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보리심 수행/행(行)보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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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심하고 육바라밀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
2. 방편과 지혜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성불할 수 없는 이유
3. 일반적인 대승(바라밀승)을 배우는 방식
3.1. 보살행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보리심)을 닦는 것
3.2. 마음을 닦아서 보살계를 받는 것
3.3. 보살계를 받고 보살행을 실천하는 방법
3.3.1. 보살행의 근본인 육바라밀
3.3.2. 보살행이 육바라밀에 포함되어 있는 이치
3.3.2.1. 육바라밀의 수(數)가 정해짐
3.3.2.2. 육바라밀의 순서가 정해짐
3.3.3. 자신의 불법(佛法)을 성숙시키는 육바라밀을 배우는 방법
3.3.3.1. 보시를 배우는 방법
3.3.3.1.1. 보시의 정의
3.3.3.1.2. 보시를 일깨우는 방법
3.3.3.1.3. 보시의 분류
3.3.3.1.4. 보시의 뜻을 요약함
3.3.3.2. 지계를 배우는 방법
3.3.3.2.1. 지계의 정의
3.3.3.2.2. 지계를 일깨우는 방법
3.3.3.2.3. 지계의 분류
3.3.3.2.4. 지계를 실천하는 방법
3.3.3.2.5. 지계의 뜻을 요약함
3.3.3.3. 인욕을 배우는 방법
3.3.3.3.1. 인욕의 정의
3.3.3.3.2. 인욕을 일깨우는 방법
3.3.3.3.3. 인욕의 분류
3.3.3.3.4. 인욕을 실천하는 방법
3.3.3.3.5. 인욕의 뜻을 요약함
3.3.3.4. 정진을 배우는 방법
3.3.3.4.1. 정진의 정의
3.3.3.4.2. 정진을 일깨우는 방법
3.3.3.4.3. 정진의 분류
3.3.3.4.4. 정진을 실천하는 방법
3.3.3.4.5. 정진의 뜻을 요약함
3.3.3.5. 선정을 배우는 방법
3.3.3.5.1. 선정의 정의
3.3.3.5.2. 선정을 일깨우는 방법
3.3.3.5.3. 선정의 분류
3.3.3.5.4. 선정을 실천하는 방법
3.3.3.5.5. 선정의 뜻을 요약함
3.3.3.6. 지혜를 배우는 방법
3.3.3.6.1. 지혜의 정의
3.3.3.6.2. 지혜를 일깨우는 방법
3.3.3.6.3. 지혜의 분류
3.3.3.6.4. 지혜를 실천하는 방법
3.3.3.6.5. 지혜의 뜻을 요약함
3.3.4. 타인의 마음을 성숙시키는 사섭법을 배우는 방법
3.3.4.1. 사섭법의 정의
3.3.4.2. 네 가지로 정한 이유
3.3.4.3. 사섭법의 작용
3.3.4.4. 사섭법에 의지해야 하는 필요성
3.3.4.5. 조금 자세한 설명
4. 특별한 금강승을 배우는 방식


1. 발심하고 육바라밀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편집]


원보리심 만으로도 이득이 아주 크지만 보살의 학처의 핵심인 육바라밀을 행하지 않으면 성불이 불가능하므로 보살행(菩薩行)을 배워야 한다. 여기에서 행(行)이란, 부처를 이루는 방법, 즉 보살의 배워야 할 바(육바라밀)를 말하는 것이다.

즉, 남에 대한 자비심이 있으면 남의 고통을 제거해 주어야 하고, 남의 고통을 제거하려면 그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선한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므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가장 먼저 자신이 그 방법을 잘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스스로 잘 실천하지 않으면 남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정으로 남을 돕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부터 교화해야 한다. 나 자신을 교화하려면 자기 스스로 수행해야 한다.

수행의 핵심이란, 보살계를 받고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행의 핵심을 제대로 행하고 싶다면 수행의 핵심으로 삼아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틀리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 방편과 지혜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성불할 수 없는 이유[편집]


부처의 경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 만으로는 부족하며, 부처의 경지를 이루는 방법을 행해야 한다. 행(行) 또한 틀리지 않는 방법이 필요하고, 틀린 방법으로는 아무리 수행해도 원하는 결과가 생기지 않는다. 또 틀리지 않아도 완전하지 않으면 노력한 결과는 생기지 않는다.

성불할 수 있는 원인(因)과 조건(緣)은 무엇인가 하면, 《비로자나현증보리론》에서, "비밀의 주인(금강살타보살)이시여, 일체종지(一切種智)는 비심(悲心)의 뿌리에서 생기고, 보리심을 원인으로 생기고, 방편(육바라밀)으로 완성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쫑카빠는 마하연 화상과 그 지지자들로 추정되는 일부 중국의 화상들을 비판한다. 마하연은 티베트 불교의 사상적 향방을 결정지은 8세기 쌈예 논쟁에서 중국 선종(禪宗)을 대변했던 인물로, 점진적인 수행을 주장하는 인도 불교 논사들과 달리 생각하지도 관찰하지도 않고(不思不觀) 육바라밀이나 37조도품 등의 방편을 행하지도 않으며(不行) 단지 마음을 보는 것(看心)으로 즉시 일체의 분별 망상을 제거하여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초 돈황에서 발견된 《돈오대승정리결》에서 마하연은 육바라밀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근기가 낮은 자들(鈍根)을 위한 방편으로 분류했고, 반면 자신이 주장하는 불사불관의 선법(禪法)은 근기가 높은 자들(利根)이 승의(勝義)에 들어가는 법이라고 말했다. 또한 단지 불사불관하여 반야바라밀을 성취하는 것만으로 육바라밀과 37조도품이 자연히 원만해지며 모든 공덕이 갖추어지고 본래 존재하는 일체종지가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마하연 화상의 주장)

이와 같은 수행(道)에 대해 왜곡되게 생각하는 몇몇 중국의 화상들이 말하기를, 분별심이라고 하면, 나쁜 분별심은 말할 필요가 없고, 좋은 분별심도 윤회에 묶이는 원인이므로 이것의 결과는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즉, 금줄이든 보통 줄이든 둘 다 묶는 것이고, 흰 구름이든 검은 구름이든 모두 하늘을 가리며, 흰 개든 검은 개든 어떤 개에게 물려도 아픈 것은 똑같다.

따라서 아무것도 분별하지 않고 그 상태에 머무는 것(무소유처無所有處;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상태)이 성불의 길이다. 보시(報施)와 지계(持戒) 등의 육바라밀은 이와 같은 요의(了義)를 닦을 수 없는 어리석은 사람을 위해 말씀한 것이지, 이 요의를 얻어서 깨달은 사람이 보시·지계 등을 지키는 것은 국왕이 평민처럼 되거나 코끼리를 찾아놓고 코끼리의 발자국을 찾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보리도차제광론》(게시 소남 걜첸 譯)


마하연 그리고 마하연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이들에 대한 쫑카빠의 반론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속제인 방편을 성불할 수 있는 바른 길이 아니라고 비방, 부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계행(戒行)과 바라밀행 등을 버리게 된다.

  • 진제인 무아, 공성에 대해 분별하는 지혜로써 분석하는 것마저도 막기 때문에 진제 측면에서도 깨달음과 현격히 멀어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쌈예 논쟁에서 인도 불교를 대변했던 까말라쉴라는 마하연의 선법(禪法)인 불사불관을 무념(無念, asmrti)과 부작의(不作意, amanasikara)로 이해했고, 무념과 부작의는 ‘나는 이러한 법들을 억념하지도 작의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일어나게 하여 외려 더욱 억념하고 작의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또한 단지 무념과 부작의로는 무분별성(無分別性)에 안치(安置)하여 제법(諸法)의 무자성(無自性), 공성을 깨달을 수 없으며, 무분별지를 얻기 위해서는 여실(如實)한 관찰(bhuta-pratyaveksa)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마하연의 선법은 오직 마음에만 집중하는 유사(類似, pseudo) 사마타이며 위빠사나가 결여되어 있어 도(道)의 요의(了義)가 아니다.

  • 오직 견해의 측면에서 공성만을 닦으면 되고, 견해가 아닌 행(行)의 측면에서 속제의 대상들(자비심, 보리심 등)을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등의 주장은 경전에 배치되고 논리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다. 대승(大乘)의 목적은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므로 윤회에 머물지 않기 위해 승의제인 공성에 대한 지혜, 심오한 도(道), 지덕자량(智德資糧) 등이 필요하고, 열반에 머물지 않기 위해 세속제를 아는 지혜와 광대한 행(行), 방편, 복덕자량(福德資糧)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공성에 대한 지혜 뿐 아니라 보시 등 모든 대자비의 방편을 잘 갖춰야 하는 것이다. 공성만으로는 대승의 어떤 도(道)도 이룰 수 없다.

  • 만약 "보시 등의 여러 행을 하는 것은 공성의 깨달음이 견고하지 않을 때 하는 것이고, 공성의 깨달음을 갖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삿된 견해이다. 승의제를 현량(現量)으로 깨달은 부동지(不動智, 무분별지(無分別智). 초지初地 이상의 대지혜 또는 8지의 대지혜)를 얻어서 높은 지위(地位)에 든 보살들, 특히 부동지(不動智)의 특별한 힘을 얻은 팔지(八地)의 보살들도 성불을 위해 보살행으로 복덕자량을 쌓아야 한다.

