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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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네팔을 대표하는 축구 국가대표팀. 홈 구장은 다사라스 랑가살라 스타디움, 감독은 빈센초 알베르토 안네세다.
당연히 아직까지 월드컵 본선과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한 기록은 없다.
최약체팀들만 모인 대회인 AFC 챌린지컵에서도 2006년에 4위를 거두었고 2012년 자국 대회에서는 팔레스타인에게 0:2, 투르크메니스탄에게 0:3, 몰디브에게 0:1로 패하며 3전 전패 무득점 6실점, 조 꼴찌로 광탈했을 정도이다. 그 밖에 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1993년 대회에서 3위의 성과를 거두었고 2013년 자국대회에서 4강에 올랐다.(2005년 대회부터 3,4위전을 치루지 않음).
2014 브라질 월드컵 1차 지역예선에선 동티모르를 상대로 2승을 거두며 2차 예선에 올랐지만 요르단에게 원정 0:9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2차전 홈경기에선 무승부였으나, 요르단이 대충 경기를 하며 무재배를 거둔지라 네팔이 선전한 건 아니었다.
한국과 역대 성적은 7전 전패 0득점 53실점으로 한국에게 한 골조차 넣어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게는 나름 특별한(?) 존재인데, 한국이 32년 만에 월드컵에 진출한 1986 멕시코 월드컵 지역예선 첫 상대였으며 한국이 말레이시아 원정에서 발목을 잡혀 본선진출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홈에서 말레이시아와 득점없이 비겨(원정에서는 0:5 패) 한국의 다음 라운드 진출 및 월드컵 진출에 어느 정도 이바지했다. 당시 한국에게는 홈에서 0:2, 원정에서 0:4로 졌다. 한국과 말레이시아는 서로 홈에서 승리하여 1승 1패를 주고받아서, 이 경기 때문에 한국이 말레이시아를 제치고 통과한 것. 네팔이 전패했으면 골 득실을 따질 상황이었다. 참고로 당시 네팔 감독이 훗날 연고지 변경 이전의 윔블던 FC의 최전성기를 이끌고,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임시감독을 맡기도 했던 조 키니어.
그리고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는 0:11로 져서 한국팀에게는 역대 최다득점 기록을 세워주고 자국팀에게는 역대 최다실점 기록이라는 오명을 남겼고,[5] 9년 뒤 2003년에 한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는 0:16으로 패하며 한국팀의 최다득점 기록을 갈아치우게 한 바 있다. 이 경기에서 박진섭이 5골을 몰아쳤고, 우성용과 김도훈이 각각 3골을 넣어 한 경기에서 세 명의 선수가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진귀한 기록을 남겼다. 당시 네이버 문자중계에서는 오히려 "(한국팀은) 골 좀 그만 넣어라" "네팔 한골 넣어라"(불쌍해서)라는 댓글이 많이 달렸고, 실제 현장에서도 네팔 공격수 한 명이 한국팀 진영까지 공을 몰고 오자 환호성을 질렀다. 또한 네팔 대표팀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 예선 최다골 차 승리 기록도 안겨준 바 있는데, 1989년 5월 25일에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의 아시아 지역 1차 예선전의 9-0 승리가 바로 그것이다.
여담으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지역예선은 1차에서 광탈하며 자동적으로 2019 아시안컵 예선또한 진출하지 못했었으나, 괌의 기권과 쿠웨이트의 자격 정지 징계로 생긴 결원 보충으로 지역예선에 합류했다. 월드컵 1차예선 탈락 국가들끼리 모여서 치른 AFC 솔리다리티컵에서 4경기 무패의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KELME이다.
역시 여담으로 한국인이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1973년 네팔 축구협회 요청으로 대한체육회에서 전 국가대표 축구팀 코치 등을 역임한 장경환(1925~2001)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파견한 것. 1호 한국인 외국 국가대표팀 감독인 셈이다. 당시 제3세계에 선진축구를 전파하던 서독의 크라머 감독을 빗대 네팔의 크라머 감독으로 불리기도 했다. 장경환 씨에 따르면 당시 네팔 축구 국가대표팀 수준은 한국의 중학교나 고등학교 수준. 그나마 지원이 없어서 대한체육회로부터 축구볼 20개를 지원받고 자신의 돈으로 트레이닝 셔츠를 사다가 입히기도 했다고 한다. 그 뒤 스파르타 강행군을 시키자 반발하고 탈락이 빈번해져 이유를 알고 보니 네팔은 점심을 먹지 않는 게 일반적이어서[6] 선수들 체력이 도저히 버티지 못했던 것. 아침밥으로 3~4 사발의 밥만 먹고 반찬도 소금이나 야채 한 가지 뿐이었다. 이에 네팔 당국에 요청해서 점심도 먹이고 매일 '계란 1알'도 특별히 공급하게 했다. 그 결실은 놀라워서 1974년 네팔 청소년 축구팀은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한국과 만나 1:2로 역전패(?)하여 네팔 축구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불과 2년전 도쿄 대회에선 한국 팀에게 19골이나 먹은 반면 한 골도 못 넣었던 기억이 네팔 축구계에 생생했기 때문.[7]
포천시민축구단 U-18을 거친 당기 머니스가 네팔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이다.
네팔도 유럽파 선수가 있다. 바로 안잔 비스타로 2018년까지 스페인 3부리그 마르베야에서 뛴 선수다. 마르베야는 2019-20시즌 2부리그 승격을 눈앞에 두고 아쉽게 좌절될 정도로 수준이 좋은 팀이다.
2. 역대전적[편집]
2.1. FIFA 월드컵[편집]
2.2. AFC 아시안컵[편집]
2.3. SAFF 챔피언십[편집]
3. 연령별 대표팀[편집]
3.1. U-23 대표팀[편집]
3.1.1. AFC U-23 아시안컵[편집]
3.2. U-20 대표팀[편집]
3.2.1. AFC U-20 아시안컵[편집]
3.3. U-17 대표팀[편집]
3.3.1. AFC U-17 아시안컵[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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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팔어[2] 2023년 10월 26일 기준https://www.fifa.com/fifa-world-ranking/NEP[3] 2023년 10월 19일 기준[4] 2021[5] 참고로 이 경기에서 황선홍이 무려 8골을 득점해 한국 축구 역사상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에 등극했다.[6] 2000년대에 네팔 취재하러간 차 전문가 오카다 사치코도 네팔인들은 점심이라는 게 없다고 서술했다. 대신, 점심에 배가 고프니 간식을 먹긴 한다고. 차랑 누룽지죽같은 것으로 간단하게 먹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7] 경향신문 1077. 3.31., 1977. 03.29., 1977.4.01. 해외에 사는 한국인 (138~140) 네팔 왕국에 한국 축구 심는 장경환씨[24개국]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32개국] A B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8] 월드컵 본선 진출 비율[10개팀]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12개팀]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16개팀] A B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24개팀]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9] AfC U-23 아시안컵 본선 진출 비율[10] 이 대회부터 3.4위전 폐지[11] AfC U-20 아시안컵 본선 진출 비율[12] AFC U-17 아시안컵 본선 진출 비율