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 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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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람지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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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前 축구선수


파일:Ramzy.jpg

이름
하니 람지
Hany Ramzy
본명
하니 구다 람지
Hany Guda Ramzy
출생
1969년 3월 10일 (55세)
이집트 카이로
국적
파일:이집트 국기.svg 이집트
신체 조건
186cm, 79kg
포지션
센터백
소속팀
알 아흘리 SC (1977~1988 / 유스)
알 아흘리 SC (1988~1990)
뇌샤텔 크사막스 (1990~1994)
SV 베르더 브레멘 (1994~1998)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98~2005)
1. FC 자르브뤼켄 (2005~2006)
국가대표
파일:Egypt_FA.png 124경기 6골 (이집트 / 1988~2003)

1. 개요
2. 커리어
2.1. 유년 시절
2.2. 프로 시절
3. 여담



1. 개요[편집]


이집트 국적의 前 축구선수. 1990년대 이집트 축구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대부분의 선수 경력을 분데스리가에서 보냈다. 한번의 월드컵과 여섯번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나섰고, 1998년 네이션스컵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2. 커리어[편집]



2.1. 유년 시절[편집]


그의 부모님은 콥트 교회 신자였다. 그래서 그의 별명도 "콥트의 마라도나"가 되었다. 그의 축구 실력은 10살 때부터 알려져 테르사나 SC나 자말렉 SC에서 관심을 보였으나 그의 아버지는 알 아흘리의 팬이었기에 이들의 구애를 거절하고 알 아흘리로 보냈다. 당시 알 아흘리의 감독이었던 무스타파 후세인은 그를 보고 람지가 알 아흘리의 유소년 구단에서 뛰도록 결정했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17살에 청소년 국가대표가 되었다.


2.2. 프로 시절[편집]


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출중한 재능을 선보이면서 알 아흘리의 1군으로 콜업되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인 마흐무드 엘-고하리 역시 이탈리아에서 치러진 1990 FIFA 월드컵 최종명단에 그를 포함시켰다. 당시 그는 선수단 중 가장 어린 선수였다.

1990년 그는 스위스의 뇌샤텔 크사막스 FCS로 옮겨 4년간 뛰었다. 당시 그의 별명은 '바위'였다. 1994년 그는 1. 분데스리가SV 베르더 브레멘으로 옮겨 분데스리가에서 뛴 최초의 이집트인이 되었다. 또한 그의 이적료인 1,500만 달러는 그가 이집트에서 가장 비싼 축구 선수가 되었음을 뜻하기도 했다.

199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이후 그는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로 이적해 6번을 달고 뛰었다. 그는 중앙 수비수로 뛰면서 12골을 넣어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유명해졌으나, 2003년 무릎 부상을 당하여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벤치에서 동료들이 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과의 계약이 끝난 뒤, 그는 BBC에 알 와흐다로 갈 것이다라고 말 했다. 그러나 2005년 10월 19일, 그는 2. 분데스리가1. FC 자르브뤼켄과 18개월 계약을 채결했다.

그는 부상 기간 동안 베를린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그는 은퇴 후 감독이 되기로 결심하였고,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유소년 팀 스탭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ENPPI 클럽의 감독이었던 독일인 라이너 조벨의 코치가 되었다. 2007년에는 성적 부진 때문에 팀이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조건으로 조벨 대신 그를 시즌이 끝날 때까지 감독 자리에 앉혔다. 이에 대해 그는 큰 책임감을 가졌으며, 이집트에서 어린 코치가 팀을 감독하기 위한 좋은 단계가 열렸다고 말했다.

2006-07 시즌을 9위로 마감한 후 그는 다시 코치가 되었다. 팀은 전 페트롤 아시웃의 감독이었던 안와르 살라마와 계약하였다. 2008년 9월 중순, 대표팀에서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미로슬라브 소우콥 하에서 이집트 20세 이하 대표팀의 코치가 되었다. 2009년 12월 말에는 이집트 21세 이하 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다. 또한 그는 이집트 23세 이하 대표팀의 감독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2012년 리르서 SK의 기술 고문이 되었다. 2012~2013년은 그가 직접 리르서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3. 여담[편집]


  • 비무슬림으로서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로 굵은 행적을 남겼지만, 그 외에 기독교인으로 국가 대표에 소집된 인물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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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렇다고 이집트 기독교인 사이에 축구가 인기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입단을 시도하면 대부분 축구코치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꿈나무들을 잘라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람지의 커리어 시작은 종교를 불문하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코치의 눈과 지원이 받침되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기적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