  • “보시, 지계 등의 방편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그 속에 모든 방편이 갖춰져 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보시하는 자와 보시 받는 자, 보시물(布施物)이 실재한다고 집착하지 않는 것(=삼륜청정三輪淸淨)은 무연시(無緣施)를 갖고 있으므로 보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지계 등의 나머지들도 마찬가지로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경(經)에서 각각의 바라밀 속에 여섯 바라밀 모두가 있다[1]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라는 정도로 모든 방편이 갖춰졌다고 말한다면,
- 외도(外道)도 깊은 선정(禪定)에 들 때 그와 같은 집착이 없으므로 육바라밀을 모두 수행한다고 해야 한다. 또한 성문·독각들도 공성에 머물고 있을 때 보살의 행인 방편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해야 하므로 그들이 대승(大乘)과 똑같이 되는 오류가 있다.
- 또한 각각의 속에 여섯(육바라밀)이 모두 갖춰져 있다고 하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인정한다면, “소똥[2]과 물을 올리오니...”라는 구절을 외우며 만달라 공양을 올리는 것에도 육바라밀이 모두 갖춰져 있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봐야 한다(만달라 공양을 올릴 때도 육바라밀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상징과 공양물들을 관상(觀想)하지만 만달라 공양만으로 성불할 수 없듯이, 무념무상의 삼매에 든 것만으로는 성불할 수 없다).
- 그러므로 견해가 있는 행과 방편이 있는 지혜란 예를 들어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서 슬픔의 고통을 겪는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과 만나 대화 등을 나누는 동안 어떤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아들을 잃은 슬픔의 힘이 항상 함께하는 것처럼, 공성을 깨닫는 지혜가 강력하면 보시, 절, 탑돌이, 진언, 독경할 때 그것들이 비록 공성을 깨닫는 행위는 아니지만 공성을 깨닫는 힘이 그러한 행위와 함께하는 것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선정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보리심을 강력하게 일으키고, 이후 공성 삼매에 들어갈 때 앞서 일으킨 보리심이 직접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공성을 깨닫는 지혜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모순이 아닌 것과 같다(선정 중에 보리심은 없지만, 보리심을 일으킨 후 얻은 공성의 지혜와 일반적인 공성의 지혜는 다르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혜와 방편이 서로 돕는 것을 무연시(無緣施, 삼륜청정한 보시)라고 하는 것이지, 베풀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을 보시라고 할 수 없다. 지계(持戒) 등의 나머지 방편도 마찬가지이다.

  • 복덕 자량(지혜 바라밀을 제외한 나머지 보시~선정바라밀로 쌓은 복덕 자량)의 결과로 윤회계의 좋은 몸 받는 것과 재물 누리는 것과 장수(長壽)하는 등에 대해서 경전에서 말한 것에 대해서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뛰어난 방편과 지혜에서 벗어나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집착의 대상이 되고 청정하지 못하게 되지만, 뛰어난 방편과 지혜를 갖추면 성불(成佛)의 원인으로 매우 타당하다. 《보만론》에서 "색신(보신·화신)의 원인을 요약하면, 왕이시여, 복덕 자량에서 생기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 “악행(惡行)과 모든 번뇌 또한 성불의 원인으로 바꿀 수 있다.”라고 말하거나 혹은 “보시와 지계 등의 선업 또한 윤회의 원인이지 깨달음의 원인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정신 차리고 제대로 말하라. 두 가지 아(人有我·法有我)가 실재하는 것으로 왜곡되게 집착하는 마음, 즉 아상(我相), 법상(法相) 등을 갖고 보시, 지계 등을 하는 것을 청정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지 일반적인 보시, 지계 등의 육바라밀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 마찬가지로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생각하는(행위 주체, 행위, 행위 대상(=삼륜三輪)으로 분별하는) 모든 분별심을 법집(法執)이라고 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하면, 선지식(善知識)의 공덕을 생각하는 것, 유가구족(有暇具足)과 죽음과 삼악도의 고통을 사유하는 것, 귀의와 업보를 생각하는 것, 자(慈)와 비(悲)를 생각하는 것, 보리심 닦는 것, 행보리심(行菩提心)의 학처를 배우는 것 등이 모두 법집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에 대한 확신이 생길수록 법집이 커지고, 반대로 법무아를 이해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이 모두에 대해 확신하는 힘이 약해지게 되어 행과 견해가 서로 모순되고 약화되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진제의 인무아, 법무아를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과 속제의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생기고(인과법), 이것에 허물이 있고 저것에 공덕이 있는 것 등에 대해 확신이 일어나는 것이 모순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 위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근(根 바탕)인 이제(二諦, 진제·속제)를 확실하게 이해해야 한다. 윤회와 해탈에 속한 모든 존재 방식에서 자성(自性, 독립성, 자체성)이 티끌 만큼도 없다는 진제(眞諦)를 바르게 이해하는 량(量, 바른 인식)과, 원인과 결과의 법이 조금도 뒤바뀌지 않고 각각으로 확실하다는 인과를 바르게 이해하는 명언량(名言量, 속제俗諦의 바른 인식)-이 둘이 서로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확신을 얻게 되면 이제(二諦)의 뜻을 깨닫는 것이고 부처의 뜻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 경전에서 무소연(無所然 대상 없는 도)과 유소연(有所然 대상 있는 도) 각각으로 분별해서 말한 것과 같이, 마찬가지로 번뇌와 상(相)에 집착하는 속박은 풀어야 하고 지계(持戒)와 같이 배워야 할 바는 밧줄로 꽁꽁 묶어야 하며, 말 못하는 두 가지 죄(성죄性罪와 차죄遮罪)는 없애야 하고 선(善)은 행해야 한다. 따라서 배워야 할 바의 묶은 것(지계)과 번뇌와 상(相)의 속박이 같지 않고, 계율을 푸는 것과 아집의 속박을 푸는 것이 같지 않다.

  • 일체종지(一切種智)는 수많은 원인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지 한두 가지 원인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백 마리 새를 돌 하나로 모두 쫓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유가구족의 이 좋은 몸을 얻어 다양한 면에서 수행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道)의 일부만 행하면서 다른 것을 수행하지 않는 것은 복과 지혜의 두 자량(資糧)의 문(門)을 막는 악지식(惡知識)임을 알아야 한다. 대승(大乘)과 소승(小乘) 또한 수행할 때 한량없는 자량을 배우는 것과 배우지 않는 것으로 구분된다. 먹고 입는 것조차 수많은 원인과 조건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성불이 일부 원인 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결과는 항상 원인의 뒤를 따르는 것이 연기법(緣起法)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 방편과 지혜 또는 육바라밀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와 배워야 할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밀승(금강승)과 바라밀승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수많은 밀교의 큰 경전(구야싸마자 등)에서 부처의 무량궁(無量宮)과 본존의 모습들을 설명할 때 모두가 마음의 공덕과 연결해서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즉 밀교에서도 육바라밀(六波羅密)과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과 십육공성(十六空性) 등의 바라밀승의 도를 거듭 말했다. 특별한 경우에 집착(색성향미촉 등)을 수행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것 등 몇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바라밀승과 밀승의 공통적인 것이다.

  • 일부만이 아닌 원만하게 모두 갖춘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에 확신을 얻지 못하면 대승의 전체적인 수행의 중심을 잡을 수 없다. 따라서 지혜 있는 자들은 앞에서 말한 것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일으키고,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밀승과 밀승의 불성(佛性)의 힘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3. 일반적인 대승(바라밀승)을 배우는 방식[편집]



3.1. 보살행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보리심)을 닦는 것[편집]


율장(律藏)에서 별해탈계(別解脫戒)와 밀교계(密敎戒)의 경우 계를 받지 않은 사람은 배워야 할 것들을 들어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보살계(菩薩戒)는 그렇지 않아서 먼저 배워야 할 것들을 듣고 마음을 닦아서 보살계 받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희구심希求心)이 생기면 계(戒)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배워야 할 것들을 잘 알고 인식해서 가슴 깊이 진심으로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일으키고 난 뒤 계를 받는 것은 계가 매우 견고해지므로 좋은 방법이다. 즉 보살계를 받기 위해서는 보리심이 있어야 한다.


3.2. 마음을 닦아서 보살계를 받는 것[편집]


《보살지론(菩薩地論)》<계품>의 주석서인 쫑카빠의 《계품석(戒品釋)》에서 보살계를 받는 방법과 근본죄와 허물을 막는 방법(보살계가 쇠퇴하지 않게 지키는 방법), 쇠퇴했을 경우 계를 회복하는 방법들을 자세히 설명했으므로 이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3.3. 보살계를 받고 보살행을 실천하는 방법[편집]



3.3.1. 보살행의 근본인 육바라밀[편집]


보살행을 일일이 다 말하면 끝이 없지만 종류별로 요약하면 육바라밀(六波羅密)이며, 이 육바라밀에 보살의 학처(學處)들이 포함되어있기에 육바라밀은 보살도(菩薩道)의 핵심을 모두 집대성한 것이다.

사섭법(四攝法) 또한 육바라밀에 들어간다. 사섭법 중 보시(報施)는 육바라밀의 보시바라밀과 같고, 애어(愛語)는 육바라밀을 중생에게 부드럽고 온화한 말로 가르치는 것이고, 이행(利行)은 육바라밀 가르친 것을 남이 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동사(同事)는 나도 남과 함께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다.

두 자량(방편과 지혜)과 삼학(계정혜) 등이 보살의 모든 행에 포함되지만, 육바라밀에 포함되는 것만큼의 깊은 의미가 없기에 육바라밀을 보살의 모든 행의 근본으로 삼는 것이 최상이다.


3.3.2. 보살행이 육바라밀에 포함되어 있는 이치[편집]



3.3.2.1. 육바라밀의 수(數)가 정해짐[편집]


대승경전에서 석가모니 붓다가 육바라밀을 언급했지만, 육바라밀을 나누는 이유의 핵심은 《대승장엄경론》 에서 미륵보살이 붓다의 뜻에 따라 설명했다고 쫑카빠는 말한다. 미륵의 설명에 따라 바라밀 수(數)의 정해진 방식을 이해하여 확신을 얻으면 육바라밀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므로 육바라밀의 여섯이라는 수(數)와 육바라밀의 정해진 순서에 대한 확신을 얻어야 한다.

① 증상생(增上生, 인간·천신)을 얻는 데에 있어서 육바라밀의 수가 정해짐
② 자신의 뜻(이익)과 남의 뜻(이익)을 이루는 측면에서 육바라밀의 수가 정해짐
③ 남의 모든 뜻을 원만하게 이루는 측면에서 육바라밀의 수(數)가 정해짐
④ 대승(大乘)을 모두 요약한 측면에서 육바라밀의 수가 정해짐
⑤ 모든 도(道) 또는 방편을 기준으로 하는 측면에서 육바라밀의 수가 정해짐
⑥ 삼학(三學 계·정·혜)의 측면에서 육바라밀의 수가 정해짐

이상의 여섯 가지 설명은 《대승장엄경론》에서 설한 미륵보살의 뜻을 밝힌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대승장엄경론》과 《보리도차제광론》 참조.

