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문

덤프버전 : r20210301



출생
1898년 2월 6일
충청북도 보은군 수한면 묘서리
사망
1981년 2월 11일
충청북도 보은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최용문은 1898년 2월 6일 충청북도 보은군 수한면 묘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2일 안만순(安萬淳)·송덕빈(宋德彬) 등과 같이 독립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주민들을 규합하여 마을의 농암산에 모이게 한 후 독립만세시위에 대해서 역설하고 주민 60여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20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해 공소했지만 1919년 6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 판결을 받았다.# 그는 다시 상고하면서 그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 행위는 조선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기초하는 의사발동으로 범죄가 아니다. 그런데 제1심 및 제2심에서 받은 유죄판결은 부당하여 복종할 수 없는 위범인 것임에 상고한다.


그러나 1919년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러야 했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 1981년 2월 11일 보은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최용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