 두 소속사의 합작 제휴 회사의 명칭은 ‘마인 엔터테인먼트’였으며 티니 해체 후 바로 사라졌다.[9] 2010년 씨야의 김연지에게 팀 복귀를 호소하는 언플을 하며 자신의 인생에 있어 첫 걸그룹을 티아라라고 밝힌 것에 대해 씨야 멤버들이 이를 섭섭하여 생각했을 수도 있다며 자신의 팀 차별 행동을 (입)반성 하기도 했는데 사실 진짜 잊혀진 원조는 티니다. 무명이라 더욱 서러울 법. 사실 갱키즈더 씨야 등의 몇몇 팀들도 흑역사로 치부해 따로 언급하진 않는다.[10] 씨야의 경우 남규리에게 없던 파트를 하나씩 떼다 주었다. <여인의 향기>에서는 김연지의 파트를, <Hot Girl>에서는 이보람의 파트를 대신 부르게 했다.[11] MBC 유튜브 채널에서 팀명을 실수로 ‘타이니’로 올렸다.[12] 실제로 임창정이나 박지윤, 그룹 태사자, 파이브#4인조 그룹, ART 등 가수들이 자신의 팬들의 요청에 의해 직접 예전 앨범들이 음원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도록 복잡하게 얽힌 저작권 문제를 노력해 음원을 공급하게 된 사례들이 종종 있으나 현재 기준 음원 막힌 가수들 대다수가 이런 사라진 무명 가수들이라 사실상 서비스 재개는 어렵다. 예외적으로 비슷한 시기인 2001년에 esc(Escape)라는 곡을 남기고 해체된 남성 5인조 그룹 호프(Hope)가 있는데, 음원 사이트에 서비스되고 있으며 유튜브에도 공식 음원이 올라와있다.[13] 현행 저작권법에 의하면, 옛 법인을 인수한 신 법인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즉 옛 법인이 그대로 해산한 경우라면 저작권은 국가로 귀속된다는 규정이 있다.[14] 브라운아이드걸스제아가 데뷔 전에 참여했었던 그룹. 여담으로 제아는 이 앨범의 수록곡 <Love Again>을 솔로로 불렀는데, 이 곡은 이후 죠앤이 오디션 코너 가이드송 <다시 내게로>로 불렀으나 소속사 문제로 인해 정식 음원이 발매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