① 부정적인 것을 버리게 하는 대치법을 기준으로 한 측면에서 육바라밀의 수가 정해짐
② 모든 불법(佛法)을 이루게 하는 토대의 측면에서 육바라밀의 수가 정해짐
③ 중생을 성숙(成熟)하게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 측면에서 육바라밀의 수가 정해짐

이상의 세 가지 설명은 무착의 뜻을 사자현이 설한 것으로, 육바라밀에 대한 확신을 일으키는데 크게 중요하다. 역시 자세한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 참조.

3.3.2.2. 육바라밀의 순서가 정해짐[편집]


① 발생하는 순서
재물 등에 집착하지 않고 베푸는 보시가 있으면 지계가 생기는 것이 가능하고, 악행(惡行)을 바르게 막는 지계를 갖추고 있으면 남의 해침에 대해 인욕할 수 있게 된다. 고행(苦行)에 대해 싫어하지 않는 인욕이 있으면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원인이 적어지므로 정진할 수 있게 된다. 밤낮으로 정진하면 마음이 선의 대상에 자기 뜻대로 머물 수 있는 선정이 생길 수 있다. 마음이 대상에 평등하게 머물 수 있는(등지等持) 선정의 힘이 있으면 바른 뜻을 그대로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생길 수 있다.

② 낮고 수승(殊勝)함의 순서
전자는 낮고 후자는 높다(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순으로 보시가 가장 낮고 지혜가 가장 수승하다).

③ 거칠고 미세함의 순서
전자가 후자보다 들어가기와 행하기가 쉬우므로 거칠고, 후자가 전자보다 들어가는 것과 행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미세하다(예: 보시보다 지계가 입문하여 행하기 어렵다).


3.3.3. 자신의 불법(佛法)을 성숙시키는 육바라밀을 배우는 방법[편집]



3.3.3.1. 보시를 배우는 방법[편집]



3.3.3.1.1. 보시의 정의[편집]

보시란 베풀려고 하는 선한 마음과 그러한 마음으로 일어나는 몸과 말의 업(행동)이다.

보시바라밀의 완성이라는 것은, 보시물을 남에게 베풂으로써 중생들이 가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도 계속해서 가난한 중생이 많이 있기에 과거의 부처들이 보시의 궁극에 이르지 못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몸과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마음이 중요하다. 즉 자신의 재산인 몸과 재물과 일체의 선근(善根)까지 조금의 인색함이 없이 남에게 진심으로 베풀려고 하는 마음이 익숙해지고 원만해지면 보시바라밀이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보시바라밀의 수행은 직접 남에게 보시물을 베푸는 것이 없어도 베풀려는 마음을 여러 가지 면으로 일으키고 증장시키는 것이다.


3.3.3.1.2. 보시를 일깨우는 방법[편집]

몸과 재물에 대한 인색함을 모두 멸한 것만으로는 보시바라밀이라고 할 수 없다. 소승의 아라한도 번뇌의 종자까지 모두 제거했기 때문에 인색함이 없지만 보시바라밀을 완성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색함을 제거하는 정도가 아니라, 가진 것 모두를 남에게 베풀려는 마음이 진심으로 일어나야 한다.

언젠가 버려야 할 몸에 대한 집착을 가져서는 안되며, 남을 위해서 진심으로 베푸는 것이 자타(自他)의 많은 이익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몸 등을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일으키고 열심히 닦아야 한다.

크고 작은 모든 선근(善根)을 일체중생의 일시와 궁극의 큰 이익과 행복을 이룰 수 있도록 진심으로 회향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중생 하나하나에 의지한 복(福)을 얻게 되어 자량을 쉽고 빨리 크게 쌓게 된다.

또한, 베풀려는 마음에 장애가 된다면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지니지 말고 받지도 말아야 한다. 만약 인색함으로 재물들에 집착하게 되었다면, 부처가 모든 재물을 버리고 깨달은 것과 나 또한 부처를 따라 배우겠다고 맹세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베푸는 공덕을 사유하여 기쁨이 생기고 인색함으로 생기는 허물을 사유하여 두려움을 일으킬 수 있다면 베풀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자애심(慈)과 연민심(悲)을 닦고 모든 불보살들의 생애를 깊게 생각해서 베풀려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이와 같이 몸, 재물, 선근 세 가지를 대상으로 일체 중생에게 마음으로 베풀어야 한다. 가진 모든 것을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지 않고 오직 남에게 베풀겠다는 마음을 거듭거듭 닦는 사람을 보살(菩薩)이라고 한다.

원력(願力)이 성숙하지 않고 약해서 중생들에게 마음으로 몸을 보시할 수 있지만 몸 등을 실제로 직접 베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몸과 목숨까지 베풀겠다는 마음을 닦지 않으면 나중에는 원해도 실제로 몸과 목숨을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집학론(集學論)》에서 말했기에 지금부터 마음으로 닦아야 한다.

음식, 옷, 집 등을 일체중생을 위해 (실제가 아닌) 마음으로 베풀었으면, 그 때부터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집에 머무는 등의 모든 행위를 자신을 위한 집착으로 행하지 말고, 중생들을 위해 베풀겠다는 마음을 잊지 말고, 혹은 몇몇 중생들만 위한다는 마음으로도 행하지 말고, 항상 그 모든 행위들을 일체 중생을 위한 행위로 여겨야 한다.

실제로 모든 중생에게 주지 못하면서 마음으로 베풀려는 것은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그와 같은 것에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으로 불신하지 말아야 한다(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믿어야 한다).

3.3.3.1.3. 보시의 분류[편집]

1. 모든 의지처의 측면에서 보시하는 방법(보시를 원만하게 하는 방법)
보시는 여섯 가지 수승(殊勝)함을 갖추어야 한다.
① 의지처의 수승함은 보리심의 마음으로 보시해야 하는 것이다.
② 보시물의 수승함은 일반적으로 보시물을 모두 베풀겠다고 생각해야 하고,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보시할 때에도 모든 것을 베풀려는 마음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③ 목적의 수승함은 일체 중생의 일시적, 궁극적 이익을 위해 베푸는 것이다.
④ 뛰어난 방편의 수승함은 무분별의 지혜(공성을 깨닫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다. 아직 무분별지를 얻지 못한 초심자는 무자성(無自性)을 깨닫는 지혜로 베푸는 것이다.
⑤ 회향의 수승함은 베푸는 선업의 공덕을 원만구족한 깨달음을 위해 회향하는 것이다.
⑥ 청정의 수승함은 번뇌장과 소지장을 막는 것이다.

2. 누가 어떤 보시를 하는 것이 타당한가의 분류(재가자와 출가자가 보시하는 것)
보편적으로 재가자 보살이 하는 것은 재물 보시이고, 출가자 보살이 하는 것은 법 보시이다. 출가자가 일부러 재물을 모아서 보시하는 것은 막았다. 하지만 자신의 선업을 행함에 방해가 되지 않고 과거 생의 복덕의 힘으로 이미 재물이 많이 있으면 재물을 베풀어야 한다고 경전에서 말했다.

3. 보시 자체의 측면에서의 분류
1) 법보시(法布施)
법보시란 정법(正法)을 왜곡되지 않은 내용과 왜곡되지 않은 마음 동기로 가르치는 것, 남을 해치는 것을 제외한 세간(世間)일(예: 공교명(工巧明)같은 외명(外明))을 가르치는 것, 악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쌓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2) 무외시(無畏施)
무외시란 왕이나 도적, 강도 등 사람으로부터 생긴 두려움(고통), 육지(사자, 호랑이 등)와 물(악어, 상어 등)의 사람이 아닌 동물들로부터 생긴 두려움(고통), 물, 불 등 사대(四大, 우주를 구성하는 4대 요소인 지地·수水·화火·풍風)로부터 생긴 두려움(고통)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해주는 것이다(예 : 방생, 재난 구조 등).

3) 재물보시(財物報施)
재물보시는 물질적인 보시 전반을 지칭하며 1) 재물을 직접 베푸는 보시, 2) 마음만으로 하는 보시가 있다. 재물보시는 가장 일반적인 보시 유형이므로 쫑카빠는 《보리도차제광론》에서 보시의 대상, 보시하는 방법, 보시할 때 마음 동기, 보시할 때 갖춰야 할 행위와 버려야 될 행위, 베풀어야 할 보시물과 베풀지 말아야 할 보시물, 보시를 할 수 없을 때 취해야 할 태도, 보시의 장애인 인색함에 대처하는 법, 마음으로 하는 보시법 등 재물 보시와 관련된 내용을 매우 상세히 설명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을 참고할 것.

3.3.3.1.4. 보시의 뜻을 요약함[편집]

보살계를 받고 보살의 높은 경지(초지~십지)에서 보시하는 방법을 배워서 닦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보시하는 데 있어서 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를 잘 알고 실천해야 한다.

특히 몸과 재물과 선근(善根)에 대한 인색함의 대치(對治)를 실천하고, 베풀려는 마음을 넓히는데 정진하고, 그와 같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수희찬탄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후회하고 마음이 아파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묘수문경(妙手問經)》에서 말한 것과 같이 다른 생에도 어렵지 않게 보시바라밀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수행법들을 모두 버리고 보시를 하지 않으면 이번 생에도 아주 무거운 업(業)을 짓게 되고 다른 생에도 보시를 싫어하기 때문에 보살행을 하는 것이 아주 어려워진다.

보살행의 의지처인 보리심을 기억하여 수습(修習)하고 완전한 깨달음을 발원(發願)하고 회향하는 것은 모든 보시의 뿌리이고 모든 보시 가운데 최상이기 때문에 이타(利他)의 마음으로 보시하는 데 정진해야 한다.


3.3.3.2. 지계를 배우는 방법[편집]



3.3.3.2.1. 지계의 정의[편집]

남을 해치려는 말과 행동과 그 근본인 해치려는 마음 동기까지 벗어나려는 마음이 지계이다.

남을 해치려는 말과 행동까지 막으려는 마음이 계속 발전해서 완전히 원만해지면 지계바라밀을 완성하는 것이지, 중생을 해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계바라밀을 완성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해침을 당하는 중생들이 많이 있기에 과거의 부처들이 지계바라밀을 완성한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중생들을 해침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이끌 수 없게 된다.

외부의 모든 중생들이 해침으로부터 벗어나든 벗어나지 않든 나 자신의 마음 속에 그들을 해치려는 동기에서 벗어나는 마음에 익숙해져서 티끌만큼도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지계의 실천을 통해서 지계바라밀을 완성할 수 있다.

지계에는 세 가지(섭율의계·섭선법계·선중생계)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주로 섭율의계(攝律儀戒 별해탈계·보살계·금강승계)를 바탕으로 해서 금(禁)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또한 마음 동기까지 기준으로 하면 십불선업(十不善業)을 버리는 마음 열 가지가 있고, 계율의 본질 면에서 말하면 십불선(十不善) 중에서 주로 몸과 입으로 짓는 일곱 가지를 버리려고 하는 그 자체가 지계이다.


3.3.3.2.2. 지계를 일깨우는 방법[편집]

보리심을 일으키고 보살의 육바라밀을 행하겠다고 한 이는 일체중생에게 원만 구족한 부처의 지계의 장엄(莊嚴 완성)을 갖추게 하겠다고 서약한 것이기에 이 뜻을 행해야 하고, 또한 먼저 자기 자신부터 계율을 바르게 잘 지키는 힘을 얻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지 못하거나 계율을 쇠퇴시키면 악도(惡道)에 떨어지기에 남의 뜻은 물론이고 자신의 뜻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의 뜻을 위해 정진하는 이는 계율을 지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율을 지키는 데에 한시도 마음을 놓지 않고 집중해야 한다.

지계를 청정히 지키는 것은 취할 것과 버릴 것(取·捨)을 이치대로 행하는 것에 달려있기 때문에 계율을 잘 지키려는 마음을 강력하고 견고하게 해서 계율을 지킨 이득과 지키지 않은 허물을 오랫동안 생각하고 계율을 잘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계율을 잘 지키지 않으면 악도의 고통을 받게 되지만 계율을 지키려고 하면 자신의 마음이 점점 수승(殊勝)해지고 비심(悲心)이 가득 차 있는 대보살들과 동등하게 되고 악행(惡行)의 모든 종자를 제거하는 깨끗한 지혜(일체종지)를 얻게 된다. 지계의 장엄(莊嚴)은 모두가 기뻐하는 최고의 장식품이 되고, 지계의 향기는 온 누리에 퍼져간다. 같은 출가자라도 계율을 잘 지키는 출가자가 더욱 수승하다. 또한, 아첨하거나 힘들게 행하지 않아도 주위의 재물이 저절로 모이게 되고, 힘으로 누르지 않아도 모두가 공경하게 되고, 친한 이들은 물론 과거에 내가 도움을 준 적이 없고 알지 못하는 이들도 저절로 나와 친하게 된다. 계율을 지키는 사람의 발자국의 흙먼지조차도 천신과 사람들이 정수리에 모시고 공양의 대상으로 가져간다. 이러한 이득들도 지계에서 생긴다.

이와 같이 지계의 이득과 허물을 바르게 생각한 지자(智者)는 계율을 잘 지켜야 하고, 더 나아가 악도를 두려워해서 계율을 지키는 마음과 천신과 인간의 원만한 몸을 얻기 위해 계율을 지키는 마음을 버리고 일체 중생이 지계바라밀을 완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율을 지켜야 한다.


3.3.3.2.3. 지계의 분류[편집]

1. 섭율의계(攝律儀戒): 악행을 막는 지계
《보살지론》에서 7종 별해탈계(사미·사미니계, 식차마나계, 비구·비구니계, 우바이·우바새계)라고 말했기에, 재가자(우바이·우바새)나 출가자(사미·사미니, 식차마나, 비구·비구니)는 7종 별해탈계 중 자신이 수계한 별해탈계와 보살계를 지키는 것이 섭율의계이다. 또 별해탈계를 받을 수 없고(천신·용 등) 보살계만 있는 경우에도 별해탈계와 공통적인 성죄(性罪 수계 여부와 상관없이 어느 누가 하더라도 행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와 차죄(遮罪 어떤 계율을 받아서 지키겠다고 한 약속과 어긋나게 된 죄) 등을 멀리하고 율의(律儀)에 어긋나지 않게 지키는 것이 섭율의계이다.

2. 섭선법계(攝善法戒): 선법(善法)을 모으는 지계
육바라밀 등의 선한 대상이 아직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지 않은 것을 일어나게 하고, 이미 일어난 것은 쇠퇴하지 않게 하고 더욱 더 증장(增長)시켜야 한다. 즉 육바라밀 수행과 섭율의계는 섭선법계에 포함된다.

3. 섭중생계(攝衆生戒): 중생을 이롭게 하는 지계
열한 가지 종류의 중생(3악도, 사람, 욕계6천, 아수라)을 대상으로 이생과 내생에 허물 없이 그 중생들에게 맞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다. 섭중생계를 알기 위해 《계품석(戒品釋)》(쫑카빠가 쓴 《보살지론》의 〈지계품〉 주석서)을 반드시 거듭 봐야 한다. 별해탈계에서 지켜야 하는 것들은 보살계를 갖춘 출가자가 배워야 할 것들 중 일부이기 때문에 보살계와 별도로 별해탈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삼종계(三種戒) 중에서도 섭율의계의 별해탈계는 보살에게도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하기에 보살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배워야 한다.

《섭결택보살지(攝決擇菩薩地)》에서, "삼종계 중에서 섭율의계(악행을 막는 지계)는 선법을 모으기도 하고 원만하게도 한다. 왜냐하면, 섭율의계를 엄격하게 지키면 섭선법계와 섭중생계도 잘 지키게 되고, 섭율의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섭선법계와 섭중생계도 지키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의 섭율의계가 쇠퇴하면 모든 계가 쇠퇴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별해탈계는 소승이 지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보살계는 따로 있고, 따로 배울 수 있다고 말을 하는 것은 보살계의 핵심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섭율의계를 섭선법계와 섭중생계의 바탕(의지처)으로 경론에서 거듭 말했기 때문이다.

섭율의계의 핵심은 성죄(性罪)를 제거하는 것이다. 또한 성죄로 인한 허물의 핵심을 모은 것이 십불선업(十不善業)이고, 대·소승 모두에게 십불선업을 멀리하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십불선업에 대한 실제 행(行)은 물론이고 마음 동기조차 일으키지 않도록 몸·말·생각(마음)을 잘 단속해야 한다. 가장 먼저 십불선업을 멀리하는 것을 제대로 지키려고 실천한다면 나머지 계율도 쉽고 빨리 이루어지게 된다.

3.3.3.2.4. 지계를 실천하는 방법[편집]

여섯 가지 수승함(여섯 가지 수승함에 대해서는 '보시의 분류' 항목 참조)과 육바라밀을 함께 갖추고 지계를 실천해야 한다. 육바라밀을 갖춰 지계를 실천할 때 자신의 계율을 잘 지키고 남도 계율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계의 보시이고, 이기심으로 계를 지키지 않고 이타심으로 계를 지키는 것이 지계의 지계이고, 지계 할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참는 것은 지계의 인욕이고, 지계를 더욱 더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지계의 정진이고, 한마음으로 집중해 지계한 공덕을 위없는 보리를 위해 회향하는 것은 지계의 선정이고, 지계의 삼륜청정, 즉 누가, 무엇을, 어떻게 지키는지 그 세 가지 모두가 신기루와 같음을 깨닫는 것은 지계의 지혜이다.


3.3.3.2.5. 지계의 뜻을 요약함[편집]

육바라밀행(보살행)의 근본인 보리심이 쇠퇴하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는 것은 지계 등의 보살행에 들어가는 뿌리이고, 일체중생의 해침을 막는 것에도 최상이다. 높은 지위(대보살)의 계율(미세한 악행을 막는 계율)을 실천할 수 있도록 발원해서 지켜야 하고, 초심자가 지킬 수 있는 취하고 버려야 하는 것들을 진심을 다해서 지금부터 배워야 한다. 특히 십불선업 등의 성죄(性罪)와 차죄(遮罪)를 멀리하는 계율을 내가 아는 선에서 매일같이 지키려고 하는 생각을 자주 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내가 수지(受持)한 근본죄(바라이죄)를 범하면 안된다는 마음을 거듭거듭 내어 정진해야 한다.

이와 같이 노력한다면 원인과 성질이 일치하는 과보인 등류과(等流果)로서 다음 생에도 어렵지 않게 큰 고생 없이 보살의 배워야 할 것들을 원만하게 행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지계 등을 버리게 된다면 항상 무거운 허물과 죄업을 짓게 되고 많은 생 동안 보살행을 배우지 못하게 되기에 지금부터 한 가지라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3.3.3.3. 인욕을 배우는 방법[편집]



3.3.3.3.1. 인욕의 정의[편집]

다른 중생이 나를 해치는 것에 대해 어떠한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 것, 자신의 마음에 생긴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 불법(佛法)을 확신하는 마음에 큰 믿음이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들과 반대 면에도 세 가지가 있는데, 즉 분노(싫어하는 마음), 분노와 공포에 대한 두려움, 법을 믿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것이다.

인욕바라밀을 완성하는 것은 자신의 분노 등을 제거하는 마음에 익숙해져서 계속 원만해지는 것이지 모든 악한 중생을 제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즉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 그 자체가 인욕을 이루는 것이다.


3.3.3.3.2. 인욕을 일깨우는 방법[편집]

인욕을 일깨우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인욕하는 공덕과 인욕하지 않는 허물에 사유하는 것이 있다.

1. 인욕하는 공덕
인욕하는 이득은 《보살지론》에서, “보살은 가장 먼저 오직 인욕의 이득을 보는 것이다. 인욕을 실천하는 이에게는 다음 생에 적이 많아지지 않고, 친한 이와 헤어지는 것이 적어지며, 육체적인 행복과 마음의 행복이 많아지게 되고, 후회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몸의 4대가 흩어져 죽은 뒤에도 선도(증상생增上生)나 세간의 천신으로 태어나게 된다고 생각하여, 이와 같은 이득을 봄으로써 자신도 인욕행을 하고 남도 인욕행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인욕에 대해 찬탄하고 인욕행 하는 이를 수희찬탄(隨喜讚歎)하게 된다.”라고 말하였다. 그 밖에 《반야섭송》, 《입보살행론》에서도 인욕의 공덕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 참조.

이러한 많은 이득들은 인욕으로부터 생기기에 인욕과 인욕이 많은 이득 간의 인과(因果)관계를 잘 알아야 하며, 견고하고 강력한 확신을 얻기 전까지 인욕의 이득을 거듭거듭 생각해야 한다.

2. 인욕하지 않는 허물
인욕하지 않는(분노) 허물 중에서 보이지 않는 허물과 보이는 허물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보이지 않는 허물은, 《입보살행론》에서, "수천 겁(劫) 동안 쌓은 보시와 여래에게 공양 올리는 등의 모든 공덕을 단 한 번의 분노(화)로 무너뜨린다."라고 말했고 《만주시리유희경》, 《입중론》에서도 이와 유사한 구절이 나온다.

어떤 대상에 대해 화내면 그렇게 되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 대상이 보살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보살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든 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선근(善根)을 무너뜨리는 것(화냄)에 꼭 대상이 보살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선근(善根)이 없어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선업의 과보를 받는 것이 미뤄질 뿐 과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주장이 있으나 쫑카빠는 선근이 없어질 경우 과보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불선업과 달리 화내는 것(분노)과 강한 사견(邪見)을 일으키는 것 두 가지는 선근을 없애므로 선업의 과보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등류과(等流果) 같은 부수적인 과보를 받을 수는 있다. 자세한 논증은 《보리도차제광론》 참조.

분노의 허물 중에서 보이는(이번 생에 받는) 허물은
①편안한 마음과 분석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이 없어지고,
②이전의 정신적 기쁨과 몸의 편안함이 사라지며 이후의 새로운 기쁨과 안락이 없어지고,
③잠이 오지 않으며 마음이 제대로 견고하게 머물 수 있는 힘이 쇠퇴하고,
④분노가 크면 과거에 은혜로 베풀어준 것도 잊고 그를 죽이게 되고,
⑤친한 이가 귀찮아하고 싫어해서 떠나게 되고,
⑥많이 베풀었어도 곁에 머물지 않는 것 등이다.

이러한 허물들이 분노에서 생기는 것을 확실히 알 때까지 거듭거듭 생각해야 한다. 인욕의 이익과 허물을 먼저 알고 다양한 방법으로 인욕 수행하는 데 정진해야 한다. 인욕 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화를 자주 내는 것은 어리석음 때문이다.

3.3.3.3.3. 인욕의 분류[편집]

쫑카빠는 인욕에 대해 크게 다음과 같은 세 분류로 나누었다.

1. 해침에 대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인욕
2. 고통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인욕
3. 법을 (반드시) 확신하는 인욕

각각의 분류는 세부적인 하위 분류들로 나뉘는데, 예를 들어 '해침에 대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인욕' 부분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해침에 대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인욕

1.1. 해침에 대해 참지 못하고 화내는 것을 막는 것

1.1.1. 행복을 막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 대해 참지 못하는 것을 막는 것

1.1.1.1. 화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것

1.1.1.1.1 객체(대상, 해치는 사람)를 분석했을 때 화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것

1.1.1.1.1.1. 해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해쳤는지 또는 어쩔 수 없이 해쳤는지를 분석했을 때 화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1.1.1.1.1.2. 해침이 일시적인 것인지, 본질적인 것인지를 분석했을 때 화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1.1.1.1.1.3. 해침이 직접적인 것인지, 간접적인 것인지를 분석했을 때 화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1.1.1.1.1.4. 해치게 하는 주된 원인을 분석했을 때 화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1.1.1.1.2. 주체(나, 해침을 당하는 사람)를 분석했을 때 화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것

1.1.1.1.3. 의지처(고통을 받게 되는 원인)를 분석했을 때 화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것

1.1.1.1.3.1. 나를 화나게 하는 원인과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1.1.1.1.3.2. 내가 발심(發心)하고 맹세한 것을 살펴야 한다.

1.1.1.2. 자비심으로 대하는 것이 타당한 것

1.1.2. 나에 대한 공경(恭敬) 등에 대해 방해가 되고 나를 모욕하는 등의 세 가지에 대해 참지 못하는 것을 막는 것

1.1.2.1. 나에 대한 공경 등에 대해 방해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을 막는 것

1.1.2.1.1. 칭찬 등 세 가지에 이득(利得)이 없는 이치를 생각하는 것이다.

1.1.2.1.2. 칭찬 등 세 가지에 허물이 있는 이치를 생각하는 것이다.

1.1.2.1.3. 칭찬 등 세 가지를 막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1.1.2.2. 나를 모욕하는 등의 세 가지에 대해 참지 못하는 것을 막는 것

1.2. 해치는 사람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잘못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막는 것


목차에서 알 수 있듯. 쫑카빠는 현실에서 분노가 발생하는 경우들을 다각적으로 조명한 후, 경론에 의거하여 논리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인욕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논리적 분석을 통해 분노를 막는 것에 관해 쫑카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노를 막는 가르침(요의법了義法)은 앞에서 산티데바 보살 등 여러 스승께서 가르쳐주신 논리로 내 마음속 번뇌와 계속 논쟁해서 자신의 내면을 보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 있는 최고의 적인 분노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앞서 말씀하신 것들이므로 분석하는 지혜로 잘 분석해서 다양한 논리로 분노를 막는다면 여러 종류의 대부분의 분노들이 거의 다 없어지게 되고 다양한 면에서 인욕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바르고 정확한 경론(經論)의 뜻을 허물이 없는(無垢) 바른 논리로 정확하게 이해함으로써 생긴 경험이기 때문에 그 습기(習氣)가 매우 견고하다. 지혜로 분석하는 명상(쬐곰)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욕을 비롯한 보살의 여러 가지 위대한 행(行)을 다 버리는 것이므로 나와 남 모두의 유가구족(有暇具足)의 몸을 의미있게 쓰는 데 최고의 방해임을 알아야 하고 독약처럼 멀리 버려야 한다.

《보리도차제광론》(게시 소남 걜첸 譯)


분노와 같은 정서적 문제에 대한 쫑카빠의 접근 방식은 현대 심리치료 기법 중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와도 상당히 유사하다. 비합리적인 신념체계로 고통 받는 내담자를 위해 내담자의 신념을 검증하고, 대안적인 해석을 검토하여 더 적절한 신념을 지지해줌으로써 치료적 변화로 이끄는 인지치료처럼 인도-티베트 불교의 분석 명상(Skt. vicārabhāvanā; Tib. dpyad sgom) 역시 불교 경론과 논리에 의거하여 수행자를 설득하고 이해시켜 가치관, 신념 체계를 변화시키는 일종의 불교적 인지치료에 해당한다. 쫑카빠의 《보리도차제광론》 전체가 사유와 분석을 통한 신념체계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며, 때문에 《광론》 도처에서 “거듭 사유하고 익숙해져야 한다.”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인욕의 분류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 참조.

3.3.3.3.4. 인욕을 실천하는 방법[편집]

어떠한 인욕 수행을 하더라도 여섯 가지 수승함(‘보시의 분류’ 항목 참조)과 육바라밀을 함께 갖추고 실천해야 한다. 육바라밀을 갖추어서 실천할 때 자신이 인욕행을 하면서 남도 인욕 수행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욕의 보시이고, 나머지는 앞서 말한 것과 같다('지계를 실천하는 방법' 항목 참조).


3.3.3.3.5. 인욕의 뜻을 요약함[편집]

육바라밀행의 의지처인 보리심을 항상 뒤따라 기억하고 익히는 것은 일체중생이 번뇌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도록 인욕 수행할 수 있게 하는 뿌리이다.

그러므로 일체중생을 인욕 수행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를 바탕으로, 보리심을 계속 발전시켜야 하고 높은 지(8지~10지 보살)의 인욕을 발원(發願)으로 닦고 초심자가 할 수 있는 인욕의 배워야 할 바를 정확하게 알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이들 가르침과 어긋나게 되면 즉시 참회하는 데 정진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들을 무시해 버리면 계속해서 큰 죄가 되고 다른 생에서도 훌륭한 보살행을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수행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지금부터 행하고 하기 힘든 것들은 발원으로 닦아야 한다.


3.3.3.4. 정진을 배우는 방법[편집]



3.3.3.4.1. 정진의 정의[편집]

선한 대상을 보고 매우 기뻐하는 마음이다.


3.3.3.4.2. 정진을 일깨우는 방법[편집]

정진하는 이득과 정진하지 않는 허물을 거듭거듭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에 익숙해지면 모든 공덕의 어머니와 같은 정진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1. 정진하는 이득
《권발증상의요회(勸發增上意樂會)》에서 “(농사, 장사 등의) 모든 고통과 (취하고 버릴 것을 모르는) 모든 어둠을 제거하고 모든 악도(三惡道)를 제거하는 수행의 바탕, 삼세 모든 부처님께서 찬탄하신 성스러운 보배인 정진. 그것을 항상 가까이해야 한다. 세간의 모든 공덕(농사, 장사 등 각종 기술)과 출세간의 모든 공덕(극락정토 등) 정진하는 이에게는 얻기가 어렵지 않다. 지자(智者)라면 누가 정진을 힘들어하겠는가..위없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는 이는 혼침(昏沈)과 잠의 허물을 알고서 항상 정진하는 데 머물게 된다. 이것은 내(부처님)가 권하는 가르침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장엄경론》, 《보살지론》, 《반야섭송》 등에서도 정진의 이득을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 참조.

2. 정진하지 않는 허물
《해혜청문경(海慧請問經)》에서, “게으른 자에게는 깨달음은 멀고 또 멀다. 게으른 자에게는 보시부터 지혜까지 없다. 게으른 자에게는 이타(利他)도 없다.”라고 말했고 《염처경(念處經)》에서도 정진하지 않는 허물을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 참조.

정진, 즉 선업(善業)을 행하는 것이 없으면 게으름에 빠지게 되고 게으름에 빠지면 모든 선업으로부터 가난해지게 된다. 그 결과로 중생을 위한 일시와 궁극의 모든 원하는 뜻을 잃어버리게 된다.


3.3.3.4.3. 정진의 분류[편집]

1. 실질적인 정진의 분류
1) 갑옷 같은 정진
2) 선업을 모으는 정진
3) 중생의 뜻을 이루게 하는 정진

1) 갑옷 같은 정진
① 마음의 갑옷의 정진
보살들이 정진에 들어가려고 할 때(가행加行 이전), 환희심의 갑옷을 입고 천대겁(千大劫)의 시간을 밤과 낮으로 삼고 그 밤낮을 삼 무수대겁의 천만과 십만을 곱한 만큼의 시간 동안 한 명의 중생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보살 자신이 지옥에 머물면서 부처의 경지를 얻기 위해 정진해야 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다는 마음이다. 이보다 시간도 아주 짧고 고통도 아주 작은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정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의 갑옷의 정진이다.

보살이 이와 같은 정진을 의지와 믿음 정도만 일으켜도 매우 견고한 것이다. 왜냐하면,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 헤아릴 수 없는 정진을 원인으로 삼고 있다면 이와 같은 정진은 당연히 갖출 수 있다.
② 수승한 갑옷의 정진: 《반야섭송》에서 설명했다. 자세한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 참조.
③ 위없는 갑옷의 정진: 《무진혜경》에서 설명했다. 자세한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 참조.

이와 같은 갑옷을 입고 무엇을 위해 정진하는가에 두 가지가 있다.

2) 선한 법(善業)을 모으는 정진
육바라밀을 바르게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3) 중생의 뜻을 이루게 하는 정진
중생의 뜻을 이루게 하는 열한 가지 방법 중에서 자신과 맞는 것을 살펴서 열심히 정진하는 것이다.
①행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
②방법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③이익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
④오염되거나 위험한 곳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
⑤근심·걱정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
⑥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
⑦장소를 제공해주는 것.
⑧화합하도록 도와주는 것.
⑨바른 길로 가도록 도와주는 것.
⑩삿된 길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
⑪신통으로 도와주는 것 등

2. 정진을 일으키는 방법
쫑카빠는 《입보살행론》의 〈정진품〉이 이해하기 쉽고 실천하기 편하며 내용 면에서 원만히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하여, 〈정진품〉을 위주로 정진을 일으키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정진을 일으키는 방법에는 크게 네 가지 분류가 있다.

1) 정진의 장애인 역연(逆緣)을 멀리하는 것

2) 정진의 순연(順緣)인 군대 같은 자량을 쌓는 것

3) 역연을 없애고 순연을 쌓는 것에 의지해서 정진을 행하는 것

4) 정진을 행함에 몸과 마음이 어떤 일이든 저절로 할 수 있게 되는 이치


다른 바라밀의 분류와 마찬가지로 쫑카빠는 네 가지 분류를 다시 세부적인 하위 분류로 나눈 후, 각각의 경우에 정진이 쇠퇴하지 않고 증장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불교 경론과 논리에 의거하여 상세하고 실질적인 가르침을 준다. 쫑카빠는 수행자가 의무와 강요 때문이 아닌, 기쁜 마음을 갖고 용기를 내어 자발적으로 정진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상황에 따른 대처법들을 제시한다. 자세한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 참조.

정진바라밀이 점차 증장하여 자유자재의 경지에 오를 정도가 되면 《입보살행론》에서 말한 것처럼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선업을 실천할 수 있게 되며, 바람에 나부끼는 목화솜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이 기뻐하는 힘으로 선업에 이끌리게 되어 모든 복(福)과 지혜(智慧)의 자량(資糧)이 쉽고 빨리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지에 이를 때까지 붓다처럼 몸과 목숨을 아끼지 말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3.3.3.4.4. 정진을 실천하는 방법[편집]

어떠한 정진을 하더라도 여섯 가지의 수승(殊勝)함을 갖추어야 하고(‘보시의 분류’ 항목 참조), 육바라밀과 함께 해야 한다. 정진의 보시(報施)는 자신이 정진하면서 남을 정진하게 하는 것이고 나머지들은 이전에 말한 것과 같다('지계를 실천하는 방법' 항목 참조).


3.3.3.4.5. 정진의 뜻을 요약함[편집]

육바라밀의 의지처인 보리심을 늘 기억하고 익숙해져야 하는 것은 일체중생을 정진으로 이끌기 위해서 정진을 배울 수 있도록 권하는 것이기에 정진을 점점 늘어나게 한다. 그 후 높은 경지(초지 이상)에서 하는 정진들을 본받아서 닦아야 한다. 초심자가 하는 정진도 자신의 근기(根器)에 맞게 노력해야 한다.

특히 공통적이지 않은 정진의 제거해야 할 바인 두려움을 바르게 버려야 한다. 그리고 얻어야 할 바인 완전한 깨달음과 일체중생의 고통을 제거하고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시간 동안 끝없이 복과 지혜의 자량을 쌓아야 하는 것, 끝없는 고행에 대해 기쁜 마음으로 정진하는 갑옷을 입어보는 것, 이와 같은 매우 위대한 생각은 그 생각을 일으키기만 해도 광대한 복덕을 쌓는다고 《묘수문경(妙手問經)》에서 말했기에 노력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보리심의 종자(種子)가 늘어나지 않고 늘 많은 악행(惡行)을 저지르게 되며, 다음 생에도 보리심을 배우기가 어렵게 된다. 이와 같은 것들을 먼저 알고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실천해야 하는 쪽으로 마음을 향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정진하면 《묘수문경(妙手問經)》에서, “다음 생에도 적은 노력으로 어렵지 않게 큰 고통 없이 속히 정진 바라밀을 완성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3.3.3.5. 선정을 배우는 방법[편집]



3.3.3.5.1. 선정의 정의[편집]

자신의 사유 대상 이외의 다른 곳으로 생각이 흩어지지 않도록 그 대상에 집중하는 선(善)한 마음이다. 즉 오직 대상 하나에만 견고하게 머물러 있는 선한 마음이다.


3.3.3.5.2. 선정을 일깨우는 방법[편집]

선정을 닦으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선정을 닦지 않으면 어떤 허물이 있는지 잘 생각해서 선정을 닦아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보리도차제광론》〈사마타(止)〉 참조.


3.3.3.5.3. 선정의 분류[편집]

《보살지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선정 그 자체의 면에서 나누면 세간(世間)의 선정과 출세간(出世間)의 선정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고, 향(向)하는 바의 면에서 나누면 사마타 쪽의 선정, 위빠사나 쪽의 선정, 사마타와 위빠사나 함께 하는 선정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작용면에서 나누면 이번 생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선정, 신통 등의 공덕(功德)을 이루게 하는 선정, 중생의 뜻을 이루게 하는 선정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작용면에서 나눈 세 가지의 선정에서, 첫 번째는 선정에 들어가면 몸과 마음의 경안(輕安)을 일으키는 선정이다. 두 번째는 육신통(六神通)과 팔해탈(八解脫)과 십변처(十遍處)와 팔승처(八勝處) 등의 성문(聲聞)과 공통적인 공덕을 이루게 하는 선정이다. 세 번째는 중생의 뜻을 이루게 하는 열한 가지의 뜻을 이루게 하는 선정이다('정진의 분류' 항목 참조).


3.3.3.5.4. 선정을 실천하는 방법[편집]

선정을 닦을 때 여섯 가지의 수승함을 갖추고('보시의 분류' 항목 참조) 육바라밀과 함께 수행해야 한다('지계를 실천하는 방법' 참조). 자신이 선정에 머물고 남을 선정으로 이끄는 것이 선정의 보시이고, 다른 것들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알아야 한다.


3.3.3.5.5. 선정의 뜻을 요약함[편집]

육바라밀 등 보살행의 의지처인 보리심을 일으키고 뒤따라 기억(記憶)하고 수습(修習)하는 것은 일체중생을 견도(見道) 이상의 무루(無漏)의 선정으로 이끌기 위해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기에, 이 선정이 어느 정도 견고해지면 보다 높은 지위인 색계와 무색계의 선정들까지도 닦을 수 있도록 발원(發願)하고 또, 선정을 원만하게 일으키지는 못하더라도 수시로 마음을 하나로 집중해서 할 수 있는 만큼 선정을 닦도록 최선을 다해서 정진을 버리지 말고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보살의 학처(學處)와 어긋나게 되는 허물에 항상 물들게 되고 다른 생에도 보살들이 배우는 선정을 닦는 것이 더욱 어렵게 될 수 있다. 만약 앞서 말한 것처럼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선정을 닦고, 못하는 부문은 발원해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실천한다면 이번 생에도 마음이 산만해지는 것이 점점 줄어들어서 선업을 쌓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다음 생에도 《묘수문경(妙手問經》에서 말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편안해서 쉽게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쫑카빠는 선정바라밀에 대해서 《보리도차제광론》〈샤마타(止)〉에서 자세히 다뤘기에 육바라밀 부분에서는 간략히만 언급했다.


3.3.3.6. 지혜를 배우는 방법[편집]



3.3.3.6.1. 지혜의 정의[편집]

일반적으로 지혜는 분석의 대상인 존재에 대해 바르고 깊게 분석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오명학(五明學 pañca-vidyā)-①내명(內明, 불교학), ②의방명(醫方明, 의학), ③성명(聲明, 문법학), ④인명(因明, 논리학), ⑤공교명(工巧明 기술학)에 통달한 지혜를 가리킨다.


3.3.3.6.2. 지혜를 일깨우는 방법[편집]

1. 지혜를 일으킨 이득
1) 금생과 내생의 모든 공덕의 근원이 되는 이득
2) 보시 등 다섯 바라밀의 눈(眼)이 되는 이득
: 지혜가 없으면 보시~선정까지 나머지 다섯 가지도 바라밀이 될 수 없다.
3) 오근(五根) 중에서 주(主)가 되는 이득
: 믿음, 지계, 보시, 참(慙)·괴(愧), 지혜 등의 5근 중에서 지혜가 중심이므로, 지혜가 있으면 보시와 믿음 등은 인색함과 불신(不信) 등의 허물과 공덕을 잘 알게 되어서 번뇌를 없애고 공덕을 증장시키는 방편에 뛰어나게 된다.
4) 아만(我慢)의 행복이나 두려움의 불행으로 흔들리지 않는 이득
: 보살이 구하는 자에게 자신의 살을 줄 때도 마치 약(藥)나무를 잘라 주는 것처럼 아만이나 두려움 등이 생기지 않는 것은 바로 공성을 확실하게 깨달은 지혜 때문이다.
5) 모순처럼 보이는 두 가지 공덕이 지혜로써 모순되지 않는 이득
: 보살이 전륜왕이었을 때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 자애심이 강렬해도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 것, 연민심이 강하게 일어나도 슬픔으로 인해 선업을 기뻐하지 않는 게으름이 없는 것,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이 있어도 대상에게 마음이 뺏겨 흔들리지 않는 것, 평등심을 갖추면서도 중생을 위해 한 순간도 마음을 놓쳐 게으르지 않는 것은 모두 지혜 덕분이다. 왜냐하면 상반되게 보이는 두 가지 공덕의 힘이 균형을 이루도록 지혜가 서로 어긋나 함께 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6) 속제(연기)와 진제(무자성)의 두 가지 진리를 상반되지 않게 깨닫는 이득
7) 허락한 것과 막은 것들 어긋남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이득
: 대승과 소승, 현교와 밀교에서 허가한 것(해도 되는 것)과 금지한 것(하면 안되는 것) 등 같은 내용이라도 같지 않은 차이점이 많고, 이 모두를 한 사람이 실천해야 한다는 두 가지 사실은 무수히 많은 경론을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어긋나지만 현명한 이에게는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이 또한 지혜의 공덕이다.

요약하면, 모든 공덕은 지혜의 힘에서 생긴다.

2. 지혜를 일으키지 않아 지혜가 없는 허물
지혜가 없으면 보시~선정 등은 마치 눈이 없는 장님과 같아 길잡이가 없으니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혜가 없으면 보시~선정 등을 청정하게 행할 수 없고 바른 견해도 얻지 못하는 허물이 있다. 무지(어리석음)의 어둠은 지혜의 큰 밝음이 생기면 사라져 버리기에 있는 힘을 다해 무아의 지혜를 일으키기 위해서 정진해야 한다.

무지의 원인과 지혜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무지의 원인
나쁜 친구를 가까이하고 게으르며 놀기를 즐기고, 잠을 많이 자는 것이다. 그리고 관찰하여 분석하기를 싫어하고, 넓은 뜻에 관심이 없고,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아만(我慢)과 큰 사견(邪見)과 '나는 할 수 없다'는 나약한 마음으로 지혜로운 이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믿고 의지할 만한 스승(선지식)을 가까이 공경하여 지혜가 생길 수 있도록 목마른 이가 물을 구하듯 듣고 배우기(聞)를 구해야 한다.

2. 지혜가 생기게 하는 원인
1)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하여 문사수(聞思修)를 닦아야 한다.
2) 번뇌장과 소지장을 제거하는 지혜도 듣고 배움으로써 얻을 수 있다.
: 번뇌장과 소지장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공성을 깨닫는 지혜 말고 다른 원인이 없다. 그렇기에 지혜가 최상이며 그 지혜의 바탕은 많은 경론을 듣고 배우는 것(聞)이기에 듣고 배우는 것이 최고로 중요하다.
3) 선행(善行)을 하는 데 싫어하지 않아 인내하며 문(聞)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온갖 어려움을 참고 선업을 짓는 것은 듣고 배움이 쇠퇴하지 않고 늘어나게 하기에 선정(禪定)의 방법이나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 등을 아는 지혜가 생기도록 싫어함이 없이 꾸준히 듣고 배워야 한다.
4) 듣고 배워 지혜가 있으면 마군이 해치지 못한다.
: 《나라연문경》에서 “이같이 선남자여, 들음이 있으면 지혜가 생기게 된다. 지혜가 있으면 번뇌가 완전히 멸하게 된다. 번뇌가 없어지면 어떤 마군도 해를 끼칠 수 없게 된다.”고 하였다.
5) 수행의 목숨과 같은 '법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게 하는 최고의 원인인 오류 없는 경전과 논서에 대한 많은 들음이 필요하다.
: 하지만 수행자가 이렇게 배우지 못하는 것은 실제 수행에 들어갈 때 분별하는 지혜로 분석하는 분석 명상(쬐곰)이 필요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분석 명상이 필요 없다고 잘못된 확신을 가진 탓이기에 바르게 수행하길 원하는 이라면 이 같은 나쁜 견해를 독처럼 멀리해야 한다.
6) 완전한 깨달음(일체종지) 얻기 위해서는 많은 경론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고, 조금만 배워서는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다.
7) 수행자가 수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고,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그 원인인 듣고 배우는 것 없이는 되지 않음을 확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 이 또한 수행할 때 관(觀) 수행(분석명상)의 필요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면 듣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기 어렵다. 불법은 교법(敎法, 교학)과 증법(證法, 수행) 두 가지 외에 없다. 교법은 수행하는 방식을 알게 하는 것이고, 증법은 알고서 행으로 옮기는 것이기에, (교법에 의거하여) 틀리지 않게 (증법으로) 실천하는 그 자체가 불법을 지니는 최고의 수행자이다.
8) 틀리지 않는 원만한 가르침이라면 간략한 것이라도, 현·밀과 대·소승도의 핵심을 모두 갖추어야 하고, 그 뜻을 깊게 풀면 모든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3.3.3.6.3. 지혜의 분류[편집]

1. 진제를 깨닫는 지혜
무아의 진여(공성, 진리)를 비량比量(분별지)으로 대략 깨닫는 것과 현량顯量(무분별지)으로 확실하게 깨닫는 것을 말한다.

2. 속제를 깨닫는 지혜
"오명학을 배우고 정진하지 않으면 성자라 하더라도 부처의 일체지를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다른 이를 모두 조복시켜 섭수하고 자기 자신도 모든 것을 알기 위해 이에 정진해야 한다."- 《장엄경론》

이와 같이 불법(佛法)을 믿지 않는 이들이 틀리게 말하는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성명학(聲明學)과 인명학(因明學, 논리학)이 필요하고, 불법을 믿는 이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공학(工學)과 의학(醫學)이 필요하다. 자신이 완전히 깨닫기 위해 내학(內學)이 필요한 것은 일반적인 목적이고, 부처를 이루기 위해서 이 오명학(五明學) 모두가 필요한 것은 궁극적인 목적이다.

3.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行)을 깨닫는 지혜
일체중생의 금생과 내생의 뜻(이익)을 무난하게 성취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3.3.3.6.4. 지혜를 실천하는 방법[편집]

진제를 깨닫는 지혜, 속제를 깨닫는 지혜, 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을 깨닫는 지혜 등 이 세 가지 지혜를 일으킬 때 여섯 가지 수승함('보시의 분류' 항목 참조)과 육바라밀을 갖추어 행해야 한다('지계를 실천하는 방법' 참조).


3.3.3.6.5. 지혜의 뜻을 요약함[편집]

공성의 진리에 대해 현량으로 깨닫는 지혜가 있어도 보리심이 없다면(견도 이상의 성문·독각) 아직 보살행에 들어간 것이 아니기에 육바라밀 등 보살행의 의지처인 보리심을 수습해 발전시켜야 한다. 높은 보살 지위에서 닦는 반야의 지혜를 선망의 대상으로 삼아 배워야 하고, 지혜의 대자량을 위없이 원만하게 하는(일체종지를 깨닫게 하는) 방편인 세 가지 지혜를 일으키기 위해 지금 바로 노력하며 열심히 듣고 배워야 한다.

지금 배우지 않으면 배워야 할 학처의 핵심인 지혜와 어긋나는 죄와 훼범에 물들게 되고, 다른 생에도 듣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기에 보살의 학처인 육바라밀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금생에 지혜를 일으키는 방법에 정진하면 [육바라밀을] 배우지 않아 생기는 허물을 막을 수 있고, 다음 생에도 《묘수문경》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지혜바라밀을 쉽고 빨리 구족할 수 있게 된다.


3.3.4. 타인의 마음을 성숙시키는 사섭법을 배우는 방법[편집]



3.3.4.1. 사섭법의 정의[편집]


사섭법(四攝法)은 제자를 이끄는 방법이다.
① 보시섭(布施攝): 보시바라밀
② 애어섭(愛語攝): 제자에게 육바라밀을 듣기 좋은 말로 가르치는 것
③ 이행섭(利行攝): 육바라밀에 대해 가르친 내용 대로 바르게 행할 수 있게 하는 것
④ 동사섭(同事攝): 제자에게 가르친 내용을 자기도 실천하는 것


3.3.4.2. 네 가지로 정한 이유[편집]


나를 따르는 권속이나 제자가 선행(善行)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질적인 보시(布施)를 통해 육체적으로 도움을 줘서 기뻐하게 한 뒤 수행의 길로 이끄는데,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게 하기 위해 애어(愛語)로 법을 설해 알지 못하는 무지와 의심을 버리고 바르게 뜻을 지닐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 다음 이행(利行)으로 가르친 내용을 아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며, 자기는 실천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실천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가르침을 받는 이들이 수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므로 동사(同事)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사섭법이 필요하다.


3.3.4.3. 사섭법의 작용[편집]


사섭법이 제자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말한다.

보시를 통해 법을 들을 수 있는 그릇(法器)이 되게 하여 설법자를 공경하게 한다. 애어를 통해 가르치는 법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게 하여 그 뜻을 바르게 알아 의심이 끊어지게 한다. 이행을 통해 배운 대로 실천하게 하며, 동사를 통해 그 법을 거부하지 않고 오래도록 실천하게 한다.


3.3.4.4. 사섭법에 의지해야 하는 필요성[편집]


모든 중생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 최고의 방편으로 모든 부처가 사섭법을 말했으니, 제자를 이끌려고 하는 이라면 사섭법에 의지해야 한다.


3.3.4.5. 조금 자세한 설명[편집]


• 애어섭(愛語攝)
- 세간의 이치에 맞는 애어섭
: 인상 쓰지 말고 밝게 미소 띤 얼굴로 안부를 묻는 등 세간의 이치에 맞게 남을 기쁘게 하는 것

- 바른 가르침을 전하는 애어섭
: 믿음, 지계, 배움, 보시, 지혜를 일으키는 등을 시작해 일시적인 이익과 궁극적인 안락을 위해 중생에게 법을 가르치는 것

- 애어가 생기는 다양한 문(門, 원인)
* 하기 힘든 애어섭 3가지
· 자기를 죽이려는 적에게도 화내지 않고 이로운 말을 하는 것
· 아주 둔한 사람에게 낙담하지 않고 거두어서 법을 설하고 선행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 아사리와 전승사를 속이고 잘못을 저지르는 악한 중생에게도 화내지 않고 이로운 말을 하는 것

· 마음이 성숙하지 않은 이는 장애에서 벗어나 선도에 날 수 있도록 보시와 지계를 설하고,
· 마음이 성숙하여 장애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락(적정)을 갖춘 이에게는 수승한 사성제를 설하고,
· 방일한 재가자나 출가자는 더이상 방일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 의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법을 자세히 설하고 문답을 통해 의심이 끊어지게 한다.

• 이행섭(利行攝)
이는 미성숙한 이들을 성숙하게 하고, 성숙한 이들을 해탈하게 하는 것이다. 전자는 불법을 모르는 이들이 불법에 입문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하고, 후자는 법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이행섭에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금생을 위한 이행: 이번 생의 뜻(이익)을 성취하게 한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고, 이룬 것을 지키고 늘리는 방법이 법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둘째, 내생을 위한 이행: 다음 생의 뜻을 성취하게 한다. 소유한 것을 모두 버리고 구걸해서 살아가는 출가자의 삶을 이끄는 것으로, 이것이 다음 생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확실하지만 이번 생에는 확실하지 않다.
셋째, 금생과 내생 둘 다를 위한 이행: 이번 생과 다음 생의 뜻 둘 다를 성취하게 한다. 재가자나 출가자가 세간과 출세간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서 이번 생에는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다음 생에는 천상에 나거나 열반에 든다.

실천하기 힘든 이행섭도 행해야 한다. 과거에 선근을 쌓지 않은 이가 선행을 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는 이들은 수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방일(放逸)에 머물고 있기에 이들을 수행으로 이끄는 것이 어렵다. 또 외도의 견해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은 불법에 적대적이고 어리석어 논리적으로 가르쳐도 이해하지 못하기에 이들도 불법으로 이끄는 것이 어렵다.

이행의 차제(次第) 또한 근기에 맞게 정법을 순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수행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지혜가 미숙한 이는 먼저 쉬운 것부터 가르치고, 그런 다음 지혜가 중간 정도에 도달하면 중간 수준의 것을 가르치고, 나중에 지혜가 크게 넓어지면 심오하고 미묘한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 동사섭(同事攝)
남을 가르쳐 실천하게 하기보다 자신이 상대방보다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더 많이 실천해 보여주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중생의 이익을 위해서 하고, 마음은 이타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행行으로써 먼저 자신부터 조복해야 한다.

또한 사섭법에는 물질로 이끄는 것(재섭財攝)과 법으로 이끄는 것(법섭法攝) 두 가지가 있으며, 보시섭은 물질로 제자를 이끄는 것이고, 나머지 애어섭과 이행섭, 동사섭은 법으로 제자를 이끄는 것이다. 법으로 이끄는 것에는 대상의 법(애어)과 행의 법(이행), 그리고 이 둘을 완전히 닦는 법(동사)이 있다.

사섭법은 삼세의 모든 보살이 이타행을 하는 방식이기에 중생을 위해 가야 할 하나밖에 없는 길(道)이다. 보살의 행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이 모두는 육바라밀과 사섭법에 포함된다. 왜냐하면 보살의 모든 행은 성불의 원인이 되는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육바라밀과 남을 바른 법으로 이끌어 성숙하게 하는 사섭법 이 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육바라밀과 사섭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무착보살의 『보살지론(菩薩地論)』을 참조하기 바란다.

입선入禪(등지等至)과 방선放禪(후득後得) 시에 육바라밀과 사섭법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보살계를 지닌 자량도에 머무는 초심 보살이 입선하거나 방선해서 무엇을 행하더라도 육바라밀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어떤 때는 입선해서 닦아야 하고, 어떤 때는 방선해서 닦아야 한다.

선정의 본질인 사마타와 지혜의 본질인 위빠사나의 일부는 입선해서 닦고, 보시·지계·인욕과 선정과 지혜의 일부는 방선해서 닦아야 한다. 정진은 입선과 방선 둘 다에서 닦으며, 인욕의 일부인 심오한 법을 사유하는 것(법에 확신하는 인욕)은 입선해서 닦아야 한다.


이같이 희유하고 하기 어려운 행을 마음이 성숙하지 않아서 들으면 마음이 괴로운 이는 물론 초심자 보살들도 처음부터 수행을 잘할 수는 없지만, 먼저 이해하고 나서 서원의 대상을 점차 넓혀 익숙해짐으로써 나중에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행할 수 있게 되기에 습(習)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당장 직접 행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육바라밀과 사섭법을 통해 마음을 성숙하게 하는 습을 버린다면 바른 수행과 아주 멀어지게 된다.

따라서 보살계를 지닌 이들은 보살행을 배우지 않을 수 없고, 행보리심의 의궤를 지니지 않은 이들 또한 배우려고 노력해서 모든 행에서 배우려는 환희심이 생길 때 보살계를 지닌다면 보리심이 더욱 견고해질 것이니 이렇게 하도록 애써 노력해야 한다.


4. 특별한 금강승을 배우는 방식[편집]


이와 같이 현밀(顯密)의 공통된 도를 닦은 후에, 의심할 것 없이 밀승에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 길은 다른 법에 비하여 더욱 수승하고 속히 두 자량(지혜, 복덕)을 원만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길(금강승)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보리도등론》에서 말한 대로 먼저 스승에게 공경과 헌신을 다하고 그의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현교(顯敎)의 맥락에서 설명한 것보다 더욱 높은 수준으로 스승을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 기쁘게 해드려야 할 대상인 스승은 《보리도등론》에서 설명한 스승의 자격 중 적어도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후 먼저 속부(續部)[3]에서 설명한 관정(灌頂)으로써 심상속(心相續)을 성숙시키고, 다음으로 그때에 받은 서원과 율의(律義)을 듣고 이해하고 지켜야 한다. 만일 근본죄에 떨어졌다면, 율의를 다시 받을 수 있으나 상속에서 도의 공덕을 일으키는 것이 매우 늦어지므로 근본죄에 오염되지 않도록 강렬한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악작(惡作)에 물들지 않도록 노력하고, 만에 하나 오염되었을 경우 율의를 복구하는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도 닦음의 바탕이기에 만약 없다면 토대가 무너져 허물어진 집과 같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서원과 율의를 지키는 자가 진언승을 수행할 수 있다면, 우선 속부에 의거하여 생기차제(生起次第)를 닦아야 한다. 진언승에서 제거해야 할 공통적이지 않은 대상이란, 범속한 온(蘊), 처(處), 계(界)로 여기는 분별이다. 생기차제라는 것은 그러한 분별을 없애고 외기(外器), 내신(內身) 및 수용(受用) 등을 특별한 현현(現顯)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범속한 분별을 정화(淨化)시킨 사람에게 불보살들이 항상 가피를 내리고, 한량 없는 공덕을 쉽고 원만하게 이룰 수 있으므로 원만차제(圓滿次第)의 법기(法器)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속부에 의거하여 원만차제를 수행해야 한다. 단 생기차제를 무시하고 단지 그것을 원만차제에 포함된 것으로 여기는 것은 도의 일부분만을 수습(修習)하는 것이니, 이것은 속부와 속부의 주석을 저술한 학자들이 뜻한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무상유가도(無上揄伽道)[4]의 원만한 요체(要體)인 두 차제(생기차제, 원만차제)의 핵심에 도달해야 한다.

진언승 입문에 관련된 부분적인 사항들을 단지 용어 소개하는 수준으로 설명하였다. 따라서 진언승의 차제를 다룬 경론들을 통해 자세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현밀(顯密)의 핵심들을 모두 포괄하는 원만한 도의 요체를 수행할 수 있다. 그 결과 이번 생에 가만(暇滿)[5]의 몸을 얻은 의의가 있게 되고, 부처의 보배로운 가르침을 자타(自他)의 상속(相續)에서 더욱 넓힐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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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를 들어 보시 속에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가령 '보시의 인욕'은 보시할 때 겪는 수고로움, 고통을 참는 것을 말한다.[2] 인도 문화에서 신성시하는 소(牛)에서 생산된 다섯 가지 정결한 물질(五淨, Pañcagavya), 즉 우유, 기(ghee 버터의 일종), 커드(curd, 응유凝乳), 소오줌, 소똥은 갠지즈강과 함께 정화(淨化)의 힘을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본격적인 만다라 공양에 앞서 우정물(牛淨物)과 향수(香水) 등으로 만다라를 정화하고 장엄하는 예비적인 절차를 거친다. 현대에는 우정물을 생략하고 사프란 같은 향료를 넣은 향수만 뿌리는 경우가 많다.[3] 속부(續部, tantra)는 밀교에 속한 경전들을 일컬으며, 현교 경전인 경부(經部, sutra)와 구분된다.[4] 무상유가는 밀교의 체계인 4종 딴뜨라 중 가장 상위의 딴뜨라이다.[5] 불교 수행이 가능한 조건인 팔유가(八有暇) 십원만(十圓滿)을 가리킨다. 자세한 설명은 티베트 불교/보리도차제의 '예비수습'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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